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은회 기자

양두구육(羊頭狗肉)은 ‘양의 머리를 걸어 놓고 개고기를 판다’는 뜻이다. 겉은 훌륭해 보이지만 속은 그렇지 못할 때, 겉과 속이 다를 때 쓰는 말이다. 정치방침을 둘러싼 한국노총의 상황이 이렇다.

지난 3일 새누리당이 노동위원회 부위원장 7명과 위원 41명을 임명했다. 한국노총 항운노련 위원장 출신인 최봉홍 의원이 노동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부위원장은 새누리당 의원 2명, 사용자단체 관계자 2명, 노동계 관계자 3명 등 7명으로 구성됐다. 특히 노동계 출신 부위원장 명단에는 한국노총 산별연맹·지역본부의 주요 관계자들이 이름을 올렸다.

그런데 새누리당 노동위원회 구성에 대한 <매일노동뉴스> 보도가 나간 뒤 부위원장으로 거명된 노동계 인사 3명 모두 이의를 제기했다. “본인 동의 없는 일방적 임명이다”며 당을 상대로 “명단에서 내 이름을 빼 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예상치 못한 이의제기에 당도 곤혹스러운 입장에 빠졌다. 당 관계자는 “여러 번 확인을 거쳐 동의를 받았는데, 본인들이 부담스러워하니 어쩔 수 없는 일 아니냐”며 임명을 취소했다.

왜 이런 해프닝이 벌어졌을까. 한국노총의 정치방침 때문이다. 이용득 전 위원장이 정치방침에서 파생된 조직분열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지만 정치방침에 대한 조직 내 이견은 여전하다. 대외적으로 “정치방침은 유효하다”고 발표하더라도, 새누리당 노동위원회 인사 번복 같은 해프닝을 막을 방법이 없다.

이거야말로 양두구육이다. 겉으로는 정치방침을 표명하고, 안으로는 각자 제 갈 길을 모색하는 꼴이다. “야권통합정당으로의 지분참여를 통해 반노동자 정권을 심판하겠다”며 대의원대회에서 결의한 정치방침의 힘이 빠져 버리는 것은 예정된 수순이다.

요즘 한국노총의 최대 화두는 ‘통합과 단결’이다. 이는 “정치보다는 조직이 우선이다”는 논리로 이어지고, “아예 정치적 중립을 선언하자”는 목소리로 계승된다. 조합원들의 이해에 복무하는 최선의 길을 찾기보다는 내부갈등을 봉합하는 데 급급한 모습이다. “지옥의 가장 뜨거운 자리는 정치적 격변기에 중립을 지킨 자를 위해 예비돼 있다”는 단테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갈등 봉합을 위한 정치적 중립선언을 한국노총의 비전이라 말하기는 어렵다.

다음달 20일 한국노총 보궐집행부 선출을 위한 선거인단대회가 열린다. 한국노총의 비전이 제시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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