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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노동자 덮친 '잡도리' 트라우마, 대책 없는 징계남발로 시민안전 위협열차 역주행? 안전한 퇴행운전! … 노조 "사고 원인 노사가 함께 조사해 기준 만들자"

17년차 코레일 철도기관사 최아무개(46)씨는 올해 1월15일 오산대역에서 정지위치를 어기는 운행장애를 일으켰다. 운행장애는 철도차량 운행에 지장을 초래하는 것으로 철도사고에 해당하지 않는다. 최씨는 순간적으로 오산대역 전동차 승강장을 200미터가량 지나쳤다. 그는 곧바로 전동차를 오산대역으로 후진했다. 그런데 퇴행 과정에서 시속 46킬로미터의 속도를 내는 바람에 제한속도(시속 25킬로미터)를 초과했다. 이로 인해 열차 운행이 3분간 지연됐다. 그 외 다른 피해는 없었다.

앞서 코레일은 같은달 6일 운행장애 예방을 위한 안전관리 특별지시를 내려 운전취급에 각별히 주의할 것을 지시했다. 직전에 KTX가 영등포역을 통과해 2.6킬로미터를 되돌아오는 사건이 발생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기 때문이었다.

코레일은 오산대역 사고와 관련해 사과문을 내고 "정차역 통과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제도적으로 제한하는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언론사들은 오산대역 사고에 대해 "기관사들의 기강해이가 도를 넘어섰다"고 질타했다.

최씨는 사고 직후 직위해제됐다. 이후 43일 동안 매일 독방에서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전규정을 베껴 썼다. 틈틈이 복도청소와 환경정리를 했다. 정신교육을 받기도 했다. 다시 현장에 복귀할 때는 인증심의까지 받았다. 인증심의는 부기관사가 기관사로 발령날 때 받는 심사다. 지금까지는 대부분 서류로 대체할 정도로 사문화된 제도였다. 직위해제 조치를 당한 기관사가 현장복귀를 위해 인증심의를 받은 것은 최씨가 처음이었다. 그는 인증심의 후 모멸감을 호소하며 조합원들 앞에서 눈물까지 보였다.

최씨는 2월28일 업무에 복귀했다. 그러나 징계에 대한 걱정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코레일은 4월에 중징계에 해당하는 ‘감봉 3개월’처분을 의결하고, 5월에 최씨에게 이를 통지했다. 지적확인 환호 미시행·임의퇴행·제한속도 초과·코레일이미지 실추 등이 징계사유였다. 같은 구로승무사업소에서 일하는 지도운용팀장과 사업소장도 소속직원 지도감독 소홀로 경고조치를 받았다.

동료들에 대한 죄책감과 업무에 어려움을 겪던 최씨는 5월16일 승무사업소에서 차량사업소로 전출을 요청했다. 하지만 거절당했다.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최씨는 6월19일 정신병원을 방문했다. 병원은 "작업과 관련한 스트레스로 인해 우울과 불안, 불면 등의 증상을 보여 3주 이상의 안정과 전문치료가 필요하다"며 "적응장애"라는 진단을 내렸다. 적응장애란 스트레스로 인한 정서적 또는 행동적 증상이 통상적으로 예상되는 정도보다 심각해 사회적·직업적 기능에 지장을 초래하는 것을 말한다.

최씨는 차량업소에 진단서를 제출하고 병가를 신청했다. 6월22일 그는 소장에게 전화를 걸어 "어디든 가겠으니 전출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리고 "본사에 고충처리를 신청하겠다"고 밝혔다. 소장은 최씨와 면담을 갖고 "다른 지역 차량관리원으로 전출하기 위해 본부와 협의하겠다"고 전했다. 다음날인 6월23일 정오 최씨는 자신이 사는 아파트 옆 동 옥상에 올랐다. 그리고 군 제대 후 끊었던 담배를 피우고 난 뒤 옥상에서 뛰어내렸다.

