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

15일 광복 67주년을 맞았다. 마침 치열했던 올림픽 축구 한·일전 승리에다 대통령의 느닷없는 독도 방문 등으로 예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를 느꼈다. 특별히 이 시기가 되면 모두들 국가의 존재와 가치에 대해 생각한다. 나라의 소중함과 다시는 나라 잃은 고통을 되풀이하지 말아야겠다는.

고전적 이론이지만 이 같은 생각의 뿌리는 국가가 우리를 보호해 줄 것이라는 데서 출발한다. 이른바 국가계약 이론에 따르면 국가에 권한을 위임하는 대신 국가는 구성원을 보호하기로 한 계약에 따라 각자 권리와 의무를 다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계약이 어그러지고 있다.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는 의무를 다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최근 벌어진 노동 관련 사건을 보면 국가의 무능함에 대한 실망 이상의 무엇이 있다. SJM 사태(컨택터스 사건)·만도 사건 등은 국가의 필요성에 의문을 가지게 한다.

특히 컨택터스 사건이 그렇다. 우리 법에서 국가가 아니더라도 군인을 거느릴 수 있다는 사실에 작은 충격을 받았다. 단순한 경비업체가 아니라 자기들 스스로 민간군사기업이라 불리기를 원하고 있었다. 물론 국가의 허가가 있었다. 민간군사기업이 자리 잡게 된 우리사회 구조를 알고 나선 더 큰 충격을 받게 된다. “국가의 군인과 경찰로는 충분히 보호받지 못한다”는 이들 기업 수요자의 입장과 “더 이상 국가가 모든 구성원을 지켜 줄 수는 없다”는 국가의 생각이 합치된 결과가 이들을 낳지 않았겠는가.

그리고 이런 추세는 강화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경비업체 설립요건을 완화했고 그 결과 업체는 3천700여개로 늘어났다. 그만큼 국민보호 의무를 민간에 전가했다고 볼 수 있다. 이제야 허가 요건을 강화해야겠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지만 이 같은 흐름을 되돌릴 수 있을지 의문이다.

수도·전기·의료·교육 등 국가가 보호해 주리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하나 둘 민간으로 전가되더니 급기야 치안과 방위도 그 대상에 포함될(이미 포함된) 날이 머지않아 보인다. 돈이 많은 자(개인·기업)들은 이미 잠재적으로 군대를 거느리고 있다는 생각에 섬뜩하기까지 하다. 실제 철거현장에서부터 파업현장까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이들이 출몰하고 있다. 그리고 철거민과 조합원들이 폭행을 당하고 쫓기는 데도 경찰은 지켜보고만 있다.

이상의 국가회의론을 더 강화하는 것은 다름 아닌 SJM 사태(컨택터스 사건)· 만도 사건 등에서 보여 준 국가의 태도다.

노사 간 쟁의가 간혹 파업으로 이어지고 회사는 직장폐쇄를 하는 경우가 있다. 적법한 절차에 따라 진행된 일련의 과정을 문제 삼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공정한 관리자가 돼야 할 국가가 편파 판정을 일삼고 있거나 아예 한쪽 손을 들어 주는 게 문제다.

고용노동부를 보자. SJM 사태(컨택터스 사건)·만도 사건은 명백한 불법 직장폐쇄다. 그럼에도 관여할 사항이 아니라고 버티다가 정치권의 압박에 마지못해 단속하겠다고 발표했다. 그것도 직장폐쇄에 관해서는 명확한 입장도 밝히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노동부가 행정력을 발휘하지 않았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런데 어떤가. 사실상 노동부는 사용자에게 시간을 벌어 준 셈이다. 직장폐쇄 기간을 틈타 새로운 노조가 만들어진 것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만도 사건과 같은 경우만 보더라도 노조설립에 사용자가 개입한 정황이 적지 않다. 때를 잃어버린 처방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나마 이번 조치는 후한(?) 점수를 줄 수 있다. 자율이라는 핑계로 노사관계를 아예 민간에 넘겼다. 합의사항을 이행하지 않고 버티는 회사(쌍용자동차·한진중공업 등)에 대해서는 아무런 제재도 가하지 않고 있다. 영세한 사업장 파업(재경택시·서희산업)에는 관심도 없다. 법원 판결도 무시한다.

노동부는 노동자와 노동조합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그러한 기능과 역할을 다하지 못할 바에야 존재할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노동자들이 국가에 갖는 회의는 노동부가 그 원인을 크게 제공하고 있다.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 (94kimhyu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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