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우람 기자

롯데그룹은 계열사 40개 이상을 보유한 재계순위 7위 기업이다. 하지만 노사관계에서 만큼은 대기업다운 풍모(?)를 찾아보기 힘들다.

최근 약 20여개의 롯데그룹 계열사노조 가운데 유일하게 민주노총을 상급단체로 두고 있는 사무금융노조 산하 롯데손해보험지부(지부장 문병천)에 칼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지부 내부에서 벌어진 일들을 종합해 보면 회사가 마음을 먹으면 민주노조를 얼마나 쉽게 무력화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지부는 올해 4월 정기대의원대회를 개최했다. 대회장에서 일부 대의원들이 지부가 상급단체를 지난해 12월 출범한 사무금융노조로 변경한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그런데 롯데손해보험 인사노무팀은 이날 정기대의원대회에 앞서 일부 대의원들에게 공문·전화연락 등을 통해 대회 참석을 독려했다. 사측이 중요한 의결을 앞둔 노조의 행사에 직접 전화까지 돌리며 참석을 요청한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일이다. 롯데손해보험측도 이를 사실로 인정하고 “노조활동을 지원하기 위한 통상적인 활동”이라고 해명했다. 예전에는 없었던 일이었다.

결국 이날 정기대의원대회를 기점으로 모습을 드러낸 지부 반대파들은 이후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노골적으로 노조행세를 했다. 소집권자 없이 몇 번의 임시대의원대회를 개최하더니, 상급단체 탈퇴와 문병천 지부장의 해임을 의결했다.

이어 롯데손해보험의 '장단 맞추기'가 시작됐다. 지난 6월 취임한 이봉철 대표이사는 취임 첫날 지부 대신 비대위를 찾았다. 같은달부터 지부 통장으로 입금되던 조합비가 비대위 개인 명의의 통장으로 입금됐다. 지부의 분회순방에 조합원들의 참석을 방해하고, 곧이어 문 지부장의 사내 인트라넷·메신저 이용이 차단됐다. 롯데손해보험은 특히 지부의 임단협 교섭 요구를 무시하고, 임의조직인 비대위와 교섭을 진행해 타결하는 비상식적인 행태를 보였다.

비대위는 지난달 차기 집행부를 구성한다며 위원장을 새로 뽑았다. 사측은 기다렸다는 듯이 문 지부장에게 현업복귀를 명령했다. 그러자 롯데쇼핑(롯데백화점)이 지부가 6월1일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앞에서 연 ‘기자회견’을 ‘불법집회’라고 주장하며 문 지부장을 경찰에 고소했다. 노조·지부 내부에서 "롯데가 그룹 차원에서 민주노총 노조 죽이기에 나섰다"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지난해 11월 결성된 지 두 달 만에 해산한 롯데칠성음료노조 등 3~4개의 롯데그룹 계열사노조들은 민주노총 소속이었다가 상급단체를 탈퇴하거나 노조 간판을 내렸다. 민주노총 소속으로 살아남은 곳은 롯데손해보험지부뿐인데, 상황은 이렇듯 풍전등화다.

지부가 예전의 지위를 되찾지 못한다면 사용자들은 이번 사례를 참고해 말 안 듣는(?) 노조는 언제든 쫓아낼 수 있다는 그릇된 인식을 갖게 될지도 모른다. 지부와 상급단체를 넘어 이번 사건에 노동계 전체의 관심이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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