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6·10 항쟁 25주년이었다. 87년 6월 민주항쟁을 기념했다.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이었으므로 그 뒤 이 나라에서 민주주의가 어떻게 실현되고 실현되지 못했는지를 평가하고 있다. 지겹도록 들었던 평가는 이렇다. “정치적 민주주의는 실현됐다. 그런데 경제적 민주주의는 실현되지 못했다. 그러니 이제는 경제적 민주주의를 외쳐야 한다.” 이 개념을 부정하는 극히 일부세력을 제외하고는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말해 대고 있다. 이 나라에서는 노동운동조차도 이제는 경제적 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바야흐로 정치적 민주주의에서 경제적 민주주의로 민주주의의 ‘트렌드’가 변했다. 그러니 지금 우리는 6·10의 날에 온통 6·10의 민주주의는 지나간 트렌드였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2. 도대체 어째서 민주주의는 정치적이었던 것이고 그래서 경제적이어야 한다고 하는 것일까. 정치적 민주주의는 정치에서 민주주의의 실현을 말하는 것이다. 민주주의 자체가 정치행위인데 정치적 민주주의라니. 이 정치적 민주주의라는 개념은 수상하다. 경제에는 관여하지 않는 정치행위로서의 민주주의로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면 설명할 수 없는 개념이다. 정경분리에 의한 자본의 자유를 정치권력이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아니고서는 이 개념, 정치적 민주주의는 설명되지 않는다. 오로지 국가의 일이 야경국가·자유방임국가로서의 일일 때, 경제는 자본의 자유로써 자본의 영토로 보장되는 경우에, 국가권력은 경제에 관여하지 않는 권력의 행동원리로서만 민주주의를 설명할 수 있었다. 국가의 일이 자본의 자유를 제한하고 자본의 영토는 어디까지나 국가가 보장하는 한도에서만 허용될 수 있는 것이라고 하는 순간 민주주의는 정치적인 것으로 제한될 수 없다. 국가권력에 대한 작동원리로서 민주주의는 당연히 경제적인 것일 수밖에 없게 된다. 보통선거로 인민의 1인 1표로 선출된 권력은 국가의 일인 경제에 개입하고 규제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 헌법과 법률로 사유재산권은 제한되고 일정한 의무가 부과되며, 자유권 외에 사회권이 기본권목록으로 추가되고, 각종 경제규제에 관한 조항을 규정하게 된다. 고용·사회보장·사회복지 등 국가의 일로서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고, 자본의 영토인 사업장에서 이익분배·기업의 의사결정 참여·노동3권 등을 국가의 법률로 노동자의 권리로서 보장한다. 바로 이것들을 경제적 민주주의라고 말한다. 그러니 뭔가. 민주주의로 국가권력이 작동되고 국가의 일이 경제부문에 관여하는 순간 민주주의는 필연적으로 경제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오히려 정치적 민주주의로만 민주주의가 존재했던 적은 없다. 오히려 정치적 민주주의의 시대라고 말해지는 18~19세기에 프랑스대혁명, 7월과 2월 혁명 등 시민혁명에서는 언제나 경제에 관한 국가권력의 개입은 전면적이고 근본적이었다. 오히려 민주주의가 부르조아 시민계급의 지배원리로 작동하면서, 소수의 지배도구로 추락하면서, 자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방패로 국가권력이 활용됐다. 그 시기에 민주주의는 급격히 약화됐다. 정치적 민주주의라서 경제부문에서 인민을 위한 국가의 일이 가능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었다. 정치적 민주주의가 약화되고 추락해서였다. 그래서 민주주의가 고작 자본의 방패로서 기능하는 국가권력의 작동원리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러니 문제는 인민의 의지가 관철되도록 민주주의에서 작동되지 못하고, 소수의 권력의 지배도구로서 작동했던 것에 있었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것이 문제였다. 민주주의의 방향이 정치적으로 향하고 있어서 문제였던 것이 아니었다. 민주주의가 말 그대로 인민의 자기 지배로 제대로 접근할수록, 민주주의는 인민이 세상의 주인이 되도록 한다. 정치적 민주주의가 경제적 민주주의와 분리되고 구별되는 것이 아니다. 정치적으로 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현될수록, 경제의 장에서 인민의 지배가 관철되도록 국가권력을 활용한다. 그러니 지금까지 정치적 민주주의와 구분해서 경제적 민주주의를 말하고 그것을 실현해야 한다고 외쳐온 자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의 장에서 인민의 의지를 관철할 만큼 우리는 아직 민주주의를 실현하지 못했다.” 그러니 지금 또 다시 경제적 민주주의를 외친다면 우리는 이 나라에서 민주주의의 좌절을 경제적이라는 수식으로 변명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3. 6·10을 말한다. 정치적 민주주의에서 경제적 민주주의로 나아가지 못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말한다. 6월 민주항쟁으로 민주주의는 실현되지 않았다. 도대체 어떤 정치적 민주주의가 실현됐다는 것인가. 대통령직선제. 그것을 빼놓고서 6·10을 말할 수 없다. 6·10의 거리에서 외쳤던 그것이 마침내 쟁취됐으니 정치적으로 민주주의는 실현됐다고 말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었다. 6월의 거리와 광장에서 외쳤던 민주주의가 대통령직선제로의 민주쟁취였다. 그랬으니 직선제 쟁취로 우리의 민주주의는 멈춰 버렸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대통령 선출을 위한 투표소로 달려갔다. 이것이 6월의 민주주의였던 것이다. 그것으로 우리는 광장에서 시민을 불러 모았다. 전경의 최루탄과 진압봉을 물리치고서 거리를 질주할 수 있었다. 부정선거로 분노하며 4월의 거리와 광장에서 외쳤던 4·19의 민주주의와 얼마나 다르겠는가. 당시는 공정선거해서 민주당정권을 수립하는 것으로 민주주의는 실현됐다고 말했었다. 이 나라에서 정치적 민주주의는 대통령을 직접 선출하고, 부정선거가 아닌 공정선거를 하는 것이었다. 국가권력자의 선출 문제가 정치적 민주주의의 내용인 것이었다. 국가권력의 작동원리로서 인민의 지배, 민주주의는 없었다. 그러니 민주주의는 피선거권자가 아닌 선거권자인 인민에게는 선거일이 되면 누구에게 투표해야 하나하고 귀찮게 투표소를 찾는 일이었다. 갈수록 민주주의는 인민에겐 먼 그들의 일이 돼 왔다. 그리고서 6·10 25주년이 왔다.

