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수강
통합진보당
정책전문위원

모양새가 좀 우습게 됐다. 서로 돕자고 내민 손이 상대방을 위협하는 ‘주먹’이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니 말이다. 한일 통화스와프 얘기다.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과 일왕 발언을 두고 일본이 대항조치로 한일 통화스와프 축소 카드를 꺼내 들었다. 지난 15일 후지무라 오사무 관방장관은 한일 통화스와프 재검토 가능성을 언급했다. 아즈미 준 일본 재무장관은 17일에 이를 좀 더 구체화했다. 올해 10월 말이 기한인 570억달러의 한일 통화스와프 협정에 대해 연장할지 말지를 포함해서 백지상태에서 고려하겠다고 말한 것이다. 21일 열린 일본 각료회의에서도 이 문제를 다뤘다고 한다. 이 570억달러의 통화스와프 계약은 1년 단위로 롤오버 하는 방식이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일본이 통화스와프 재계약을 안 한다면 그 규모는 현재의 700억달러에서 130억달러로 줄어든다.

일본의 카드에 대해 우리 정부는 일단 일본의 정확한 의중을 파악하겠다는 입장이다. 우리나라 외환보유고가 충분하기 때문에 일본의 통화스와프 축소가 당장은 문제가 안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았다. 실제로 통화스와프 축소가 우리나라 외환시장에 당장 큰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을 것이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 때 통화스와프가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는 거꾸로 통화스와프를 줄이더라도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을 뜻한다. 그렇더라도 통화스와프 축소를 징벌적 대응수단으로 활용하려고 하는 일본의 의도는 엉뚱한 곳에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통화스와프 축소가 지역 통화협력 노력에 찬물을 끼얹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동아시아 나라들 사이에서 통화스와프 얘기가 나온 것은 지난 97년 외환위기 이후다. 당시 동아시아 나라들은 경제의 기초가 비교적 튼튼함에도 단기 자본의 급속한 유출로 위기를 맞았다고 판단했다. 국제통화기금(IMF)와 세계은행 같은 국제금융기구는 위기를 막는 데 도움을 줄 수 없었고 줄 의도도 없었다. 이들 기구를 실질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미국은 뒷짐만 지고 있었다. 나중에 IMF가 구제금융을 제공하면서 제시한 프로그램은 위기를 오히려 증폭시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위기를 겪으면서 동아시아 나라들은 위기 때 국제 금융기구나 미국을 너무 믿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이는 자연스레 통화가치 안정을 위해 지역 차원의 협력이 필요하다는 공감대 형성으로 이어졌다.

2000년 치앙마이에서 열린 아세안+3 재무장관 회의는 그 결실이었다. 여기에서 치앙마이 이니셔티브로 불리는 양자 간 통화스와프 협정 추진이 결의됐다. 한일 통화스와프 협정도 이 결의에 따른 것이다. 통화스와프 협정의 목표는 동아시아 역내에서 외환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국가가 생길 경우 단기자금을 서로 지원하자는 것이다. 이 통화스와프 협정은 가장 초보적인 형태의 통화협력이다. 좀 더 진전된 통화협력은 위기 대응을 위한 공동기금을 마련하는 것이다. 일본의 미와자와는 아시아 통화기금(AMF) 구상을 내놓은 바 있다. 물론 미국과 국제통화기금의 반대로 그 구상이 실현될 수는 없었다. 더욱 진전된 통화협력은 공동통화를 만들어 독자적인 통화권을 이룩하는 것이다. 이러한 아시아 공동통화 구상도 학계를 중심으로 논의된 바 있다.

지역 통화협력 이니셔티브가 노동자들에게 주는 함의는 사실 이중적이다. 지역 이니셔티브의 숨은 의도는 통화위기에서 나타나는 금융자산의 감가를 막자는 데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니셔티브의 주창자가 주로 금융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사람들이다. 그렇지만 다른 한편 지역 이니셔티브는 달러 신인도의 하락에 맞서 지역의 통화안정을 지킨다는 의미도 갖는다. 최근의 세계시장 위기는 모두 달러가 그 가치를 유지하지 못한 데서 생겨난 것이다. 위기 과정에서 형성된 통화가치의 불안정은 투기자본 활동의 원천이 된다. 따라서 지역 차원의 통화협력은 통화가치 안정을 유지하고 자본의 투기적 활동을 막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을 준다. 이러한 사실이 진보진영이 지역 통화협력을 지지할 수 있는 근거인 셈이다. 통화스와프 축소라는 일본의 속 좁은 대응이 걱정스런 점은 바로 이러한 초보적인 지역 통화협력의 싹마저 자를 수 있다는 점이다.

통합진보당 정책전문위원 (links@hanmail.net)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