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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근로자건강센터] "영세노동자 주치의, 건강 만물상에 놀러 오세요"
   
▲ 꺽고 누르고 당겨 근로자의 지친 몸을 건강상태로 만드는 것. 이게 진짜 '꺽기도'다. 인천 근로자건강센터 근골격계질환예방실 박동환 물리치료사(주임)가 지난 15일 센터를 찾은 근로자에게 물리치료를 해주고 있다. 정기훈 기자

"저, 허리가 아파서 왔는데요."

지난 14일 오후 한 남성이 어두운 표정으로 인천 남동공단에 위치한 인천근로자건강센터를 찾았다. 운송업에 종사하는 정아무개(31)씨는 한 달 전부터 허리가 아파 센터를 찾았다고 했다. 접수를 마치고, 기초검사(혈압·혈당·당뇨)를 실시했다. 최근 우울한 기분을 느낄 때가 많다고 해서 직무스트레스 검사도 함께 받았다.

기초검사 결과는 정상이었다. 반면 직무스트레스 검사에서 "신체 피로도가 높아 자율신경의 균형이 깨진 상태"라는 의견이 나왔다. 상담심리사는 "심각한 정도는 아니지만 더 악화되기 전에 충분한 휴식과 운동이 필요하다"고 권유했다. 정씨는 기초검사·심리상담 결과를 갖고 건강상담에 들어갔다.

직업환경의학전문의는 정씨와 함께 업무과정·작업환경·가족력·과거력·증상 등에 대해 20여분 정도 대화를 나눴다. 허리에 염좌가 발생했다는 진단이 나왔다. 전문의는 운동 동영상을 보여 주며 운동처방을 내리고, 치료를 위해 금주를 주문했다. 정씨는 “몸이 안 좋은 아내에게도 운동 동영상을 보여 주고 싶다”며 동영상을 달라고 요청했고, 전문의는 흔쾌히 수락했다. 정씨는 "요즘 백화점에서 일하는 아내의 몸이 심하게 부어 걱정이 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머뭇거리며 말을 이어 갔다. 전문의는 “직접 (부인의) 몸 상태를 봐야 알 수 있다”며, 상담날짜를 예약해 줬다. 표정이 밝아진 정씨는 근골격계질환 예방상담실로 옮겨 물리치료사에게 운동법을 배우고 실습까지 했다. 한 시간 반 동안 진행된 이 과정은 모두 무료로 진행됐다. 정씨는 "병원에 가는 것이 부담스러운 우리 같은 사람들을 센터가 도와줘서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고 웃었다. 그는 "남동공단 사람들은 사는 게 바빠 병으로 일을 못하게 되기 전까지는 건강에 신경 쓸 여유가 없어 센터가 있는지조차 알 방법이 없다"며 "정부가 적극적으로 홍보에 나서 저 같은 사람들이 더 많이 센터를 이용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 센터를 찾은 근로자가 기초검사실에서 혈압을 측정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업무상질병 10명 중 7명 '영세사업장 노동자'

지난해 4월 설립된 인천근로자건강센터는 시간·돈·여유가 없어 병원에 못 가는 영세·소규모 사업장 노동자들에게 무료로 건강서비스를 제공한다. 대기업의 경우 회사 내 의무실을 두고 노동자들의 건강을 돌보지만, 50인 미만 소규모 사업장은 법적으로 보건관리자 선임의무가 없는 데다 경제적 여력이 없어 건강관리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지난 2010년 산업재해 통계에 따르면 업무상질병으로 인한 재해자 10명 중 7명이 50인 미만 소규모사업장 노동자였다.

정부는 소규모 사업장에 주치의와 의무실 역할을 담당하게 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근로자건강센터 사업을 추진했다. 고용노동부가 산재예방기금으로 지원하고, 안전보건공단이 예산에 따라 센터를 운영하고자 하는 기관들의 제안을 받은 뒤 심의를 거쳐 센터를 설립한다. 인천근로자건강센터는 연세대학교가 운영하고 있다. 센터에서는 직업환경의학전문의·물리치료사·간호사(3명)·산업위생관리기사·인간공학기사·상담심리사 등 8명의 전문가들이 직업병과 직무스트레스에 대한 관리방법을 알려 준다. 근골격계질환과 뇌심혈관질환 예방·심리상담·식습관 개선 등 건강증진 프로그램도 제공한다.

