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수강
통합진보당
정책전문위원

“자본의 홍등가”

독일 사민당 소속의 아무개 의원이 ‘역외(off-shore) 금융센터’에 절묘하게 붙인 이름이다. 오늘날 세계 곳곳에는 역외 금융센터가 존재한다. 버뮤다·버진 아일랜드·룩셈부르크·싱가포르·말레이시아 라부안 등은 유명한 역외 금융센터들이다. 이곳에서는 모든 금융규제와 세금을 가뿐히 피할 수 있다. 역외 금융센터를 보통 조세천국(조세 피난처)이라고도 하는 까닭이다. 여기에서는 누가 무슨 금융거래를 했는지 비밀에 부쳐준다. 돈의 꼬리표가 사라진다. 불법적인 돈이라 하더라도 새로운 모습을 얻어서 다시 합법적인 화폐순환의 고리로 찾아 들어갈 수 있다. 그래서 규제와 세금을 피하려는 돈, 온갖 불법, 범죄와 관련된 뭉칫돈, 자금세탁이 필요한 검은 돈이 이 자본의 홍등가로 몰려든다.

이 홍등가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그 규모가 훨씬 크다. 홍등가에 유입된 자금은 십수조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공식적으로 입금된 전 세계 모든 외국인들 예금의 절반 정도 규모다. 홍등가에 유입된 자금의 규모가 연간 전 세계 원유 거래액의 30배에 이른다는 보고도 있다. 유엔 마약통제과에 따르면 마약밀매로 해마다 약 4천억달러의 자금이 조성돼 대부분 버뮤다 삼각지대의 역외 금융센터로 흘러들어간다고 한다. 독일 세무공무원노조가 몇 년 전에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독일에서 역외센터로 유출된 자산은 약 3천억달러에 이른다고 한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여러 개발도상국들에서도 대규모 자금이 역외 센터로 흘러든다.

자본의 홍등가는 분명 문제가 있는 곳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얘기했듯이 이 역외 금융센터는 부자와 대기업의 탈세기회를 늘려줌으로써 소득 불균형을 키우고 복지재원 조달을 어렵게 한다. 또한 97년 동아시아 위기에서도 드러났듯이 역외 금융센터를 통한 금융거래는 금융위기를 증폭시키기도 한다. 여러 나라들의 금융규제를 무력화시키고 완화시키는 데서도 이 역외 금융센터가 중요한 구실을 한다. 그런데 이 역외 금융센터는 어쩌다 우연히 탄생한 것이 아니다. 자본의 홍등가는 금융의 확장에 큰 이해를 가진 미국과 영국이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발전시킨 것이다. 사유재산제에 바탕을 둔 일부일처제가 매매춘이라는 보완재를 필요로 하는 것처럼, 금융자본주의는 역외 금융센터를 필요로 한다. 하여 자본의 홍등가는 주로 섬 지역에 존재할 뿐만 아니라 영국의 시티, 미국의 월스트리트에도 존재한다. 시티와 월스트리트가 역외 금융센터의 후원자일 뿐만 아니라 어찌 보면 역외 금융센터 자체다. 이러한 사실은 니컬러스가 ‘보물섬’이라는 책에서 얘기하고 있는 내용이다.

자본의 홍등가가 미치는 영향권은 우리의 생활에까지 뻗어 있다. 우리나라에 유입된 외국자본의 많은 부분은 사모펀드·헤지펀드 형태로 역외 금융센터에 적을 두고 있다. 여기에는 이른바 검은머리 외국인들의 돈도 대규모로 포함돼 있을 것이다. 론스타는 스타타워와 외환은행을 거래하면서 역외 금융센터를 이용해 세금을 회피한 바 있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우리나라 대부분의 재벌들은 버진 아일랜드·모리셔스·파나마 등 자본의 홍등가에 각각 몇 개, 몇십 개의 거점을 두고 있다. 재벌들이 자본의 홍등가를 들락거리는 이유는 새삼 들먹일 필요도 없다. 더욱이 국내에도 역외 센터가 존재한다. 예컨대 강원랜드가 바로 자본의 홍등가 역할을 한다. 강원랜드에서는 엄청난 규모의 돈이 수시로 세탁돼 나온다. 강원랜드가 설립된 진정한 이유가 게임수요 충족이 아니라 자본 홍등가의 필요성에 있었던 것은 아닐까.

우리나라에서 자본의 홍등가를 합법화하자는 움직임도 있다. 예를 들어 제주도를 역외 금융센터로 발전시키자는 아이디어가 그것이다. 지난 참여정부의 주요 인사들은 우리가 앞으로 뭘 먹고 살아야 하는지를 묻곤 했다. 그러다 내린 결론이 제조업은 힘들고 금융을 발전시켜서 먹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때 금융 허브론이니 역외 금융센터니 하는 여러 아이디어들이 제출됐다. 그러나 참여정부 인사들의 이러한 문제제기는 얼핏 심오한 듯하지만 사실은 성장 이데올로기의 반복에 지나지 않는 것이었다. 이들은 뭘 먹고 살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를 물어야 했다. ‘독식할 것인가, 함께 골고루 잘 먹을 것인가’를 물어야 했다는 얘기다. 뭘 먹을 게 없어서 문제가 아니라 독식하는 것이 문제였기 때문이다. 어쨌든 우리나라에 자본의 홍등가를 만들자는 아이디어도 이러한 참여정부의 황당한 문제제기에서 시작됐다.

금융자본 자체가 자본의 홍등가를 필요로 한다고 했을 때 앞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자본의 규모가 커감에 따라 틀림없이 홍등가에 대한 요구도 함께 커갈 것이다. 그러나 매매춘을 미화할 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본의 홍등가도 미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세계적 수준에서 금융 자본주의 체제가 번성하는 한 이를 규제하는 것 자체가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렇더라도 자본의 홍등가를 규제하려는 노력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세계은행과 UN의 공식보고서에서 말하듯 자본의 홍등가는 자본주의의 아킬레스 건(Capitalism's Achilles Heel)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통합진보당 정책전문위원 (link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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