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실장

시골 출신 386들의 로망이었던 드라마 ‘빛과 그림자’가 끝났다. 드라마는 연예기획사를 모티브로 군사정권의 치부를 드러냈다. 드라마는 독재권력에 빌붙었던 장철환도 차수혁도 다 죽고, 주인공 강기태는 무사형통하는 것으로 끝났다.

그러나 현실도 그러할까. 아니다. 군사정권에 빌붙어 해 먹었던 이들은 드라마와 달리 지금도 잘산다. 박정희 정권 시절 중앙정보부장을 지낸 고 이후락씨의 막내아들 이동욱(50)씨가 최근 횡령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중앙일보 11일치 20면)

이씨는 지인 최모씨가 못 받은 돈 15억원을 대신 받아 주기로 하고 중간에서 4억8천600만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이씨는 지난 2009년 숨진 이후락 부장의 셋째 아들이다. 2000년 무렵까지 벤처기업인으로 승승장구했다. 이씨는 서울대를 다니다가 미국 유학을 했고, 87년 한 투자자문회사에 취업했다. 2000년에는 대기업 오너들로부터 수억원씩 투자를 받아 벤처회사인 ‘씨씨케이벤’을 설립해 주목을 받았다.

이씨는 2006년 회사자금을 횡령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으면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법원은 2008년 회사자금 5억5천만원을 빼돌리고 회사에 170억원의 손해를 입힌 혐의로 이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이씨는 이번엔 남의 돈을 대신 받아 착복한 셈이다. 사업 재기를 위해 조급했나 보다. 조갑제는 88년 군사정권의 대표적 게이트 사건을 추적해 펴낸 ‘국가안전기획부’란 책에서 이후락 등 중정부장과 안기부장의 행태를 적나라하게 비판했다.

조갑제는 ‘국가안전기획부’의 279쪽에서 “이후락은 박정희 정권의 대형 사회간접자본 투자 브로커였던 사울 아이젠버그의 후견인이었다”고 적었다. 당시 이후락과 아이젠버그가 해 먹은 한국의 대형 공공설비는 호남비료·영월화력 2호기와 부산화력 3·4호기, 영남화력 1·2호기, 동해화력 1·2·3호기 등이다.

이렇게 권력의 떡고물을 챙겨 온 이후락은 세 아들을 당시 유명 재벌의 사위로 만들어 끈끈한 혈연관계를 맺었다. 이후락의 장남 이동진은 호남정유를 거쳐 LG정유가 된 당시 흥국상사 서정귀 사장의 사위가 됐다. 차남 이동훈은 한화 김종희의 사위이자 김승연 현 회장의 매형이다. 삼남 이동욱은 현 최태원 SK 회장의 사촌매형이 됐다.

한국의 정유사업에 투자한 미국의 걸프사는 63부터 80년까지 17년 동안 투자액의 14배인 4억267만5천 달러를 빼 갔다. 걸프의 해외투자 사상 일찍이 이런 노다지는 없었다. 조갑제가 밝혀낸 63년 6월25일 한국정부와 걸프가 서명한 기본협정의 도입 원유가격 산정기준을 보면 동종의 원유라도 일본보다 평균 10%이상 비싸게 한국에 팔았다. 문제는 미국 석유사의 폭리를 시정하려는 노력이 정부 차원에서 진지하게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다.

걸프 등 미국 석유회사 견제를 어렵게 한 사람은 이후락이다. 혼맥과 검은 돈으로 석유재벌과 굳게 유착된 이후락은 그들의 수문장 역할에 충실했다. 걸프가 벌어 간 떼돈은 모두 우리나라 소비자들의 호주머니에서 나간 것이지 이후락씨의 스위스 은행 비밀계좌에서 지출된 것은 아니다.

이렇게 집요하게 국가안전기획부를 취재한 조갑제 기자는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물음으로 책의 결론을 내린다.

“안기부장이란 자리의 높음과 크기와 강함을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그들에게 던져야 할 질문사항은 많다. 간첩수사라는 것이 사법절차뿐 아니라 인간윤리까지 무시하고, 간혹 자신의 양심까지 속여 가면서 무기수와 사형수를 만들어야 할 만큼 고귀한 작업인가. 고문의 불가피성을 강조하는 당신네들은 단 한 번이라도 고문을 받아 본 적이 있는가. 역사의 평가란 도대체 무엇인가.”(316쪽)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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