4. 경제적 민주주의로 말한다면 박정희의 유신독재와 노무현의 참여정부가 어떻게 다른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정치적 민주주의로 말한다면 대통령 직선제로 양자가 명백히 구별된다고 말할 것이다. 집회시위·언론출판 등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정도가 다르다고, 노무현 정권은 분명히 정치적 민주주의가 실현된 정부라고 말할 것이다. 그런데 당신이 말하는 경제적 민주주의로는 어떻게 구별될까. 박정희의 유신독재시기에 경제에 관한 국가의 각종 규제와 주요산업체에 관한 국공유제가, 그리고 복지국가에 대한 지향이 존재했다. 노무현의 참여정부는 경제에 관한 규제를 철폐하고 민영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했다. 그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수호하겠다는 대한민국헌법에 규정된 복지국가의 실현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지도 못했다. 현행 헌법에서 규정된 경제적 민주주의에 관한 규정들은 이미 박정희의 공화국헌법에서도 규정돼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니 독재자의 딸이라는 박근혜가 복지국가를 말한다고 해서 그것을 비난할 수가 없다. 이미 강력한 국가권력의 힘으로 재벌 등 경제에 관한 규제와 통제를 가했던 박정희시대의 기억은 이 나라 인민에게 그것의 실현가능성을 먼저 떠올리게 할지도 모른다. 지금 이 나라에서 자유주의와 반자유주의로 정치세력이 나뉘지 않는다. 새누리당은 자유주의세력이고 민주통합당은 반자유주의세력이 아니다. 국가의 힘을 믿고서 경제에 관한 규제를 해야 한다고 믿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로 정치세력이 나뉘고 있지도 않다. 기껏해야 과거 독재시대에 존재했던 집권당으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당과, 그에 맞섰던 이른바 민주정치세력이 이합집산해서 순수하게 민주정치세력으로 결집돼 있는 당과 그렇지 않은 당으로 나뉘어 오늘 대한민국의 권력을 두고서 다투고 있을 뿐이다. 그런 과정에서 그들은 올해 말 대선을 앞두고서 복지국가니 경제적 민주주의니 하고 있는 것이다. 자유주의라고 부르던, 신자유주의라고 부르든 뭐라 부르든 관계없이 그 자유라는 이름이 자본의 전횡 때문에 비정규직·정리해고 등 고용불안에 시달리면서 추락해 가는 노동자와 인민에게 자신에게 투표소에서 찍어달라고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경제적 민주주의가 어떻게 다르고 그것을 진정으로 실현할 것인지 지금으로서는 인민들은 알 수가 없다. 정치적 민주주의에서는 대통령 직선제로 선출하는 마당에 얼마나 크게 인민의 자유보장에서 차이가 있을지도 절박하게 실감하고 있지도 못하다. 그러니 얼마든지 어제는 민주당 후보에게 투표했어도 오늘은 새누리당 후보에게 투표하는 것이다.

5. 지금 이 나라 노동운동은 경제적 민주주의를 외치고 있다. 민주주의가 경제를 향해야 한다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이 나라에서 어떻게 인민의 지배로서 실현되고 있기에 그것을 됐으니 이제는 경제로 향해야 한다고 하는 것일까. 권력자를 직접·간접으로 인민이 선출한다는 것 말고 도대체 어떤 민주주의를 실현한 것일까. 노동운동이 꿈꾸는 민주주의가 그런 것이 아니라면 지금 정치적 민주주의가 실현됐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모든 민주주의는 인민의 일이라는 점에서 정치적이고, 인민에 관한 것이라는 점에서 경제적인 것이다. 정치적·경제적으로 민주주의를 분리할 수 없는 것이고 단지 그것을 분리해서 주장하는 자들이 있을 뿐이다. 그들은 그 민주주의의 말로 인민을 지배한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