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노무사
(민주노총 법률원)

전국 시·도교육청(소속 초·중·고등학교 포함)에 채용된 학교비정규 노동자들을 조합원으로 두고 있는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와 전국여성노동조합·공공운수노조는 올해부터 각 시·도교육청 단위 단체교섭을 진행하기 위해 자율적으로 공동교섭단을 꾸렸다. 전국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전국학비연대)를 구성한 것이다. 공동교섭단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제29조의2제1항에서 정한 ‘2개 이상의 노동조합 조합원을 구성원으로 하는 교섭대표기구’를 의미한다.

올해 4월 부산 등 14개 지역 교육감을 상대로 노조법 시행규칙 소정의 기재사항을 명시해 교섭요구서를 발송했다. 노조법에 따르면 각 교육청은 전국학비연대의 교섭요구서를 받은 날 교섭요구사실을 공고해야 한다. 그러나 각 교육감은 전국학비연대 소속 조합원들에 대한 노조법상 사용자성 자체를 부인하면서 교섭요구사실을 공고하지 않았다. 이로 인해 노조법 소정의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가 진행되지 못한 채 수개월이 지났다.

전국학비연대가 교섭요구서를 발송한 시점은 서울일반노조와 서울교육청(교육감) 사이의 교섭요구 사실공고에 대한 시정신청 사건에 대해 중앙노동위원회가 지난 4월2일 "교육감의 사용자성을 인정하고 교섭요구사실을 공고하라"는 취지로 재심결정을 내린 이후였다. 부산 등 14개 지역 교육감은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으면서도 악의적으로 사용자성을 부인하면서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의 개시를 미뤘다. 사실상 교섭을 거부한 것이다.

이에 전국학비연대는 이미 교섭요구 사실공고에 대한 시정신청을 거친 충청남도 지역을 필두로 지난달 13일을 전후해 각 자방자치단체(교육감)를 상대로 관할 지방노동위원회에 쟁의조정을 신청했다. 이에 대해 각 지노위는 하나같이 “본 노동쟁의 조정신청 사건은 노조법상 교섭대표노동조합과 사용자 간의 노동쟁의라고 보기 어려워 조정대상이 아니다”며 “노조법에서 정한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를 거쳐 교섭대표노동조합을 정해 사용자와 교섭할 것을 권고한다”는 취지로 사실상 각하했다.

이게 무슨 '듣보잡' 같은 상황이란 말인가. 전국학비연대는 노조법에 정한 대로 교섭을 요구했다. 그럼에도 각 지역 교육감은 교섭사실 요구공고를 하지 않았다. 노조법을 위반한 것이다. 이로 인해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가 전부 중단됐다. 다시 말해 각 지노위가 권고한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를 거쳐 교섭대표노동조합을 정하는 것"은 각 교육감의 위법한 교섭거부(교섭창구 단일화절차를 진행하지 않음으로써 사실상 교섭을 거부하고 있는 성실교섭의무 위반행위)로 인해 불능인 상태다.

전국학비연대는 자율적 창구단일화에도 불구하고 교섭대표노조로 확정되기 위한 형식적 절차를 완료하지 못했을 뿐이다. 그런데도 지노위는 한결같이 창구단일화 절차를 완료하지 못한 법적 책임을 노조에 돌려 버렸다.

이와 관련해 전국학비연대는 이달 초 중앙노동위원회 조정심판국 관계자를 찾아갔다. 교섭요구 사실공고에 대한 노동위의 시정결정이 있은 후에도 사용자가 교섭요구 사실공고를 하지 않고 계속 교섭을 거부하면 노조가 노조법 시행령의 다음 절차에 따라 노동위에 교섭요구 노동조합 확정공고에 대한 이의신청을 하고, 또 그 결정이 있으면 과반수 노조에 대한 이의신청을 한 뒤 노동위의 결정을 받는 방법으로 창구단일화 절차를 완료할 수 있는지 물어봤다. 돌아온 대답은 “안 된다”는 것이었다. 현행법상 사용자가 교섭요구 사실공고를 하지 않는 한, 지노위의 시정결정을 받아도 노조는 더 이상 창구단일화 절차를 진행할 수 없고, 따라서 교섭대표노조가 될 수도 없고, 쟁의조정 신청인 적격도 획득할 수 없다는 취지의 대답만이 돌아왔다.

이 법을 만든 국회에, 이 법 시행령을 만든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 노조의 단체교섭권도, 쟁의조정 신청권도 사용자가 마음대로 주고 빼앗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 법과 시행령을 만든 취지인가. 그래도 이 법이 위헌이 아닌가. 아직도 이 법이 폐기처분의 대상이 아니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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