불안에 짓눌린 철도현장 … 예견된 사고

같은달 11일 코레일 철도기관사 박아무개씨가 전동차에 몸을 던져 자살한 지 12일 만에 발생한 사고였다. 공교롭게도 이날 우울증을 앓던 코레일 승무원도 집을 나가 행방불명된 끝에 7월4일 동네 야산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직원 3명이 한 달 새 잇따라 자살한 것은 철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기어코 터질게 터졌다." 현장에서는 탄식이 터져 나왔다. 최씨와 유사한 사고로 감봉 2개월 징계를 받았던 7년차 기관사 이아무개(40)씨는 "허준영 전 사장이 만들어 놓은 엄벌징계 체계로 과도한 징계가 남발돼 현장은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며 "마녀사냥식 징계에 대한 트라우마가 최씨의 죽음을 통해 드러난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전 사장은 코레일에 재직하는 동안 사고발생에 따른 인사조치와 징계에 대한 강도를 높였다. 철도노조에 따르면 최씨가 일으킨 운행장애의 경우 허 전 사장이 재직하기 전에는 경고조치로 끝나는 경미한 사안이었다.

올해 2월 정창영 사장이 부임했지만, 허 전 사장이 만들어 놓은 제도와 경직된 현장 분위기는 바뀌지 않았다. 노조 관계자는 "사장이 바뀌어도 실제 일을 하는 관리자들이 여전히 허 전 사장이 심어 놓은 체계를 따르고 있다"며 "허 전 사장의 잔재를 극복하는 게 노사 모두의 과제"라고 말했다.

사고가 발생하면 사측은 사고원인에 대한 조사 없이 책임부터 추궁했다. 이른바 ‘잡도리’로 불리는 징계방식으로 노동자들은 강박관념에 시달려야 했다. 이는 <매일노동뉴스>가 단독으로 입수한 최씨의 유품에서도 드러난다.

"잊지 말자 오산대역 사고"·"임의퇴행하면 죽는다(명심)"·"절대 퇴행금지"·"나의 가장 큰 적은 잡념"….

최씨가 남긴 승무수첩에는 운행장애 재발을 막기 위한 다짐이 수차례 반복해서 적혀 있었다. 정신병원을 다니며 스스로 노력한 흔적도 엿보였다. 그는 핸드폰 메모에 "기관사가 천직이다"며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하는데 까지 열심히 하자"고 썼다. 또 머리에 좋은 것(독서·바둑·장기·고스톱), 글쓰기 책을 만들 것, 모든 일은 부인과 상의할 것 등을 다짐하기도 했다.

그런 노력에도 최씨는 사고재발에 대한 두려움을 넘지 못했다. 그가 자살 전날 제출한 고충신청서에는 "재발우려에 대한 정신적 스트레스로 운전하기가 무서워져 긴장·초조·불안·두통 등의 증상이 지속되고 있다"며 "안전운행을 위해 최선을 다할수록 사고 우려로 긴장감과 압박감이 가중돼 승무를 할 수 없다"고 털어놓았다.

“사고 당사자 재활 막는 징계 트라우마”

사고 원인에는 외부적 요인도 적지 않다. 최씨가 일했던 구로승무지역의 경우 사고를 일으키는 외부적 요인이 많아 '지뢰밭'으로 불리는 구간이다. 기계적 특성이 다른 차량이 10종류에 이르고, 제동·운전·고장처리 방식이 제각각이다. 노선별 열차 종류도 9가지나 된다. 운전선로는 8개인데, 선로별로 특성이 다르다.

도시철도의 경우 스크린도어가 설치돼 있지만 최씨가 운전하는 국철구간에는 스크린도어가 설치돼 있지 않다. 사상사고에도 수시로 노출되는 실정이다. 국토해양부에 따르면 지난해 열차 자살자 61명 중 53명이 코레일 구간에 뛰어들었다.<표 참조>

사고를 예방하려면 사고를 일으키는 요인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노사가 함께 사고원인을 조사하고, 그에 따른 책임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노조는 두 과정에서 모두 배제돼 있다. 허 전 사장은 내부규정을 바꿔 운행장애와 사고에 대한 책임을 직원들에게 떠넘겼다.

