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은수미 민주통합당 국회의원 당선자(사진=정기훈 기자)

지난 2008년 말 이영희 당시 노동부장관은 난데없이 ‘비정규직 100만 해고대란설’을 주장했다. 2009년 7월1일부터 비정규직법이 전면 시행되면 기업들이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해고할 것이고, 그 수가 100만명에 달한다는 것이다.

논란은 상상 이상으로 컸다. 국회에서는 정부가 제출한 비정규직법 개정안을 놓고 여야가 부닥쳤고, 학계에서는 해고설의 실체를 놓고 설왕설래했다. 반년 가까운 논쟁 끝에 해고설은 허황된 논리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세간에는 두 명의 여성이 비정규직법 개정을 막았다는 얘기가 돌았다. 한 명은 개정안 상정을 막은 추미애 당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장, 또 다른 한 명은 은수미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이다. 논리적이면서 현장감 있는 논문저자로 정평이 나 있는 은 연구위원은 이후 정부와 대척점에 섰다. 언론 칼럼과 각종 토론회를 통해 논리 제공자 역할을 하는 바람에 “노동3권을 헌법에서 빼야 한다”는 궤변을 늘어놓았던 당시 노동연구원장으로부터 ‘대외활동 금지령’까지 받았다. 노동연구원 해고 1순위로 지목됐다는 얘기도 나왔다. 그래서일까, 노동연구원은 국책연구원 중 가장 많은 탄압을 받았다.

그랬던 그가 민주통합당 소속으로 19대 국회에 입성한다. 은수미(48·사진) 당선자는 민주통합당 비례후보 3번에 오르면서 이목을 집중시켰다. 정동영 의원이 그를 ‘19대 국회 최고 기대주’로 꼽은 이유를 입증이라도 하듯이 벌써부터 좋은일자리본부·쌍용자동차특위 등 당내 기구에 참여하며 보폭을 넓히고 있다.

상임위는 예상대로 환경노동위원회를 택했다. 노동정책 전문가인지라 그의 환노위행은 무게감이 사뭇 다르다. 은 당선자는 “고용노동부가 비정규직법 개정 논란 뒤에 조사를 시작한 ‘근로형태별 근로자패널조사’ 결과를 2년 동안 발표하지 않고 있다”며 “곧 발표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문제와 관련해 이보다 구체적인 경고를 찾기는 쉽지 않다.

<매일노동뉴스>가 최근 노동연구원에서 은 당선자를 만나 19대 국회 구상을 들었다. 그는 노동자, 특히 비정규 노동자들의 친구가 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그래서 목표를 ‘사회적 근로기준 1234 확립’으로 잡았다. 헌법 1조·32조·33조·34조를 딴 것이다. 은 당선자는 “헌법에 보장된 사회권·노동권을 국민에게 되돌려 드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노동연구원 사태는 현재진행형이다.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도 했을 법한데.

"노동전문가로 민주통합당 비례 3번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노동연구원 동료들 덕이다. 노동정책을 같이 만들고 어떻게든 실행하려고 협력해서 했던 것, 업계 전문가로 알려진 것이 힘이 됐다고 생각한다. 2008년 이후에 구체적으로, 심지어는 해고 1순위로 거론된 적도 있지만 일정하게 노동연구원 박사들이 방어를 해 줬다. 활동가 은수미가 아니라 연구자 은수미로 키워 준 50% 정도는 노동연구원 사람들이다. 비례대표 제안을 받았을 때 노동연구원 박사들과 의논했다. 노동연구원 같은 곳이 국가의 싱크탱크로 제대로 자리 잡고 확대돼야 하는데 인원이 반으로 줄었고, 예산도 엄청나게 줄어 계속 임금을 삭감하고 있는 상황이다. 연구원 박사 한 분은 급성간염으로 돌아가셨고, 또 다른 한 분은 갑상선 암으로 수술을 받으셨다. 지금도 힘든 과정을 겪고 있다. 국가적 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다. 이번 원장 공모가 실마리가 되기를 희망한다. 지켜보겠다."
 
- 비정규직법이 은 당선자를 힘든 상황으로 몰았을 것 같다.

"노동부가 서운하거나 섭섭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연구자는 국가적 차원에서 움직여야 한다. 국가와 사회가 중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하도록 만든다는 입장에서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시 사실조사를 해서 노동부에 보고를 했다. 그런데도 노동부는 특별한 이유 없이 사실과 다른 통계를 가지고 100만 해고대란설을 유포했다. 비정규직법은 처음부터 최소입법으로 부족함이 있었다. 보완할 수 있었는데 그 시기를 놓쳤다. 그런 부족한 입법을 2009년에 해고대란설로 완전히 무력화시켰다. 지금은 정규직 전환율이 굉장히 떨어졌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입법효과가 없어지면서 오히려 나쁜 효과를 만들어 냈다. 간접고용을 확산시킨 것 아닌지 심각한 우려를 가지고 있다. 통계로도 좀 더 규명해야 한다. 관련 통계를 노동부가 발표하리라고 믿는다. 노동부는 고용형태별 근로자 패널조사라는 것을 해 놓고도 아직 결과를 발표하지 않고 있다. 결과를 곧 발표할 것으로 알고 있고 발표할 것으로 믿는다."

