김기덕 변호사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대상 판례/ 대법원 2010다52010 단체교섭응낙청구

1. 전사(前事)


2001년 2월8일 원고인 전국금속노동조합(이하 ‘원고’ 또는 ‘금속노조’라 함)이 출범했다. 노동조합의 조직적 통일성과 안정성을 확보하는 방법이 규약과 그 하위의 규약·규칙 등에서 검토됐다. 당시 정책실이 규약 등 금속노조의 제규범 초안 작업을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산별노조 운영과 활동에 관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법적 검토를 할 수는 없었고, 마련된 초안에서 법적으로 문제되는 부분만 검토해야 했다. 기업별노조에서 초기업단위노조, 즉 산별노조로 조직·운영하게 됐지만 기업단위의 조직집중력은 여전히 강력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니 노조 조직운영과 교섭·투쟁 등 활동에서 산별노조 중앙과 기업단위의 지부·지회 사이의 마찰이 산별노조로부터 조직적 이탈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았다. 금속노조는 기업별노조가 주체가 돼서 결의한 조직형태변경을 통해서 세워진 것이었다. 이로 인해서 그 역으로 기업단위의 지부·지회의 조직형태변경을 통한 조직적 이탈이 시도될 수 있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은 조직형태변경이 단위노조의 총회 결의사항이라고 규정하고 있으니 당연히 그 하부조직인 지부·지회의 결의로는 할 수 없는 것이라고 봐야겠지만 당시 장차 법원이 어떻게 판례로 정리할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검토했던 것이 규약 등 내부절차적 규제를 통한 방안이고 지부·지회의 총회의 소집에서 위원장 등 금속노조 상급조직의 개입장치를 두고 지부·지회의 총회 의결사항에서 조직형태변경을 제외했다.

2. 사건

2000년 말부터 피고 회사가 서울공장을 매각하고 안산으로 이전을 추진하자 금속노조 서울지부 한국시그네틱스지회(지회)는 이에 반대해 파업 등 투쟁을 했고, 회사는 2001년 11월부터 2002년 1월 사이에 안산공장으로 이전을 거부한 조합원들 모두를 징계해고했다. 이에 회사의 명령에 순응해서 안산공장에서 근무하고 있던 이○○는 2003년 3월 지회 임원이 결원이라며 총회소집요구를 했다. 금속노조는 그 직전인 2월 말 이미 이○○가 조합비납부를 하지 않았다며 제명처분했고 이○○는 재심신청을 했다. 이○○는 같은 해 4월초 관할 노동사무소에 총회소집권자 지명요구를 해서 6월초 이○○ 자신이 소집권자로 지명통보를 받았다가 이틀 뒤 취소통보를 받았다(취소통보사유는 이○○의 조합원자격이 없다고 했다가 다시 지부·지회 총회는 소집권자지명 대상이 아니라는 것으로 변경됐다). 그 뒤 이○○는 임시총회를 소집해서 지회장으로 선출됐고, 다시 지회 임시총회를 소집해서 2003년 7월 초 해고자들을 제외한 안산공장에서 근무하는 조합원들이 참석한 상태에서 기업별노조로 조직형태변경 결의를 했다. 그 뒤 피고 회사와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이에 대해 금속노조는 위 임시총회절차가 위법무효라며 단체교섭에 응할 것을 요구했으나 피고 회사는 응하지 않았다.

3. 조직형태변경 절차의 적법성

이 사건의 주된 쟁점은 2003년 7월 초 조직형태변경 결의의 효력이었다. 당연히 원고는 단위노조가 아닌 지회가 노조법상 조직형태변경을 할 지위에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에 관해서 법원은 직접 판단하지 않았다.

원고가 지회장 선출을 위한 총회소집절차와 그 총회의 효력을 다투면서 이 사건 조직형태변경 결의는 효력이 없다고 주장했고 이에 관해서 법원은 판단했다. 이 사건 판결에서 서울고등법원과 대법원은 지회장이 총회를 소집하지 않을 때에는 위원장의 승인을 받아 지부장이 소집권자를 지명할 수 있도록 금속노조 지회의 규칙이 정하고 있으므로 위원장이 이러한 절차도 거부한다면 그때 노조법을 준용해 행정관청에 소집권자 지명을 요구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한 후 이에 따라 이○○이 관할 노동사무소로부터 임시총회 소집권자 지명취소 통보를 받았음에도 이를 무시하고 임시총회 개최를 강행해 이○○을 지회장으로 선출한 하자가 있다고 판단했다. 위 금속노조 지회의 규칙에서 정한 임시총회 소집권자 지명에 관한 절차 위반의 임시총회의 효력에 관해서는 대법원이 이미 이러한 법리를 판시한 바 있었다(대법원 2009.3.12 선고 2008다2241 판결). 당시 금속노조가 대구고등법원의 판결에 불복해서 상고한 사건을 대법원은 지회의 규칙 등 위반으로 임시총회의 소집절차에 중대한 하자가 있어 무효라고 파기환송 판결했다. 이번 사건에서 대법원은 그 판례 법리를 재확인했다.

