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성 기자

정부가 최근 가스산업 경쟁체제 도입에 대한 입장을 재확인해 논란이 일고 있다. 가스산업 경쟁체제 도입은 지난 99년 ‘가스산업 구조개편’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 뒤 모든 정권이 시도했다가 폐기됐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만 유독 정권 말기에 밀어붙이고 있어 가스업계의 반발을 사고 있다.

최준식(44·사진) 공공운수노조 한국가스공사지부장은 31일 오전 서울 영등포 노조사무실에서 <매일노동뉴스>와 만나 "정부가 꼼수를 통해 가스시장을 개방하려 하고 있다"며 "이를 막지 못하면 서민연료인 가스마저 재벌가들의 담합대상인 정유처럼 돼 공적인 에너지 공급체계가 무너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부는 2008년 공공기관 선진화 계획을 통해 가스공사가 독점하고 있는 천연가스 도입·도매부문에 2010년부터 신규 민간사업자도 진입할 수 있도록 허용하되, 발전용 물량에 우선 도입한 후 산업용으로 그 범위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이를 위해 2009년 도시가스사업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그런데 여당의원이 더 많았던 지난 18대 국회에서조차 해당 법안은 통과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지식경제부는 올해 6월 "가스산업 경쟁도입 법안을 19대 국회에 재상정하겠다"고 밝혔다. 지경부는 자가소비용 천연가스 직수입자에 대한 등록요건을 도시가스사업자와 동일하게 완화하는 내용의 도시가스사업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지경부는 개정안에서 자가소비용 직수입자의 등록기준을 천연가스 자가소비계획량의 ‘30일분에 해당하는 액화한 것을 기준으로 10만㎘ 중 많은 양을 저장할 수 있는 저장시설을 갖출 것’을 '30일분에 해당하는 양'으로 완화했다.

최 지부장은 "이번 시행령 개정안은 경쟁도입법이 18대 국회에서 폐기되자 우회하는 방법으로 모색된 것"이라며 "직수입사업자의 저장시설 확보 부담을 줄여 줌으로써 저장시설 확충 없이 민간 사업자에게 경제적 특혜를 주겠다는 의도"라고 비판했다.

가스산업은 이미 일부 민영화가 진행된 상태다. 도입도매 공급은 가스공사를 통한 공적소유 형태로, 소매 공급은 지역별 독점 민간자본의 형태로 발전했다. 현재 소매도시가스를 공급하는 민간 회사는 전국적으로 30여개에 이른다.

최 지부장은 "소매부문은 이미 일부 재벌에 의해 독점됐으며, 직도입 정책시행과 이를 활용한 직도입사업자들의 기회주의적인 행태가 수급불안과 국민 부담으로 이어졌다”며 “2007년 GS가 공장가동에 필요한 천연가스를 직수입하겠다고 했다가 국제 LNG 시황이 불리하게 전개되자 공사에 공급을 요청하는 바람에 공사가 부족한 물량을 고가의 스팟물량으로 도입해 900억원의 혈세가 낭비됐다”고 지적했다. 장기계약과는 달리 스팟물량으로 사들이는 가스는 톤당 약 15% 가량 가격이 비싼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가정용 에너지 중 가장 저렴한 것이 도시가스인데도 사회 인프라가 부족하다 보니 빈곤층 가구가 밀접한 지역일수록 에너지 접근성이 떨어지는 아이러니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가스시장에 경쟁이 도입될 경우 인프라 구축은 더욱 힘들어진다.

최 지부장은 “가스공사 부채가 400~500%에 이르는데도 공기업 역할을 다하기 위해 손실이 발생하는 걸 알면서도 오지에 가스공급망을 설치하고 있다"며 ”가스시장에 경쟁체제가 도입되면 에너지 접근성이 떨어져 에너지 빈곤층이 확대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가스는 가장 저렴한 가정용 서민연료로 이를 안심하고 이용할 서민의 보편적인 권리를 일부 재벌기업에 빼앗겨서는 안 된다"며 "민영화에 맞서 싸우는 다른 공공부문 사업장들과 함께 가스산업 경쟁체제 도입을 반드시 막아 내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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