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대 법인화 저지와 교육공공성 강화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지난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의 퇴진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주제는 국립대 법인화 저지에 한정되지 않았다. 교수·공무원·학생단체 대표자들은 △고교 평준화를 사실상 해체시킨 자립형사립고·마이스터고 확대 정책 △대학 구조조정 △비리 사학재단의 복귀 등에 관해 연신 문제를 제기했다. 이들의 성토는 1시간 넘게 이어졌다. 지난 4년 교육계에서 과연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까. <매일노동뉴스>가 이명박 정부의 주요 교육정책을 초중등 교육부문과 고등교육 부문으로 나눠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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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학기술부는 2009년 12월23일 '2009 개정 교육과정'을 고시했다. 교육과정을 수시·부분적으로 개정하기로 한 것이다. 8차 개정 교육과정이란 용어 대신 도입됐다. 교육과정의 내용과 목적을 살펴보면 이명박 정부가 교육을 바라보는 관점을 엿볼 수 있다.

2009 개정 교육과정에 'MB 교육정책' 담겨

개정 교육과정은 학기당 이수과목을 최대 5과목 줄이고, 교과 집중이수제를 도입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예·체능 과목 등은 특정 학기에 몰아 수업하고 단위학교 자율로 교육과정을 20% 범위 내에서 증감해 운영할 수 있게 했다. 국어·수학·사회·과학·영어 교과에서 수준별 수업을 권장하는 것도 눈에 띈다. 교과부는 개정 이유에 대해 "획일적인 교육에서 탈피해 개인 능력과 적성에 맞는 창의적 능력을 기르는 교육으로 전환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이영탁 참교육연구소 소장은 "입시 위주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이 소장은 "교과별로 학년 학기단위 집중이수가 가능해지면서 국·영·수 중심으로 획일화돼 다양한 교육을 이수할 기회가 박탈될 것"이라며 "지적능력 활용학습 대신에 입시와 관계된 지식확인학습으로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일제고사 논란 '교육시장화 정책'과 맞물려

국가 수준의 학업성취도평가를 일제고사로 전환한 배경에도 교육에 대한 정부의 가치관이 배어 있다. 학업성취도평가는 표집학생(전체 학생의 1~3% 수준)을 대상으로 교육과정을 학생들이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지를 진단하기 위해 실시돼 왔다. 그런데 2008년부터 전국의 모든 학생들이 일제히 치르는 전수평가 방식으로 바뀌었다. '일제고사'라 불리는 제도다.

일제고사의 폐해는 익히 알려졌다. 시험결과를 공개하면서 학교 간 경쟁(수준차)이 생겼다. 또 학교장 경영평가에 사용되면서 성과급제와 맞물리는 바람에 교육현장에 과열현상이 나타났다. 다수의 학교가 일제고사를 앞두고 학생들에게 성적에 따른 상품을 내거는 등 웃지 못할 일도 비일비재하다.

일제고사에 반대하는 일부 교사와 학부모들은 체험학습을 실시하며 시행 초기부터 저항했지만 이에 대응하는 정부의 모습은 폭력적이었다. 국가 수준의 학업성취도 평가를 방해했다는 이유로 체험학습을 안내한 교사들에게 파면과 해임 등 중징계가 내려졌다.

일제고사는 교육경쟁을 부추긴다는 우려 외에도 교육에 대한 국가의 역할을 '시험감독'과 '정보제공'으로 한정한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고 있다. 정부는 일제고사 실시이유를 "기초학력에 도달하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수준별 교육을 실시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반면에 교육운동진영은 "교육의 시장화를 추진하기 위한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한다. 일제고사와 교육시장화는 어떻게 연결되는 것일까. 정부는 일제고사를 실시해 그 결과(정보)를 공개한다. 공개 대상은 소비자인 학부모들이다. 학교별·지역별 학력편차에 대한 정보를 습득한 학부모들은 이를 바탕으로 소비 방향을 선택할 수 있다. 즉 일제고사는 학생을 위한 정책이라기보다는 학력수준에 관한 관심이 높은 학부모들을 대상으로 한 정책에 가깝다.

MB가 내놓은 신상품 '고교다양화 300 프로젝트'

이명박 정부는 교육시장에 신상품을 내놓는 것에도 주저함이 없었다. 취임 이후인 2008년부터 '고교다양화 300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기숙형 공립고 150개·마이스터고 50개·자율형 사립고 100개 설립을 추진했다. "누구든 적성에 따라 골라갈 수 있는 고교를 만들겠다"는 구호를 앞세웠다. 이와 관련해 손충모 전교조 대변인은 "고교다양화 300 프로젝트에 따르면 학생 선발을 통해 들어가는 특수한 고교가 전체 일반 고교의 24%를 차지하게 된다"며 "서울소재 4년제 대학의 2008년 입학정원이 23%인데 서로 비슷한 규모가 된다"고 말했다. 김정금 대구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정책실장은 "자율형 사립고 또한 전국적인 서열을 가질 것이고, 좀 더 나은 사립고에 들어가기 위한 입시경쟁이 전국 단위로 일어날 것"이라며 "아이들은 시험준비에 몰리고 학부모들은 사교육비 마련과 정보수집에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일이 심화될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진보교육감 당선으로 한풀 꺾이나 싶더니…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에 대한 국민적 저항은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 확인됐다. 서울·경기·강원 등 전국 6개 시·도에서 예상을 깨고 진보교육감이 당선된 것이다. 그럼에도 정부는 선거 결과에 굴하지 않고 자기 정책을 관철하는 데 집중했다. 이로 인해 무상급식·학생인권 조례·혁신학교와 자사고 지정 및 내부형 공모제 교장 임명 등 곳곳에서 갈등이 빚어졌다. 교장공모제로 뽑힌 전교조 교사의 임용제청을 거부하고, 학교 신설비를 무상급식 재원으로 사용하자 예산을 삭감했다. 옛 민주노동당을 후원하고 시국선언에 참여한 교사에 대한 징계를 거부하자 교육감을 직무유기로 고소하기도 했다.

