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충남 아산 유성기업에서 직장폐쇄에 이어 용역깡패에 의한 폭력사태가 발생했을 당시 몇 건의 문건이 발견됐다. 문건은 현대차 구매본부 차장이 구매본부장(전무)에게 보내는 메일이었다.

“제목: 유성기업 동향보고. … 5/17 쟁의행위찬반투표 … 야근작업자 퇴근 이후 관리자 투입 작업 예정. 경비용역 유성기업 인근 대기. 상황투입 후 공장투입. 노조간부 출입 통제 예정. <메모> 찬반투표 허용(?) 파업결의 시 조합원 동태 → 불법 → 라인 내 파업 농성자 격리, 일용직 생산 인원 확보, 공장 외곽 경비용역 확보. 사측의 마인드 개선되고 있으나 여전히 대노조 행동의식/방법에 대한 미숙함.”

또 다른 문건에는 다음과 같은 계획이 적혀 있었다. “유성기업 노사 간 주간연속2교대제 합의시 → 현대차/기아차 본교섭에 일부 변수 발생우려. … 추진방안: 현대차/기아차 시행 전 노사합의 방지”라고 쓰여 있었다.

2011년 봄. 현대차는 당시 주간연속 2교대를 협의 중이던 유성기업이 현대차 주간연속 2교대제 논의에 영향을 주는 것을 피하고 싶었다. 현대차 구매본부와 유성기업 경영진이 사전 모의해 직장폐쇄를 감행하고 용역깡패를 투입, 유성기업지회를 와해시키려 했다.

직접적인 증거는 유성기업만큼 분명하지 않지만 올해 벌어진 SJM에서도 현대차의 개입 정황은 여럿 있다.

SJM지회 간부들에 따르면 사측은 직장폐쇄 한참 전인 3월부터 현대차와 중국산 역수입품에 대해 협의를 해 왔다. 품질관리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현대차는 부품사가 생산지를 바꿀 경우 그 이유와 생산계획까지 꼼꼼히 챙긴다. 특히 품질과 관련해 리스크가 있는 중국에서 역수입하는 경우 더욱 그렇다. 일부 역수입 제품은 직장폐쇄 몇 달 전 품질 테스트를 거쳐 소량 납품이 이뤄지기도 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SJM 제품이 현대차로 가기 전 중간에 거치는 한 업체에서는 직장폐쇄와 용역깡패 투입 전후 역수입 부품에 대한 현대차 승인이 떨어졌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현대차가 현 사태를 일정정도 함께 모의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SJM과 같은 날 직장폐쇄와 용역깡패 투입이 이뤄진 만도에서도 현대차의 흔적은 여럿 발견된다. 노사 갈등이 계속되던 올해 임단협 시기에 만도 노사관계로 인해 현대차에서 만도 부품 일부를 줄이려 한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직장폐쇄 직후 고위 임원이 조합원을 모아 놓고 “현대차 구매본부에서 들어와 현재 사태를 예의주시하고 있으며, 사태 악화 시 큰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부품공급 관리라는 명목으로 부품사 노사관계에 상당한 압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몇 년간 금속노조 자동차부품 사업장에서 발생한 용역깡패에 의한 테러는 현대차의 개입과 부품사 사측의 필요성이 적극적으로 맞아 떨어져 발생한 일이다.

현대차는 2000년대 중반부터 시간에 맞춘 부품공급만이 아니라 조립순서에 따라 여러 옵션의 부품을 공급하도록 하는 JIS시스템을 확대했다. 사실상 현대차의 조립라인이 부품사까지 확장된 것으로 그만큼 효율성은 증가했다. 하지만 동시에 부품사 노조가 현대차에 가할 수 있는 힘 또한 커진 것이 현대차 사측으로서는 약점이었다. 2000년대 중반부터 현대차가 부품구매부를 중심으로 부품사 노사관계에 적극 개입하며, 금속노조를 무너뜨리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는 이유다.

현대차의 금속노조 탄압 지원은 SJM·만도·유성기업 경영진에게도 사실 매우 반가운 일이다. 기회만 있으면 노조를 약화시키기 위해 꼼수를 쓰던 사업주들에게 현대차의 지원은 천군만마와 같은 힘이다. 현대차보다 더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던 SJM은 현 회장의 아들에게 경영권을 승계하는 과정에서 기존 노조를 무력화시킬 필요가 있었다. 만도는 2008년 한라그룹 재편입, 2010년 재상장 이후 주가에 영향을 미치는 노조 파업에 공격적으로 대응할 필요성이 커졌다. 유성기업은 타 계열사와 거래규모를 키우며 성과분배를 회피할 목적으로 노동조합이 없는 계열사에서의 이익을 의도적으로 키웠다. 그러던 중 현대차의 지원을 등에 업고 유성기업지회를 와해시키려 했다.

이번 SJM·컨택터스 사태를 계기로 현재 국회에서는 경비업법 개정이 논의되고 있다. 주로 경비업체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모아지고 있다. 하지만 앞에서 보았듯이 용역 경비업체는 현대차와 부품사 경영진에 고용된 ‘깃털’에 불과하다. 금속노조를 와해시키고 어용노조를 세우려는 사업주의 요구가 계속되는 한 용역 경비업체들은 갖가지 편법을 이용해 현장에서 폭력을 휘두를 것이다. 경찰 역시 현재 수사를 컨택터스에만 두고 진행 중인데, 정작 이들을 고용하고 폭력을 사주한 자들은 아무런 처벌을 받고 있지 않다.

경찰과 국회는 깃털만 건드리지 말고, 몸통을 건드려야 한다. 현대차와 SJM 경영진 모두를 처벌해야 한다. 진짜 민주주의를 유린하는 자들은 바로 이들이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jwhan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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