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보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

‘상생의 노사관계’, 노동운동의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한 논의가 한참 동안 분분한 적이 있었다. 종래의 대립과 갈등의 관계로는 무한경쟁 지구촌화의 노동환경에 대응하지 못해 노사 모두 공멸하고 결국 나라는 절단나고 만다는 것이 논의의 전제다. 따라서 노사관계의 한 축으로서 전투적 조합주의라는 이념적 지향으로 치닫는 노동운동은 스스로의 몰락을 막기 위해 운동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하고, 기업 역시 지식산업시대에 맞게 인적자원을 중시하고 근로자를 대등한 파트너로 삼는 경영방식을 강구하라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지금도 자주 인용되고 있고 고용노동부의 핵심 정책 중 하나로 자리하고 있다. 곧 “근로자의 기본적 권리를 보장하고 삶의 질이 향상되도록 노력하고 신뢰와 협력을 바탕으로 한 상생의 노사관계 정착을 뒷받침한다”는 미션 아래 “아름다운 상생의 노사, 우리의 일터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을 노사관계의 주요 업무분야로 들고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 노사분규 건수나 근로손실일수가 줄어 들고, 올 상반기에는 대폭 증가로 반전하고 있지만 무분규선언건수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는 보고다.

일터가 생존의 터전인 만큼 노사 간 상생협력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고 분배의 원천을 키우는 것을 거부할 이유는 없다. 아울러 대기업 정규직의 임금인상 투쟁중심의 노동운동도 바뀌어야 한다는 것은 노동운동 스스로도 오래 전부터 인정해 오고 있다. 그러나 상생의 논리가 ‘노동조합은 이미 약자가 아니라는 것과 기업이 살아야 노동자도 산다’는 강한 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 점에서 비판과 냉소의 대상이 됐지만 낙관적인 통계수치 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암울한 구석들이 연이어 드러나고 있다. 끝없이 이어지는 정리해고와 구조조정, 그리고 양국화의 그늘 아래 참담한 삶마저 파괴위기에 몰린 비정규 노동자들의 깊은 신음이 그것이다. 왜 그런가. 상생의 요구는 정규직 노동자 중심의 노동조합이 있는 사업장을 대상으로 하고 있을 뿐이다. 전체 노동자의 절반이 넘는 비정규직·특수고용노동자·여성, 나아가 중소영세기업 노동자들은 배제돼 있다. 곧 대기업의 정규직 남성 노동자 중심으로 구성돼 있는 노동운동을 대상으로 하면서, 비정규직의 남용을 방치한 채 임금·근로조건·사회복지의 차별을 극복하지 못한 정책의 모순 때문에 그 숱한 노력에도 사회적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해 상생의 노력은 얼마나 기울여지고 있는가. 상생은 일방의 양보나 협력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스스로의 인식과 결단에 따라 자발적으로 참여할 때 만이 지속적인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노동기본권이 보장되고 노동운동의 자주성·민주성·이념성이 존중돼야 함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최근의 자본과 정책의 상황은 스스로 내세운 상생의 논리를 파괴하고 있다. 그것은 일부의 횡포로 치부하고 넘어가기에는 근원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정당한 노동기본권의 하나인 파업권이 자본의 공격적 직장폐쇄에 의해 무력화되고 있다. 용역업체의 유혈 폭력이 난무할 뿐 아니라 노조의 파괴나 어용화로 까지 내닫고 있다. 대법원의 간접고용에 대한 판결은 법망의 허점과 거대자본의 교묘한 회피전략에 의해 휴지조각으로 팽개쳐질 운명에 처해 있다. 나아가 수십년간 노동운동을 제약했던 조건을 제거했다고 자부하는 노사관계 선진화제도 역시 노조의 단결과 통합을 촉진하기는커녕 저지하는데 기여하고 있다고 노동조합은 반발한다. 기업 편향의 복수노조 출현, 교섭창구 단일화제도에 의한 교섭권과 파업권의 제한, 노조 전임자의 타임오프로의 대체 등이 끊임없이 노조의 개정공세에 직면하고 있는 것은 그 직접적인 증좌다.

이미 총선과정에서 쟁점화됐지만 대선을 앞두고 복지·경제민주화·사회통합적 노사관계 등의 공약과 구호들이 현란하다. 대체로 자본 쪽에 문제 해결의 무게를 두고 있고 자본의 무한권력으로 빚어진 사회문제를 풀기 위한 당연한 귀결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없는 공정한 배분과 노동기본권의 확실한 보장이 아울러 취해지지 않는다면 곧 한계를 드러내고 말 것이다. 자본의 이윤추구와 수구 기득권세력의 탐욕에 대한 견제와 균형의 장치는 민주정부의 정책적 결단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노력에 의해 지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새 시대의 역사적 의제는 경제나 돈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의 문제가 되고 있다. 그럼에도 경제위기에 대한 공포감을 떨치지 못하고 시대적 명제를 쉽게 무너뜨리는 권력의 속성을 경험한 노동자들로서는 곱씹어 강조돼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어느 정권이든 노사 상생협력의 프로그램을 선호할 것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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