당시 공사는 철도사고 발생시 정해 둔 문책기준 항목을 삭제했다. 대신 비위 정도에 따라 징계양정이 결정되는 징계운영세칙을 근거로 징계를 내렸다. 게다가 철도사고 등과 관련해 CEO 특별메시지 등이 시달된 가운데 사고를 일으킬 경우 문책을 가중해 적용하겠다는 내용도 세칙에 추가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같은 사고가 발생해도 외부 노출 여부에 따라 징계의 정도가 달라진다. “재수 없으면 걸린다”는 볼멘소리가 현장에서 떠도는 이유다.

“사고 원인 해결 없이 일벌백계로 겁박”

부당한 전출과 징계도 논란이 되고 있다. 노조에 따르면 지난해 3월부터 7월 사이에 강제전출이 14건 진행됐다. 철도기관사는 입사부터 퇴사할 때까지 같은 지역에서 근무하는 것이 관례다. 지역노선을 익히는 데 많은 훈련과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조안식 노조 운전국장은 “기관사가 거주지를 옮기거나, 징계 대신 전출을 희망하는 특수한 경우에 따라 1년에 1~2건 정도만 전출이 발생해 왔다”며 “4개월간 14명이 전출된 것은 철도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라고 말했다.

직무사고로 당한 부당징계 판결도 잇따르고 있다. 이문차량기지(2010년)와 전주역(2011년) 구내에서 발생한 탈선(운행장애) 사고의 경우 기관사가 해임됐지만 모두 지노위·중노위를 거쳐 부당해고로 판정받았다. 허 전 사장 재직 전에는 코레일이 ‘사람의 사상 또는 물건의 손괴가 발생하는 철도사고’를 제외하고는 해임 징계를 내린 적이 없었다.

KTX에게 ‘사고철’이라는 오명을 안겨 준 광명역 탈선사고에서도 "기관사에게 과도한 징계가 내려졌다"는 판결이 나왔다. 지난해 2월 경기도 광명역 상행선 인근 터널에서 부산에서 광명으로 향하던 KTX-산천 열차가 탈선해 이 구간 상하행 열차 운행이 중단된 것과 관련해 코레일은 기관사를 파면 처분했다. 하지만 대전지법은 최근 “사고가 여러 원인에서 비롯돼 징계양정이 과하다”며 부당해고 판결을 내렸다. 코레일이 근본적인 사고원인을 방치한 채 기관사에게 책임을 전가해 오히려 안전운전에 부담으로 작용하게 만든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선로 위에서는 ‘역주행’에 대한 개념이 없다. 언론이 보도하는 ‘열차 역주행’은 정지위치를 지나쳐 관제 승인에 의해 안전하게 다시 뒤로 돌아가는 ‘퇴행운전’을 말한다. 통제시스템에 의해 모든 열차가 제어돼 앞으로 주행하는 것과 똑같이 안전한 조건에서 움직인다. 사실 전동차가 정지위치를 벗어나 앞뒤로 조금씩 이동하는 일은 수시로 벌어진다. 운전방식·선로조건·날씨 등에 따라 달라지는 전동차의 제동력을 완벽하게 제어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대부분 수동운전이기 때문에 실수를 하지 않는 것은 신의 영역에 속한다. 그런데도 코레일은 정지위치를 지나 퇴행할 경우 기존과 달리 승인을 받도록 내부규정을 변경했다.

“노사 함께 사고 조사하고 문책기준 만들자”

이로 인해 기관사의 실책이 과도하게 부각되고 근무시 더 위축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조안식 운전국장은 "사고 발생시 노사가 공동으로 조사위원회를 꾸려 사고 원인을 함께 조사하고 그에 따른 합리적인 문책기준을 만들어 잘못한 만큼만 징계를 받게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조 국장은 “사고의 정확한 원인을 분석해 철도노동자가 납득할 만한 명확한 근거에 따라 징계가 진행되지 않으면 사고를 은폐하려는 부작용이 발생해 더 큰 사고로 이어지거나 사고 당사자의 상처가 깊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코레일측은 철도기관사의 자살과 관련해 지난 4월 발족한 ‘휴먼에러연구위원회’를 통해 전 직원을 대상으로 '직무스트레스 조사'를 실시하겠다는 방침이다.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된 휴먼에러연구위원회는 기관사의 오류를 예방하고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해 발족했다.