이 사건 당시 임시총회에서 지회장 선출과 조직형태변경 결의는 공장 이전 반대투쟁으로 징계해고된 조합원들을 제외한 안산공장에 재직 중이던 조합원 52명만이 참석해서 한 것이었다. 당시 해고자까지 포함하면 지회 조합원 총수는 140여명이었는데 이들을 포함하면 재적과반수에 미달하는 자들이 참석한 결의에 불과했다. 따라서 해고자의 조합원 지위가 논란이 됐다. 당연히 원고는 규약에서 해고자에게도 조합원 자격이 인정되고 산별노조이기 때문에 부당노동행위로 구제신청해서 중앙노동위원회 재심판정 이후라도 조합원 지위가 인정된다고 과거 대법원이 규약에서 조합원 범위에 포함한 ‘구직중인 근로자’도 초기업별 노조의 조합원으로 인정된다고 했던 판례 법리는(대법원 2004.2.27 선고 2001두8568 판결) 이런 해고자까지도 확장 적용되는 것이라고 주장했고, 이 사건에서 법원은 이를 인정해서 이 사건 당시 임시총회의 결의가 재적과반수 미달로 무효라고 판결했다. 한편 조합비 미납시 금속노조 규약에 의해 피선거권이 제한되는 바, 이러한 상태에서 이○○는 지회장으로 선출된 것은 절차상 하자가 있다고 판결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조직형태변경 결의를 위한 임시총회의 소집절차와 그 결의요건에 관해서 노동조합 규약 등 제규범에서 정한 절차와 요건을 엄격히 적용해서 법원이 판단했다.

4. 복수노조하 단체협약의 일반적 구속력

이 사건에서 피고 회사는 기업별노조와 체결한 단체협약이 재직 근로자의 과반수가 적용받고 있다면서 노조법 제35조의 단체협약의 일반적 구속력규정에 의해 원고 조합원을 포함한 모든 근로자에게 적용되므로(이 사건 신청 당시인 2008년에는 법원 판결 등으로 피고 회사에 복직한 조합원들이 있었다) 원고의 단체교섭에 응할 의무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기업별노조가 체결한 단체협약이 유효하다 해도 원고 금속노조와 조합원에게 적용될 수는 없는 것이었다. 복수노조 하에서 어느 한 노동조합이 체결한 단체협약의 일반적 구속력은 다른 노동조합과 조합원에게 확장되는 것이 아니라고 원고는 주장했다. 이에 대해 서울고등법원은 일반적 구속력에 따라 확장 적용되는 단체협약은 근로조건 기타 근로자의 대우에 관해 정한 부분에 국한되므로 기업별노조와 피고 사이에 체결한 단체협약의 효력이 전면적·일률적으로 원고 조합이나 조합원들에게까지는 모두 그대로 미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결했고 대법원은 이 판결이 법리오해의 위법은 없다며 판시했다. 노조법 제35조의 일반적 구속력에 의해서 다른 노동조합의 교섭권과 체결권을 제한하는 것은 아니라는 판례 법리(대법원ᅠ2011.5.6ᅠ선고 2010마1193ᅠ판결, 이 사건 원심판결은 서울고등법원ᅠ2010.7.23ᅠ선고ᅠ2010라857ᅠ판결)와 달리 이 사건 판결은 일반적 구속력의 효력의 대상 문제와 연결 지어 판시한 점이 특이했다.

5. 후사(後事)

이 사건 판례 법리는 기존 판례의 법리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해고자의 산별노조 조합원 자격과 관련해서는 기존 판례 법리를 해고자에게까지 명시적으로 확장했고, 단체협약의 일반적 구속력에 의한 효력 확장에 있어서는 그 효력의 대상과 연관 지어 논하면서 다른 노동조합의 교섭권과 체결권을 제한하는 효력 확장은 인정할 수 없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 사건의 판례 법리는 산별노조의 조직 활동이 본격화되면서 형성돼 온 것이다. 아직 이와 같은 판례 법리가 형성되기 전에 산별노조의 조직안정화를 위해 마련한 규약 등 노조의 제규범이 산별노조로부터 조직적 이탈을 방지하는 장치가 됐다. 단위노조가 아닌 지부·지회의 조직형태변경 자체를 부정하는 판례 법리가 형성되지 않은 조건에서 노동조합은 이러한 장치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

이 사건 원고 금속노조는 한 동안 가처분결정을 통해서 피고 회사를 상대로 단체교섭을 했다. 지금은 피고 회사는 안산공장을 외주화했고, 그에 반발하는 조합원들은 모두 정리해고됐다. 재직 근로자가 1명도 없다. 이 대법원 확정판결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피고 회사를 상대로 단체교섭을 할 수 없게 됐다. 판결문의 주문만 남았다. ‘피고는 원고와 … 교섭사항에 관하여 단체교섭을 이행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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