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노무사
(노동법률원·법률사무소 새날)

산재 불승인처분이 났을 때 당사자들이 할 수 있는 조치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103조에 근거한 심사청구와 제106조에 근거한 재심사청구다. 두 번째는 행정소송이다. 그리고 많이 활용하지 않지만 감사원 제43조에 근거한 심사청구다. 감사원법에 근거한 심사청구는 판례법리에 위반되는 공단 위법·부당한 처분에 대한 불복방법으로 유용하다.

문제는 대부분 재해자나 당사자들이 결국 심사청구나 재심사청구 단계에서 포기하는 경우가 많지만 행정소송에서도 엄청난 현실의 벽에 부딪친다는 것이다. 산재소송을 다뤄 보면 통상 절차는 '소장제기-피고 공단의 답변서 제출-변론준비기일(쟁점정리 및 증거방법의 채택)-증거방법 제출-변론기일-선고기일' 등의 순서로 진행된다.

소송의 첫 번째 장벽은 '나 홀로 소송'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주장하는 자, 즉 원고인 노동자측에 입증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이 한계는 소송을 해 보지 않은 이들은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이로 인해 증거수집 및 방법(사실조회·문서송부·문서제출·감정촉탁·증인신문 등)의 작성 및 활용은 산재소송을 많이 다뤄 보지 않으면 변호사도 제대로 감당하기 어렵다.

두 번째 입증책임이 원고에게 있기 때문에 필수적으로 공단의 위법한 처분을 깨뜨리는 명확한 증거가 요구된다. 다시 말해 업무와 질병과의 상당인과관계라는 법리에 있어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가 필요하다. 결국 의학적 증거와 자료가 무엇인지의 문제로 귀결된다. 재판부도 심증만으로 원고의 손을 들어줄 수 없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입증책임을 부과하고 있다.

세 번째 결국 감정촉탁신청, 즉 의학적 판단에 대한 과도한 의존성의 문제다. 재판부에서도 원고의 주장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의학적 근거를 요구하고 이를 위해 거의 필요적으로 (필름 또는 진료기록) 감정촉탁신청을 하고, 병원의 감정촉탁회신을 근거로 판단하고 있다. 산재법상 상당인과관계의 법리판단이 ‘의학적 자료 문제’로 매몰되고 있는 셈이다.

네 번째 감정촉탁신청에 있어서도 재판부가 아직도 직업환경의학, 산업의학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업무와 질병과의 인과관계에 대한 판단은 직업환경의학에서 판단하고 감정해야 하는 분야다. 의학의 중요한 전문분야지만, 근골격계질환 사건에 있어 재판부는 정형외과 또는 신경외과를 고집하고 있다. 뇌심혈관계질환 사건에 있어서는 신경과나 신경외과에 감정촉탁을 하라고 지시하는 실정이다. 재판 중에 산업의학이 무엇인지 원고가 소명하는 자료를 제출하는 상황도 연출된다.

근골격계질환의 경우 대부분 MRI 등을 통해 상병이 무엇인지 판독이 된 상태이고, 그 질환의 업무기인성이 문제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업무자세·방법·도구·반복성·중량물 취급·업무시간 등의 요소로 인해 업무가 근골격계부담업무인지, 업무로 인해 통상적인 퇴행성 진행속도보다 악화될 수 있는지를 감정해야 한다. 이 내용은 정형외과나 신경외과에서 다루는 분야가 아니다. 뇌심혈관계질환도 마찬가지다. 과로나 스트레스가 신경생리학적으로 뇌심혈관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밝히는 것이 아니라 과로나 스트레스의 부담 여부만을 밝히면 되는 것이다.

그 밖에 소송을 진행하다 보면, 무분별한 피고 보조참가의 문제(즉 회사가 이해당사자로 소송에 참여하는 현실), 산재 승인에 대해 회사가 이를 취소해 달라고 제기하는 소송, 문서송부촉탁이나 사실조회 등 입증 과정에 있어 회사의 거부나 불성실한 협조, 공단의 무분별한 항소제기로 인한 쟁송의 장기화, 행정소송의 승패를 공단 소송수행자에 대한 인센티브 지급과 연계, 심사 및 재심사 과정이 오히려 소송제기의 장벽이 되는 현실 등 적지 않은 문제점들이 보인다.

산재소송의 대부분의 문제는 노동자의 입증책임으로부터 기인한다. 지난해 이미경 의원실에서 산재 입증책임 전환을 골자로 한 산재보험법 개정안이 제출됐을 때 그 어떤 노총이나 노조에서 지지성명 하나 내지 않았다. 최근 전국금속노조가 내놓은 올해 임단협 요구안에 ‘노동자 부담 산재 입증책임 근로복지공단 전환’이 담겨 있다. 시기는 늦었지만 반가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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