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노조 법률원)

금속노조 지엠대우차비정규지회 조합원들이 높이 9미터에 이르는 부평공장 정문 광고탑 위에 올라간 것은 칼바람이 시작되던 2010년 12월1일 새벽이었다. 두 명의 조합원은 얇은 줄에 매어 올린 음식으로 연명하며 그해 겨울을 버텼다. 그들이 그렇게 힘들게 세상에 알리고자 했던 것은 불법파견을 중단하고 정규직화를 실현하라는 것이었다.

사내하청 노동자인 그들은 2007년 9월2일 비정규직지회를 설립하고 금속노조에 가입했다. 노조를 설립하자마자 한국지엠과 하청업체는 ‘노조홍보물’을 배포하는 일상적인 조합활동을 방해하는 것도 모자라 핵심 조합원들을 해고하거나 계약해지·정리해고 함으로써 비정규직노조의 싹을 자르고자 했다. 지회가 결성된 지 불과 2주일도 안 돼 지회간부 전원을 해고할 정도였다. 광고탑에 올라간 조합원들도 모두 그때 해고됐다. 그 결과 비정규지회에 있던 조합원 100여명 중 다수가 탈퇴했고 남은 조합원 20명 중 해고자가 19명이 됐다.

아무리 춥더라도 광고탑에 올라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회사는 비정규 노동자들을 대화상대로 인정하지 않았으며 그 높은 광고탑에 올라가야만 그나마 목소리를 들으려 했기 때문이다.

사실 조합원들은 법적인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으려고 나름 노력했다. 광고탑이 설치된 장소인 부평공장 정문 앞 좌우 인도에 계속해서 적법한 집회신고를 하고 질서유지인 10여명을 두고 평화적으로 진행했다. 그러한 꼼꼼한 노력 덕분인지 경찰은 두 달 넘은 집회 기간 동안 해산명령을 못하고 밤낮으로 지켜보기만 했다. 대신 회사가 나서 노무팀과 용역업체를 동원해 고공으로 올리는 밥줄·목숨줄을 끊기 위해 부지런히 낫질을 해 대고, ‘건조물침입’과 ‘업무방해’등으로 고공농성자들을 고소하고 ‘현수막을 제거하라’는 가처분을 핑계로 집행관을 동원해 농성자들을 끌어내리려 했다.

극단적인 노사 대치 끝에 두 달이 지나갈 무렵 한국지엠과 노조는 극적으로 합의했고 농성을 종료했다. 그런데 그 직후 고공 농성자들과 지회장에 대해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필자의 첫 번째 구속영장 사건이 됐다. 구속이라는 두려움 앞에서도 조합원들은 영장판사에게 왜 올라갈 수밖에 없었는지, 당당하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했고 신참 변호사인 필자를 감동시켰다. 어려워 보이던 사건이었지만 다행히 영장은 기각됐다.

1년이 지나 그들을 다시 만났다. 이번엔 혼자가 아니라 광고탑 아래에서 함께 한 지역활동가들, 연대단체 회원들, 정규직 조합원들과 함께였다. 비정규지회 조합원들이 분투하는 동안 누군가는 계속 그 목소리를 듣고 있었던 것이다. 광고탑 아래 매일 진행되던 집회에서 세상 사람들 들으라고 같이 소리를 질러 주고 함께 싸웠던 것이다. 고공농성자들과 비정규지회는 알고 보니 혼자가 아니었다. 그래서 춥고 긴 겨울밤도 견뎌 낸 것이었다.

그들은 같이 목소리를 냈다는 이유로 공범이 되고 법정에 서게 됐다. 법정에서 서로 처음 인사하게 된 사이도 있었지만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집회에 참가해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라고 외친 것이 뭐가 나쁘냐, 시끄럽다며 낫을 휘두르며 집회를 방해하고 불법파견 따윈 없다는 회사가 진짜 나쁘지 않은가. 그들의 무죄 주장은 당당했고, 이유가 있었다.

필자는 검찰이 기소한 대여섯 개의 무지막지한 죄명에 기가 죽었던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 법정 역시 투쟁의 장소이고 연대의 공간인 것이다. 희망버스에서, 콜트 농성장에서, 쌍용자동차 분향소에서 함께 노래하고 소리치는 이들에게는 너무 자연스러운. 그들을 만나면서 법정에서 그 연대의 떳떳함을 잘 전달하고 이해시키는 것, 그것이 내 몫의 연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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