책임주치의인 김인아(35) 센터 실장은 "치료보다는 예방을 목적으로 노동자 개인을 둘러싼 직업환경과 다양한 조건을 포괄해 지속적으로 돌보는 공공의료서비스"라고 말했다. 센터는 병원이 아니어서 질병에 대해 투약을 하거나 수술을 할 수는 없다. 전문치료가 필요할 경우에는 협력을 맺은 병원들과 진료를 연계한다. 운영시간은 평일 오전 9시부터 저녁 9시까지다.

근로자건강센터는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실험이다. 현재 전국적으로 인천과 경기·광주·대구·창원에 5개의 센터가 설립돼 있다.

   
▲ 연세의료원 예방의학교실 김대호 교수가 상담을 하고 있다. 작업 환경과 생활 습관 등을 꼼꼼히 묻고 적었다. 정기훈 기자

“정부, 센터 홍보 적극 나서야”

센터는 작업환경 개선을 고민하는 소규모 사업장 사업주에게 큰 도움이 된다. 한 제조업체 과장인 김정한(42·가명)씨는 '근골격계 질환 유해요인 조사'를 실시하는 방법을 상담하기 위해 센터를 찾았다. 센터 ‘근무환경 상담실’에서는 사업장의 작업환경과 보건관리에 대한 상담을 통해 개선안을 제시해 준다. 김씨는 작업과정을 산업위생기사에게 보여 주고, 유해요인에 관한 상담을 받았다. 기사는 반복업무·잘못된 자세·중량물 취급 등의 유해요인을 지적하고 개선책을 제시했다. 유해요인 기본조사표·작업환경 개선 계획 작성법도 상세히 알려 줬다.

김씨는 "그간 대행업체에 맡겨 유해요인 조사를 해 왔는데, 형식적으로 진행돼 돈만 날리고 사후 관리가 전혀 안 됐다"며 "보건관리 업무를 배워 노동자들의 몸 상태를 알고 그 과정을 통해 노사 간 갈등을 줄이고 생산직 전환배치시 유용한 자료로 쓰기 위해 상담을 신청했다"고 말했다. 그는 "센터는 노사 모두에게 사랑방 역할을 하며 영세사업장 노동자 건강을 돌보는 건강 만물상과 같은 곳"이라며 "영세 사업주들의 경우 안전에 투자하는 게 쉽지 않는데, 이들의 인식 전환을 위해 센터에 대한 정부의 홍보가 절실하다"고 당부했다.

센터도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원들이 홍보 팸플릿 등을 직접 제작해 식당·역사·시장 등을 돌며 홍보에 나서고 있다. 방문교육과 상담을 하고, 세미나실도 무료로 대여해 주고 있다. 영세사업장은 전 직원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을 갖고 있는 곳이 드물다.

이날 세미나실에서 열린 단체교육에 참여했다가 우연히 센터에 들른 건설노동자 김용진(31)씨는 "오랜 시간 기다리다 3분 얘기하고 나오는 병원이 주는 권위의식에 대한 거부감 없이 편안히 건강상담을 할 수 있어 좋았다"며 "한 번 다녀간 사람들이 계속 올 수 있도록 센터가 회원제를 통한 문자 알림서비스를 하는 등 찾아가는 세일즈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심리상담실 이은영 임상심리사가 기기를 이용해서 스트레스 검사를 하고 있다. 기본 검사에는 15분, 심층 상담에는 두 시간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정기훈 기자

일상생활·근무환경에 대해 주치의와 수다 떠는 쉼터

노동자들의 방문이 뜸한 시간을 이용해 기자도 사진기자와 함께 체험에 나섰다. 공통적으로 앓고 있는 근골격계질환에 대해 상담을 받았다. 기자는 척추측만증이 있는 데다 산재사고까지 당해 허리가 자주 아프다. 비가 오거나 생리를 할 때면 허리통증으로 하반신을 잘라 내고 싶은 충동에 시달린다. 정기훈 기자는 카메라를 메고 다니느라 만성적인 어깨통증을 달고 산다. 이날도 "왼쪽 어깨가 찌릿찌릿 아프다"며 파스를 붙이고 왔다.

