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두섭 변호사(공공운수법률원)

1. 사건의 경위

서울지하철노동조합은 2011년 4월14일께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소집을 공고하고 같은 달 18일에 ‘새로운 상급단체 설립가맹[국민노총(가칭)] 및 민주노총 탈퇴를 위한 조합원 총투표’를 공고했다.

같은 해 4월27~29일 투표를 실시했고 투표 마지막 날인 29일 개표해 각 지회별로 개표결과를 발표했다. 조합원 8천639명 중 8천197명(84.88%)이 참여해 찬성 53.02%(4천346명), 반대 46.63%(3천822명)로 투표결과가 집계됐다면서 위 안건이 가결됐다고 발표했다.

서울지하철노동조합의 규약 제5조의 1은 “본 조합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에 가입한다”라고 명시하고 있었다.

서울지하철노조의 조합원인 최아무개 등이 위 총회의결무효확인의 소송을 제기했고, 항소심은 서울고등법원은 원고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총회의결이 무효라고 판단했다.

2. 판결 요지
서울고등법원은 “연합단체의 설립·가입 또는 탈퇴에 관한 사항이 노동조합의 규약에 기재된 이상 그에 관한 내용을 실질적으로 변경하는 결의는 규약의 제정, 변경에 관한 사항에 해당하여 노동조합의 특별결의가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 상당하고 따라서 이 사건 의결은 피고 규약 제5조의 1 ‘본 조합은 민주노총에 가입한다’는 내용을 변경하는 것이어서 노조법 제16조 제2항 단서에 규정된 규약의 제정·변경에 관한 사항에 해당함에도 출석 조합원 53.02%의 찬성에 그쳐 재적조합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조합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인 의결정족수를 충족하지 못하였으므로 무효라고 봄이 옳다”고 판시하였다.

3. 판결의 취지와 의미
이 사건 판결의 쟁점은 의외로 간단하다. 규약에 상급단체가 명시돼 있는 경우에 상급단체를 탈퇴하는 의결은 사실상 규약 변경행위라는 것이다. 노조법 제16조 제2항에서 규약의 제정·변경은 재적조합원 과반수의 출석과 출석조합원 3분의 2이상의 찬성을 요하도록 해 특별의결정족수를 규정하고 있으므로 그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 대법원은 95년에도 “총회의 의결방법에 관하여 규정하고 있는 같은 조 제2항은 노동조합의 구성원인 조합원이 그 조직과 운영에 관한 의사결정에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관여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이른바 조합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규정이므로 총회의 의결방법에 관한 위 규정은 강행규정”이라고 판시한 바 있다(95마645). 노조법 제16조를 강행규정으로 파악한 것이다. 결국 서울지하철노조 투표는 이 강행규정에 위반한 것이므로 무효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간단한 사건이 문제가 된 이유는 노조법 제16조 제1항에서 ‘연합단체의 설립, 가입 도는 탈퇴에 관한 사항’을 총회의 의결사항으로 규정하면서도 동조 제2항의 특별결의의 대상으로는 명시적으로 나열하고 있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연합단체의 설립·가입 또는 탈퇴에 관한 사항이 일반결의로 가능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 사건 판결은 “규약에 소속된 연합단체의 명칭이 기재된 이상 소속된 연합단체를 탈퇴하는 의결은 단순히 규약에 배치되는 의결을 넘어서 기존의 소속된 연합단체의 명칭에 관한 규약을 실질적으로 변경하는 것으로 봐야 한다”며 서울지하철노조의 투표를 규약의 변경행위로 파악했다.

그런데 만일 이를 일반의결정족수로 가능하다고 보게 되면 소속된 연합단체의 실제와 규약상 기재의 불일치가 생기게 된다. 이러한 결과는 규약의 제정·변경에 관한 사항에 대해 특별결의를 거치도록 한 강행규정인 노조법 제16조 제2항을 잠탈하게 된다.

노조가 연합단체에 가입하게 되면 여러 가지 의무를 부담하게 되고, 노조법이 연합단체의 명칭을 규약의 필요적 기재사항으로 명시하고 있다. 이에 대한 변경이 있을 때에는 행정관청에 변경신고하도록 돼 있는 등 단순히 의례적으로 상급단체의 명칭을 규약에 표시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법원은 강조했다.

