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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표 노동정책' 절반의 성공, 절반의 과제] “시장의 조정력·리더십이 성공의 관건” … 지자체 노동정책 모델로 주목받아
▲ 지난해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박원순 야권단일후보가 당선이 확정되자 꽃다발을 들고 손을 번쩍 들고 있다. 박 시장의 당선에는 정책협약 당사자인 민주노총 서울본부 등 노동계의 노력도 주효했다. 왼쪽 뒤편에 이수호 공동선대위원장(전 민주노총 위원장)도 보인다.(사진=정기훈 기자)

"서울시가 달라졌어요.”

지난해 10·26 보궐선거에서 당선된 박원순 서울시장이 취임 9개월을 맞았다. 그의 등장은 서울시정뿐만 아니라 노동정책의 변화도 가져왔다. 박 시장이 대표적으로 꺼내든 카드는 서울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다. 서울시는 올해 5월 비정규직 1천133명을 무기계약직(정규직)으로 일괄전환하겠다고 발표했다. 다른 지방자치단체는 물론이고 공공부문 전체에 신선한 충격을 줬다. 정규직 전환기준도 정부가 제시한 기준보다 앞선 파격적인 것이었다. 박 시장은 이와 함께 노동계와 소통을 강화하고, 지하철 해고자 복직·시민명예노동옴부즈맨·노동복지센터·노사민정거버넌스를 적극 추진하고 있다.

그렇다고 박 시장의 노동정책이 마냥 순탄하지만은 않아 보인다.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참여주체들 간 화합이 쉽지 않은 데다 일부에서는 저항도 나타난다. 한편에서는 박 시장이 그간 보여 준 노동정책이 지자체 노동정책의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절반의 성공을 거두고, 절반의 과제를 남긴 '박원순표 노동정책'은 순항할 것인가.

현장시정추진단 vs 정규직 전환

“정말 달라졌죠. 그때는 삭발투쟁을 하며 길거리에서 현장시정추진단 저지에 나섰지요.”

오세훈 전 서울시장 시절 서울시청공무원노조 위원장으로 삭발투쟁을 했던 오형민 서울시공무원노조 위원장의 회고다. 2007년 서울시 공무원 3% 강제퇴출을 골자로 한 현장시정추진단 운영은 “공직사회 파괴와 공무원의 인권과 명예훼손”이라는 비판을 받으며 공무원 노동계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쳤다. 당시 노사관계를 보여 주는 대표적인 사례였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올해 5월 서울시는 비정규직 1천133명을 무기계약직으로 일괄 전환했다. 박원순 시장은 “같은 일을 하면서 차별받지 않고 일 잘하는 사람이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해고되지 않는 사회를 위한 첫걸음”이라고 밝혔다. 전환기준도 2년 이상 등의 기간제한을 두지 않고 상시·지속업무 여부로만 판단했다. 다른 요건을 충족한 2년 미만자들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됐다.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서울시의 근속기간과 상관없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대단히 전향적이고 지자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정책”이라고 평가했다. 이 소장은 “남은 과제인 간접고용 문제는 이명박·오세훈 전 시장 시절에 서울시가 워낙 많이 민간위탁을 하는 바람에 어려운 과제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하철 해고자 복직과 ‘시장의 의지’

서울지하철과 서울도시철도 해고자들의 복직에도 박원순 시장은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당선 뒤 민주노총 서울본부와 해고자 복직 문제를 논의했고, 물꼬를 텄다. 민주노총 서울본부는 10·26 선거 당시 박 시장과 정책협약을 맺은 당사자였는데, 주요 요구사항 중 하나가 지하철 해고자 복직이었다.

서울도시철도노조 관계자는 “매년 임단협 시기에 해고자 복직을 요구해 왔지만 공사는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며 “서울시장의 의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다”고 말했다.

비슷한 사례는 또 있다. 올해 3월 서울도시철도 5호선 왕십리역에서 기관사 사망사건이 터졌다. 기관사의 공황장애가 의심되는 사건이었다. 노조와 시민·사회단체는 연일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도시철도공사의 사과와 공황장애 인정·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했다. 그러나 해법은 도출되지 않았고, 공사와 노조·유족 간 갈등만 심화됐다.

그러자 박 시장이 공사 앞마당에 설치된 빈소를 찾았다. 공사와 유족 간 협상이 급물살을 탔다. 이어 17일 만에 타결에 이르렀다. 서울시는 재발방지대책 방안으로 시 차원의 ‘최적근무위원회’를 설치했다. 공사에는 직무환경개선연구소를 두도록 했다.

경영계를 긴장시킨 서울시 노동정책

이달 19일 오전 서울 중구 조선호텔에서 열린 박원순 시장 초청 경총포럼. 이희범 경총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박 시장은 일 중독자를 자처하고 해외출장도 단기·집약적으로 하는 사람”이라고 추켜세웠다. 그러면서 “경영계로서는 우려스러운 부분도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경영계는 박 시장이 추진하는 노동정책을 우려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우선 이달 21일로 100일을 맞은 서울시 시민명예노동옴부즈맨. 이는 노동 분야 민간전문가 25명이 각 자치구에 포진해 근로기준법 등 노동법 사각지대에 놓인 영세·비정규 노동자의 권익보호를 위해 활동하는 제도다. 지금까지 임금체불 사건 등 245건의 상담신청 사건을 처리했다.