정 기자가 침대에 누우니 교통사고를 당했던 오른쪽 팔이 들린다. 어깨도 과도한 긴장상태로 인해 땅에 닿지 않고 붕 떠있다. 등 근육 왼쪽이 유난히 단단하게 굳어 있다. 카메라를 오른쪽 어깨로만 메다 보니 생긴 결과다. 몸의 균형이 한쪽으로 치우지는 바람에 다리도 한쪽이 더 벌어졌다. 물리치료사 박동환(31)씨가 맞춤식 운동법과 자세 교정법을 상세히 알려 줬다.

정 기자는 "막연히 어딘가 불편하다는 느낌은 있었는데, 구체적으로 내 몸과 자세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를 정확히 알게 돼 좋았다"며 "센터가 서울을 비롯한 다른 지역에도 많이 생겨 병원에 가기 애매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소감을 전했다.

   
▲ 동작인식 게임기를 이용한 물리치료. 체험에 나선 기자는 내내 격렬한 '헤드뱅잉'을 선보였다. 50대 남성보다도 못한 점수를 기록했다. 정기훈 기자

기자도 누워 물리치료사가 시키는 대로 몸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다리 한쪽을 올렸을 뿐인데 근육이 찢어질 듯 아프다. 박씨가 아픈 부위를 손으로 짚어 줬는데, 거짓말처럼 통증이 사라졌다. 휘어진 척추로 인해 골반과 하반신도 함께 뒤틀린 상태였다. 박씨는 기자가 새벽마다 다리에 쥐가 나서 잠을 설치는 것과 팔자걸음을 걷는 습관까지 깨알같이 추적해 냈다. 박씨의 별명이 '신의 손'인 이유를 짐작할 만했다. 박씨는 "급성으로 약물을 투여하거나 응급치료가 필요한 환자들은 진단을 내려 바로 협력병원으로 보낸다"며 "평생 관리를 해야 하는 만성질환자자들이 센터를 주로 찾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근골격계질환자의 경우 조금 나아진다고 느낄 때 운동을 중단하지 않고 꾸준히 관리를 해야 개선할 수 있다"며 “센터는 강가에 데려가는 법을 알려 줄 뿐 강가에 가서 물을 먹느냐 마느냐는 결국 본인의 의지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단골고객이라는 윤아무개(47)씨는 "나이가 들면서 갑작스럽게 몸이 아파 안 가 본 병원이 없는데, 그중 의료장비·의료서비스·신뢰 등 모든 면에서 센터가 최고 수준이었다"며 "단순히 육체적 질환 한 부분만 치료하는 병원과 달리 일상생활과 근무환경 등에 대해서도 종합적으로 관리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편안한 쉼터 같은 곳"이라고 말했다.

   
▲ 취재기자가 체험에 나섰다. 센터 이용자에게 '신의 손'이라 불리는 박 주임이 몸의 균형과 근육의 상태를 꼼꼼히 살핀 뒤, 꼭 맞는 운동법을 안내했다. 곳곳이 틀어지고 뭉쳤다고 말했다. 정기훈 기자

"영세노동자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센터에서 자가용으로 10여분을 가면 인천시 송도국제업무단지가 나오는데 거기에 분소가 있다. 송도는 지식산업단지로 연구원·IT 업계 사람들이 주로 일한다. 센터는 인력과 운영비를 쪼개 분소를 운영한다. 장소는 송도국제업무단지에서 지원했다. 이곳 업무시간은 평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다. 평소에는 간호사가 상주하고, 매주 금요일마다 전문 상담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센터의 하루 방문인원은 평균 30여명이고, 송도 분소는 평균 20여명이다. 분소에는 스트레스에 따른 정신적 질환을 호소하는 노동자들이 주로 찾는다.