코레일 관계자는“노사 공동 사고조사는 내부적으로 논의를 통해 검토해 봐야 할 사안”이라며“철도사고는 대부분 사규를 위반하는 사안으로 징계운영세칙이 있어 양정규정 중복을 없애기 위해 사고에 따른 별도 문책기준을 삭제했다”고 말했다. 이어 "징계에 대한 수위는 열차를 이용하는 승객의 입장에서 겪어야 했을 불편함과 국민의 눈높이로 바라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최씨의 유족은 "과도한 징계와 직무에 따른 스트레스로 인한 업무상재해"라며 근로복지공단에 유족급여 및 장의비 지급을 청구할 예정이다. 사건을 대리하는 권동희 노무사(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는 "최씨가 운행장애를 일으킨 건 사실이지만 과도한 징계 스트레스와 계속되는 직무에 대한 압박으로 적응장애를 앓게 돼 업무와의 연관성은 명약관화하다"며 "생활기록부 등에 따르면 내성적이고 책임감이 강한 성격이었는데, 전출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동료들에 대한 미안함 등으로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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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류현철 직업환경의학전문의] “기관사, 시민안전 볼모로 건강권 위협받아”
류현철
직업환경의학전문의

"시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것은 열차 기관사들을 자살로 내모는 사회입니다."

류현철(40·사진) 직업환경의학전문의(경남 근로자건강센터 부센터장)는 지난 26일 저녁 <매일노동뉴스>와 전화인터뷰를 통해 "열차 기관사들이 직무상 스트레스로 매년 자살하고 있는데도 왜 개선되고 있지 않는지 돌아봐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열차 기관사는 소방공무원과 함께 고위험군 직종으로 분류된다. 그럼에도 직무스트레스를 관리하고 예방하는 프로그램은 미흡하다. 코레일도 사상사고(사망사고) 발생시 3일 휴가를 주고, 정신과 치료비를 지원하는 것이 대책의 전부다. 최근에야 "상담을 실시하고, 직무스트레스 조사에 나서겠다"고 밝혔을 뿐이다.

류현철 전문의는 "다그치고 배제하기 위한 것이 아닌 고통을 배려하고 나누기 위한 실태조사를 해야 한다"며 "이 같은 원칙을 전제로 사고에 대한 점검관리를 통해 재발방지와 예방관리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열차 기관사는 업무 자체로도 시민의 안전을 책임지느라 긴장도와 스트레스가 높다. 최악의 근무시스템이라 불리는 ‘교번제’로 인해 하루도 같은 출퇴근 시간이 없다. 충격적인 사상사고 노출과 지속적인 구조조정에 따른 긴장, 실수에 대한 징계 위주 관리는 열차 기관사를 더없이 힘들게 만든다.

그는 "열차 기관사들은 일반인들보다 더 엄격한 수준의 건강테스트를 통과해 취업한 사람들로 아주 건강한 사람들"이라며 "그렇게 건강한 사람들이 일을 하면서 일반인보다 공황장애 위험이 7배, 우울증 위험이 2배나 높아지는 이유를 따져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했다. 류 전문의는 "시민의 안전이라는 명목으로 오히려 기관사들이 과도하게 업무에 혹사당하고 건강에 위협을 받고 있다"며 "시민의 안전을 지키려면 기관사들이 건강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먼저 만들어 주는 것이 올바른 순서"라고 강조했다.

그는 노동계가 기관사의 건강권을 사회적 의제로 확장하기 위해 연대와 설득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류 전문의는 "여론보다 열차 노동자와 시민의 생명이 더 중요하다"며 "노동계가 적극적으로 나서 퇴행운전에 대한 시민들의 오해를 풀고 직무스트레스에 따른 자살이 반복되는 걸 막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은성  kes04@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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