법원은 “노동조합이 어느 연합단체에 가입하는지 여부는 그 노동조합이 지향하는 노선과 이념을 보여준다는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한 사항에 해당해 규약에 명시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또 △노조법 제16조 제2항의 특별 결의 대상 중 ‘규약의 제정, 변경’은 규범이라는 형식, 즉 그 규약에 담긴 내용을 구분하지 않고 그 규약을 변경하는 것에 대해 의결정족수를 특별결의로 하라는 취지로 보이는 점 △노조법 제13조에서 연합단체 변경시 신고하도록 하고 있는데, 규약의 기재와 실제 소속된 연합단체가 달라지게 되는 것은 이러한 노조법의 취지에도 반하는 점 등을 근거로 이 사건 의결은 규약의 변경행위이고 따라서 특별의결정족수를 요한다고 판단했다.

이 사건은 위 쟁점 외에도 예비적 쟁점으로 지회별로 투표용지를 구분하고 지회별로 결과를 집계한 개표행위가 자유롭고 공정한 투표를 침해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이 사건 의결당시 서울지하철노조는 투표용지의 색을 지부별로 5가지 색으로 달리해 만들고 다시 투표용지에 아예 소속 지부와 지회의 명칭을 명기하여 구분했다. 이렇게 투표용지를 구분한 다음에 개표 역시 구분된 투표용지에 따라 지회별로 찬성률을 집계한 것이다. 원고들은 지회별 대의원을 선출하는 투표가 아니라, 노조 전체 단일 사안의 투표를 하는 것이므로 지회별로 투표용지를 구분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어차피 투표구 자체도 지회별로 나뉘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지회가 섞여서 투표구를 구성하고 투표를 행한다. 어느 모로 보나 지회별 투표용지를 색깔과 소속을 기재해 구분하고 결과 집계를 지회별로 할 이유가 없었다. 다만 이 쟁점은 이 사건 의결의 정족수가 일반의결정족수로도 가능함을 전제로 하는 예비적 쟁점이므로 이 사건 판결에서는 판단이 내려지지 않았다.

상급단체의 변경에 대해 종래 노동부의 행정해석은 이 사건 서울고등법원의 판결취지와 동일하게 규약의 변경행위에 해당하므로 노조법 제16조 제2항에 따라 특별의결정족수를 요한다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일부 노조들이 민주노총을 탈퇴하려는 움직임이 가시화된 이후부터 특별한 이유도 없이 일반의결정족수로 족하다고 그 행정해석을 변경했다.

그간 상급단체 변경을 둘러싸고 여러 사업장에서 논란이 있었으나, 이번 사건처럼 법원까지 간 사례가 없었다. 이 사건 서울고등법원 판결은 이에 대한 첫 번째 판결례로서 노동부의 행정해석 변경의 부당성을 확인해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노동조합이 단결력을 확보·유지하려면 그 활동과 내부운영에 모든 조합원이 차별 없이 참가하고 조합원의 민주적 토의에 의해 형성되는 다수의사에 따라 조합운영을 해야 한다. 이를 조합민주주의의 원칙이라고 한다. 노동조합의 자치적 규범인 규약을 두고 있는 것, 규약에 이러이러한 사항을 필요적 기재사항으로 정하고 있는 것도 바로 노동조합의 운영과 활동에 관한 중요한 사항을 사전에 규정하기 위해서다. 조합원은 물론이고 노조의 집행부도 이에 따르게 하고 노동조합의 운영이 위 규약에 의해서 이뤄지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규약의 변경 행위 등 의결도 조합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규정인 노조법 제16조를 따라야 한다. 이 사건 판결은 이러한 조합민주주의 원칙을 다시 한 번 확인해 준 판결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이 사건은 연합단체의 변경에 대해 가맹한 상급단체가 규약에 명시돼 있는 경우다. 만일 상급단체에 가입돼 있으나 어떤 사정으로 규약에 명시되어 있지 않은 경우에는 해당 규약이 노조법상 시정명령의 대상이 됨은 별론으로 하더라도 이를 규약의 변경 사항이라고 보기 어려울 것이다. 그럴 경우에는 일반의결정족수에 따른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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