이정순(31) 간호사는 “분소에서는 건강에 대한 지식과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일하다 보니 센터를 통해 질환이 만성화하기 전에 조기 발견하는 경우가 많다”며 “대부분이 앉아서 일을 하기 때문에 운동 부족으로 겉으로는 말라도 체지방이 높은 사람들이 많다”고 귀띔했다. 센터는 공단 내 노동자들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여러 곳에 분소를 설립하는 것이 목표다.

책임주치의인 김인아 실장은 “나이가 들면서 각종 질환에 시달리게 되는데 이는 노동자 개인의 몸이 약해서가 아니라 젊은 시절 건강을 돌보지 못한 채 열심히 밥벌이를 한 결과”라며 “의료사각지대에 있는 영세사업장 노동자들이 건강증진으로 행복하게 일하며 삶의 질을 향상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센터의 궁극적인 목표”라고 말했다.

   
▲ 인천 송도의 테크노파크 빌딩 1층에 위치한 분소 모습. 규모는 작지만 접근성이 높다. 정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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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자기사] "실적 중심 평가, 공공서비스 질적 평가로 개선해야”

   
정기훈 기자
영세·소규모 사업장 노동자들은 대부분 불안정하고 위험한 업무에 장시간 종사하고 있다. 잠자는 시간을 빼고 대부분의 시간을 일터에서 보낸다. 건강에 대한 관심은 뒷전이다. 때문에 질환이 발견됐을 때는 이미 손쓸 수 없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개인은 물론 가정·기업·사회적 손실로 고스란히 이어진다.

시대 변화에 따라 노동자의 건강을 위협하는 새로운 유해인자가 생겨나면서 노동자의 건강 문제도 다양화되고 있다. 2010년 업무상질병자 현황을 보면 80%가 개인적·직업적 요인이 결합된 작업관련성 질환자였다. 업무상질병으로 인정받기 힘든 우울증 질환자도 꾸준히 늘고 있다. 작업관련성 질환을 예방하려면 개별 노동자의 작업조건과 작업방식, 생활습관을 종합적으로 함께 고려해 접근해야 한다.

이에 따라 질병상태로 발전하기 이전 단계에서 시점을 놓치지 않고 노동자들에게 적절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근로자건강센터가 만들어진 배경이다. 센터를 통해 소규모 사업장 노사가 자발적으로 작업환경을 개선하고, 건강관리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만들자는 것이다. 센터 행정을 총괄하는 황정호(41) 팀장은 “업무 효율성을 높여 기업 생산성과 국가 경쟁력 향상에도 크게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런데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실험이다 보니 보완할 점이 적지 않다. 센터 사람들은 가장 시급한 개선과제로 실적 중심의 기계적 사업평가를 꼽았다. 센터는 1년마다 상담실적과 투입된 비용에 대한 성과로 실적을 평가받는다.

예컨대 ‘병에 걸릴 사람을 얼마나 예방했는지’, ‘죽을 뻔했던 사람을 얼마나 살려냈는지’ 등을 수치로 환산하라는 얘기다. 그러나 서비스의 특성상 수치로 계량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정부 부처 일각에서는 이 사업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황정호 팀장은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그는 "숫자로 실적을 평가하는 정부의 방침이 센터가 제공하는 건강서비스의 본질과 충돌해 사업 추진방향 논의 과정에서 내부적으로 고민이 적지 않다”고 아쉬워했다. 황 팀장은 "투자비를 회수하려는 경제적 발상 대신 건강권에서 방치된 사회 취약 계층 노동자에 대한 경제·사회적 보조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며 “공공의료서비스에 대한 새로운 질적 평가기준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주문했다.

김은성  kes04@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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