최근 교과부가 추진하고 있는 소규모학교 통폐합 정책은 교육을 '경제와 효율성'의 개념으로 바라보는 이명박 정부의 성격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계획에 따르면 적정규모 학교 양성을 위해 학급당 학생수 20명 이하의 소규모 학교는 통폐합해야 한다. 이에 대해 전국농민회총연맹·전교조 등은 지난달 31일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경비 절감만을 위해 통폐합을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며 "경제적 이익이 아니라 기회균등을 보장하고 공교육의 질을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MB 고등교육 정책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이명박 정부의 고등교육 정책은 '대학 자율화'란 말로 포장돼 있다. 수능등급제를 보완하고, 수능 응시과목을 축소한 뒤 대입완전 자율화로 가는 중·장기 로드맵이다. 고등교육이 지향하는 방향을 설정하는 일에는 개입하지 않고 대입입시 관리에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고등교육 정책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방향은 2008년부터 윤곽이 드러났다. 대입 자율화를 외치며 대입업무를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에 이양했고, 정책 집행에 있어서도 대교협의 권한을 대폭 강화했다. 그러다 2009년 교과부는 대교협을 대학 평가인증 기관으로 공식 지정하기에 이른다. 인증평가 결과는 2014년부터 정부 재정지원사업과 연계된다. 대교협의 영향력이 더욱 막강해지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문제는 대교협이 각 대학들이 모여 있는 민간기구라는 점이다. 고등교육 정책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대입정책을 이익집단에 맡긴 셈이다.

"서울대 법인화로 교육 공공성 훼손될 것"

최근 논란의 핵으로 떠오르고 있는 서울대 법인화 논란도 고등교육을 민간영역으로 넘기려는 흐름 속에서 파악할 수 있다. 2011년도 예산안 처리로 여야가 날선 공방을 벌이던 2010년 12월8일. 당시 여당이던 한나라당은 예산안 등을 국회의장 직권상정을 이용해 날치기 처리했다.

법인화 법안의 핵심은 대학 지배구조 변경에 있다. 국립대의 지위에서 법인으로 바뀌면 대학 구성원들의 신분도 바뀐다. 경쟁에 뛰어들게 되면 대학의 경쟁력이 강화될 것이라는 게 교과부의 주장이다.

박배균 서울대 교수는 올해 초 '서울대 법인화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제목으로 작성한 자료집에서 "특별법 제정을 통해 서울대 발전을 추진하던 세력과 법인화 추진세력이 결합하면서 국립대를 상대로 선택적 법인화 전략이 추진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비리 사학재단은 복귀, 지방대는 구조조정

교과부가 '대학 구조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추진하고 있는 구조조정도 논란에 휩싸여 있다. 교수노조는 "정부가 취업률을 절대기준으로 하는 말도 안 되는 지표를 들이대며 부실대학의 낙인을 찍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강남훈 교수노조 위원장은 "2020년까지 대학 정원의 30%가 줄어드는데도 정부가 대학 서열화를 통한 구조조정을 계획하고 있다"며 "이대로라면 지방의 교육기반은 완전히 무너지고 사실상 수도권 대학만 살아남게 된다"고 우려했다.

이명박 정부의 대표적 ‘과거 회귀 사례’로 꼽히는 비리사학 재단의 복귀도 눈에 띈다. 사학비리 척결과 비리재단 복귀저지를 위한 국민행동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문제가 됐던 사학재단이 복귀한 학교는 중고등학교 16곳, 전문대 8곳, 대학 10곳 등 34개에 이른다. 논란의 중심에는 사학분쟁조정위원회(사분위)가 있다. 대학 정상화 심의권한을 갖고 있는 사분위는 대통령(3명)·국회의장(3명), 대법원장(5명)이 추천해 구성하도록 돼 있다. 정대화 국민행동 상임대표는 "이명박 정부와 새누리당이 사학재단측과 가까운 사람들을 사분위 위원으로 추천했다"며 "제도의 결함이 이명박 정권이라는 권력의 결함과 결합되면서 제도와 인물의 문제점이 동시에 나타나 최악의 결과가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민행동은 비리사학을 준공영화해서 혁신학교·대학으로 지정하는 방안을 요구하고 있다.

"경쟁과 효율이 아니라 협력과 지원으로"

총선을 한 달여 앞둔 지난 3월14일 전국교육희망네트워크·친환경무상급식풀뿌리국민연대·전국학생인권연석회의 등 교육운동단체들이 '2012 교육운동 연석회의'를 출범시켰다. 연석회의는 "2012년 총·대선에서 한국사회를 지배해 온 교육체제의 근본적인 재편을 주장할 것"이라며 정치권력 급변기에 교육 개혁 과제들을 전면화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손충모 전교조 대변인은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은 경쟁과 효율이라는 단어로 표현되는데, 우리는 협력과 지원을 화두로 대안을 제시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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