노동복지센터도 경영계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고 있다. 박 시장의 정책협약 파트너인 민주노총 서울본부의 제안으로 설립되는 것으로, 비정규직 조직화와 차별해소를 위한 거점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시는 올해 안으로 15곳, 내년까지 서울시 산하 25개 자치구에 하나씩 설치할 계획이다.

경영계는 이 같은 서울시의 노동정책에 반대하고 있다. 고용노동부의 업무를 침해하는 월권행위이자 기업의 경영활동을 저해하는 행위라는 주장이다. 남용우 경총 노사대책본부장은 “(박 시장의 노동정책이) 서울시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 민간기업의 해고자 복직이나 정규직 전환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삐걱대는 노동복지센터

지난 5월31일 저녁 서울 신촌 아트레온. 이날 서대문구 구민과 노동자들이 초청된 가운데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고 이소선 여사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어머니’ 상영회가 열렸다. 행사는 서대문근로자복지센터의 교육프로그램 일환으로 진행됐다. 서대문근로자복지센터는 서울시 노동복지센터 중 하나다. 당초 구립 근로자복지센터로 출발했다가 서울시의 직접적 지원을 받는 노동복지센터로 전환했다. 센터는 근로조건실태조사·근로자지원프로그램·근로자나눔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조형일 센터 대표는 “서울시 지원으로 기존보다 예산이 확대돼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졌다”고 평가하면서도 “노동복지센터 안착을 위해서는 지역의 사업모델 개발을 위한 서울시의 역할이 요구된다”고 주문했다. 센터는 올해 예산 2억원(5월부터 적용)을 지원받는다.

그렇다고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 4월 서울시는 "상반기에 15개 자치구에 노동복지센터를 오픈한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이달 현재까지 노동복지센터는 4곳(기존 구로·서대문·성동구 3곳+노원구 신설)을 제외하고 11곳에서는 추진되지 못하고 있다.

당초 서울시는 노동단체와 비영리단체 등에 위탁해 센터를 운영한다는 계획이었지만 공고·심사 과정에서 위탁기관으로 참여한 노동단체·정당 간 의견차가 발생했다. 서울시는 진통 끝에 11곳의 추진을 유보하고 향후 어떻게 처리할지 해법을 마련 중이다.

9월께 노사민정협의회 조례 개정될 듯

노사민정 거버넌스 구축도 박 시장의 야심작 중 하나다. 그는 취임일성으로 “협치”를 강조하면서 노사민정협의회 내실화(노사민정 거버넌스 구축)를 공약했다. 민주노총 서울본부가 지난달 노사민정협의회 참여를 결정함에 따라 급물살을 타는 듯했다.

그러나 이후 좀체 속도가 붙지 않고 있다. 세부적으로 의견차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양대 노총은 국민노총의 참여를 반대하고 있고, 민주노총은 노정협의회를 별도 파트로 설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기존의 서울시투자기관으로 구성된 노사정서울모델협의회를 어떻게 담아낼지도 관건이다.

주진우 서울시 노동보좌관은 “민주노총이 처음 참여하는 만큼 노사민정협의회의 상과 의제에 관해 참여주체 간 협의가 필요하다”며 “국민노총 문제는 어떤 식으로든 의사수렴이 되도록 서울시가 조정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주 보좌관은 이어 “노사민정협의회는 조례개정 사항이어서 9월 서울시의회 정기회에 상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종강 소장 강의 듣는 서울시 간부들

서울시 노동정책 변화를 상징하는 모습도 눈에 띈다. 서울시 직원들이 노동문제에 관한 특강을 듣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하종강 한울노동문제연구소 소장(성공회대 노동대학장)은 26일 오후 서울시청 후생동 강당에서 서울시 4급 이상 공무원을 대상으로 ‘희망서울아카데미’ 특강에 나섰다. 희망서울아카데미에서 노동을 주제로 한 특강은 이번이 처음이다.

하 소장의 특강을 들은 이대현 서울시 미래창안담당관(4급)은 “하 소장께서 노동의 개념·노조의 시작·국내외 노동자 삶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했다”며 “나도 노동자고 내 아이들도 노동자로서 삶을 살 텐데 아이들이 노동을 통해 어떻게 꿈을 실현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 봤다”는 소감을 밝혔다. 서울시 관계자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 주요 노동정책을 추진하는 데 있어 간부들에게도 노동인지적 환경을 경험하게 하는 의미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하반기에는 서울시 직제에 ‘노동정책과’가 신설된다. 지금은 서울시 일자리정책과가 업무의 한 부분으로 노동정책을 다루고 있다. 주용태 일자리정책과장은 “박 시장 취임 이후 노동정책이 쏟아지고 있는데, 혼자서 추진하기에 어려움이 있었다”며 “노동정책을 전담하는 노동정책과가 신설되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박원순표 노동정책'은 나름의 성과를 거두며 순항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기조를 유지한다면 임기를 마칠 때쯤이면 남은 절반의 과제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해 노사정 관계자들은 "서울시 노동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장의 의지"라고 입을 모았다. 보궐선거 당선 직후 밝힌 "협치"라는 초심을 잃지 말라는 주문이다.

실제 노동문제는 당사자들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이슈다. 노동계와의 허니문 기간이 언제까지나 이어질 것이라고 장담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박 시장이 초심을 잃지 않고 지자체 노동정책의 새로운 모범사례를 창출할지 주목된다.

연윤정  yjyon@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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