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19대 국회가 개원하면서 각 정당이 비정규 노동자와 관련한 입법안을 경쟁적으로 내놓고 있다. 지난달 30일 새누리당은 사내하도급법안을 비롯한 비정규직 관련 법안을 1차 추진법안으로 발의했다. 같은날 민주통합당도 기간제 사용사유 제한을 비롯한 관련 법안을 발의했다. 여야 각 정당이 비정규직 문제를 총선 공약으로 비중 있게 내놓을 수밖에 없는 사정, 그리고 19대 국회에서 우선 다뤄야 할 법안으로 발의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 사회에서 비정규직 문제를 건드리지 않고서 일하는 사람들의 민생 문제를 다룰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야의 비정규직 관련 법안은 문제의 본질을 잘못 파악하고 있거나 그 실효성이 매우 의심되는 것들이다. 새누리당의 사내하도급법안은 불법파견에 면죄부를 주고 간접고용을 지금보다 한층 더 확산시키리라는 점에서 비정규직 양산법안이라 할 수 있다. 민주통합당은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 시절에 자신들이 한사코 반대했던 기간제 사용사유 제한을 포함한 기간제법 개정안을 내놓았지만, 기간제 고용보다 더 열악한 간접고용 및 특수고용이 확산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대책이 없다. 그리고 두 정당 모두 비정규직의 노동3권 보장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기업이 비정규직을 활용하는 이유는 일차적으로 저임금과 해고의 자유에 있다. 그런데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대해서는 항상 노동자들의 저항이 생겨나기 마련이고, 이러한 저항을 통해 일정한 제도적 보호장치를 획득한 것이 ‘정규직’이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전과 이후에 노동법이 크게 달라진 것은 없지만, 노동자들의 조직화와 투쟁으로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노동법이 실제 작동하도록 만들어 왔다. 이러한 노동자들의 조직화에 대항하는 전략으로서 자본이 활용한 것이 비정규직 고용형태다. 비정규직은 단결하고 저항하기 어렵기에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을 감수하게 되고, 현행 노동법은 비정규직의 이러한 무권리 상태를 묵인해 왔다.

파견·용역·사내하청 등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고용을 지키고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방법은 실제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실질 사용자(원청)에게 요구하는 길뿐이다. 그런데 실질 사용자는 이들의 고용주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노동법상 책임을 거의 완벽히 피해 갈 수 있다. 간접고용 노동자들이 노조를 포기하도록 갖은 탄압을 하고도 부당노동행위 책임을 면하고, 단체교섭 요구에도 ‘합법적으로’ 응하지 않을 수 있다. 이들이 단체행동을 하면 업무방해죄·손해배상 등으로 도리어 노동자에게 책임을 추궁할 수 있다. 그럼에도 노동자들이 계속 실질 사용자를 상대로 싸워 왔기에 노동조건을 개선하고 고용승계 내지 직접고용을 쟁취할 수 있었다. 올해만 따져도 인천공항 세관 노동자들이, 한일병원 식당노동자들이, 배스킨라빈스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그리고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원청과의 합의서를 통해 기본적 권리를 쟁취하고 있다.

노동법상 근로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특수고용 노동자 역시 마찬가지다. 노동법·사회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인 특수고용 노동자들이 병가라도 쓸 수 있었던 것은 학습지노조 재능지부의 단체협약이 있었기 때문이고, 하루 8시간 노동제를 쟁취하고 임금체불을 해결할 수 있었던 것은 건설노조로 단결했기 때문이고, 최저임금제에 해당하는 표준운임제를 시범실시할 수 있었던 것은 화물연대의 투쟁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야가 내놓은 비정규직 해법은 공통적으로 비정규직 활용은 허용하면서 차별을 줄이겠다는 접근법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비정규직이 단결할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 한 어떠한 차별해소책도 실효성이 없다. 남녀고용평등법은 이미 89년부터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규정하고 있지만 한국은 여전히 여성에 대한 임금차별이 최악인 사회다. 여성 노동자의 60%가 비정규직이고 7%만이 조직돼 있기 때문이다.

여야가 진정으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비정규직의 노동3권 행사에 제한을 가하는 노조법을 개정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하면 된다. 구체적으로 노조법 2조의 ‘근로자’와 ‘사용자’ 정의를 현실에 맞게 개정해야 한다.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3권을 보장하고 원청의 사용자책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를 빼놓고 내놓는 비정규직 대책은 소리만 요란한 빈 수레에 불과하다.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labory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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