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재벌공화국’과 ‘비정규노동 체제’. 900만명의 비정규 노동자의 대척점에 비대한 재벌자본이 마주 서 있는 지금의 한국 사회를 상징하는 개념들이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화, 즉 사회경제 민주화를 통한 빈부격차 해소와 노동기본권 신장을 위해선 동전의 양면인 재벌 문제와 비정규직 문제를 함께 혁파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자동차·조선·전자·철강·기계 등 세계적 규모의 재벌자본 소유 제조업체들에 밀집된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문제를 더욱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사내하청 정규직화, 원·하청 공동투쟁과 1사1노조 재추진으로 커다란 관심을 불러 모으고 있는 현대자동차의 상황은 한국사회 경제 민주화와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가늠할 수 있는 총체적 조감도다.

현대자동차는 올해 2월23일 대법원 불법파견 판결 이후 최병승씨를 원직복직시키라는 중앙노동위원회의 결정마저 묵살하면서 이달 8일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현대차의 막가파 식 행보는 법보다 주먹이 가까운 천민자본주의의 민낯 그대로다. 정몽구 회장은 최소한 2년 이상 근속한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전원 직접고용 정규직화해야 한다. 그런데도 최병승 1인에게만 한정된 판결로 호도하더니 이제는 복직시킬 의사마저 희박해 보인다. 적반하장 격으로 2년 이하 사내하청 노동자 1천564명을 이달 30일자로 모두 계약해지한 후 직접고용 계약직으로 강제 전환하겠다고 공표했다. 8월2일부터 발효되는 개정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의 ‘고용의무’ 적용을 회피하기 위해서다. 정규직화 대상자들을 아예 ‘직고용 알바’로 전락시키겠다는 것이다.

그뿐인가. 불법파견을 은폐하기 위해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맞교대하는 공정에 대해 해당 사내하청 노동자의 해고를 추진하고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혼재작업하는 라인에 대해 비정규직만 한쪽으로 몰아넣는 공정재배치로 진성도급화까지 꾀하고 있다. 이처럼 현대차는 대법원의 불법파견 판결과 개정 파견법을 모두 회피하기 위해 갖은 꼼수를 동원하고 있다.

현대차 불법파견을 둘러싼 상황 전개를 복기해 보면 새누리당이 왜 19대 국회 1호 민생법안으로 사내하도급법을 발의하면서 100일 내 입법 관철을 공언했는지 명확해진다. 새누리당이 발의한 법안은 재벌자본 대부분이 연루된 사내하청·불법파견 문제를 합법적인 외피로 포장해 면죄부를 주면서 문제 해결을 원천봉쇄하기 때문이다. 집권여당과 재벌자본이 합작해 치밀한 셈법으로 재벌특혜법을 통해 불법파견을 합법으로 둔갑시키려 총력전을 펼치고 있는 셈이다. 올해 1분기 당기순이익만 2조4천515억원에 이르는 현대차의 사회적 무책임과 도덕적 불감증을 끝 간 데 없이 부추기는 형국이다. 오죽하면 비정규직 노조들이 사내하도급법을 ‘정몽구 보호법’이라고 부르겠는가. 이 같은 정권과 자본의 전방위적 공세 속에서 한국 최대의 민주노조가 위치하고 있는 사업장에서 10여년 동안 전개돼 온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이 2004년과 2010년의 상흔을 딛고 올해도 끝내 승리하지 못한다면, 그 부정적 여파는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클 것이다.

비정규직 철폐·정리해고 철폐·노동법 전면 재개정을 3대 핵심 요구로 내건 민주노총 8월 총파업의 실질적인 성패는 특수고용직 노동기본권 보장 요구를 앞세운 건설노조·화물연대 공동투쟁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불법파견 철폐투쟁의 도화선인 현대차 원·하청 공동투쟁 역시 마찬가지다. 전체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정규직화하기는커녕 불법부당한 집단해고를 자행하고 평생 비정규직으로 부리겠다는 현대차 경영진을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단결투쟁으로 심판하지 못한다면 백약이 무효가 될 것이다.

정규직 중심으로 경시돼 온 민주노조운동의 자존심과 명운이 걸린 투쟁이다. 사업장에서의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원·하청 연대를 통해 노동이 주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르는 중차대한 투쟁이다. 그만큼 민주노총과 금속노조도 비상한 결의를 모아 앞장서야 한다. 현대차를 비롯한 재벌자본의 불법파견 꼼수를 현장에서 응징하는 그날,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얼굴에 비로소 환한 웃음이 피어날 것이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namsin196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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