“특수고용직 문제는 노조법·근기법 개정으로 풀어야”

- 노사관계 전문가인데 노사관계에서 어떤 부분에 관심을 가지고 있나.

"청년유니온이 최근 행정소송에서 이겨서 서울청년유니온만 간신히 합법화됐다. 법외노조라고들 하는데 나는 헌법상의 노조라고 부른다. 헌법상 노동3권이 확립돼 있는데 보장을 안 해 주기 때문이다. 실업자나 구직자도 노조를 만들고 가입할 수 있다는 판례가 이미 나와 있다. 법원의 결정을 노동부가 부정했다. 4번이나 반려했다. 그건 사실상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다. 바꿔야 한다. 법원의 판례를 어겨 가면서 노조의 설립신고를 반려할 수 있는 정도라면 그런 법조항은 없애야 한다. 나아가 요새 ‘애정남’이 유행인데, 노조 문제에 대해 애매한 것을 정하는 ‘애정녀’가 되겠다. 노동자인지 아닌지 모르겠는 사람이 굉장히 많다. 애매하면 노동자가 아니라는 게 지금까지의 기준이다. 그러면 안 된다. 애매하면 노동자로 봐야 한다. 그래야 헌법상 노동3권을 부여받을 수 있고, 정부 정책으로 이런 분들을 많이 지원할 수 있다. 애매한 사람들은 저임금 근로자인 경우가 굉장히 많다. 이 사람들이 노동자가 아니다 보니까 고용보험이라든지, 사회보장부터 시작해서 직업훈련이라든지 정부가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을 쓸 수가 없다. 그러면 청년·여성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제2조를 강하게 해석하거나 혹은 바꿔서 노동자의 범위를 넓게 만들어 놓아야 한다. 근로기준법에서도 애매한 사람을 노동자로 해야 공정한 질서가 마련된다."

- 재계가 반대할 게 뻔하다. 특수고용직 문제는 특별법 형태로 푸는 것도 실패했는데.

"시대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2004년이나 2005년이었으면 특별법에 찬성했을 것이다. 그때는 노사정이 합의를 하는 보기 좋은 모습이 필요했던 시기다. 하지만 그런 시기는 지났다. 그러기에는 너무 많은 고통이 발생했다. 문제가 심각해졌다. 이런 식의 고용이 산업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 고통 받는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그 방법(특별법)이 유효하지 않다. 특별법 만드는 것도 현실가능하지 않다. 노조법 고치는 것보다 쉬울 것 같지도 않다. 특별법으로 대응할 상황인지, 혹은 기본을 세워야 할 상황인지 이에 대한 판단이 필요하다. 만약 다들 문제 해결에 동의하는데 입법이 힘들어서 편법으로 특별법을 선택한다면 모를까, 기본은 노조법과 근기법을 개정하는 것이다."

- 사회적 수준이 달라졌다는 얘기인데 비정규직 사용사유도 그렇게 생각하나. 비정규직 입법과정에서는 반대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합의를 할 거면 빨리 하자는 것이었다. 비정규직 입법 가지고 6년을 끌었다. 입법논쟁을 하느라고 아무것도 못했다. 그 입법논쟁이 비정규 노동자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입법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빨리 하고, 정부가 정책적으로 보완할 수 있다. 입법은 피드백을 하고 사례분석을 해서 고치면 된다. 비정규직법이 2006년 11월30일에 통과됐는데 6개월이나 1년 앞당겨 통과시켰다면 상황이 달라졌을 것이다. 적어도 노무현 정부에서 평가하고 시행할 수 있는 시간을 1년만 더 가졌어도…. 그리고 정권이 바뀌었다. 정규직 전환지원금도 시행하지 못했다. 그렇게 시간을 놓쳤다. 국민들이나 비정규 노동자들 입장에서 너희들 뭐했느냐는 질문이 나온다. 정부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하지만 그와 관련해 노사 모두 책임을 피할 수 없다. 두 번 같은 실수를 하고 싶지 않다."

“사내하도급 가이드라인은 뒷북”

- 비정규직법을 바꾸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믿을 수 없었던 것 아닐까.

"주체인 노동계가 갑자기 외부자처럼 태도를 취하는 건 말이 안 된다. 노사정 합의를 믿게 하면 된다. 믿게 할 전략이 뭐냐, 전략이 없었던 거다. 그러니 외부에서 공격을 취하는 방식이 된다. 물론 노사정 합의에 민주노총이 없었다. 민주노총의 전략이 외부에서 탄탄하게 견제를 해 주던지, 아니면 내부에서 주체로 노사정 합의를 믿게 하던지 해야 하는데 둘 다 아무것도 안 했다. 비난하는 게 아니라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렇게 됐다는 말이다. 2007년 초 이상수 노동부장관 시절에 비정규직법 보완회의에 매번 참석했다. 사내하청 문제를 계속 거론했다. 기본적으로 지금 노동부가 얘기하는 가이드라인 정도를 해 달라고 요구했다. 관철을 못 시켰다. 지금도 아쉽다. 그 때 사내하도급 가이드라인이라도 관철시켜 노동부가 지속적으로 점검했다면 현장의 관행이 이렇게까지 심각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기반성을 한다. 지금 노동부가 낸 안이 그때 내용과 비슷하다. 그래서 사내하도급 가이드라인에 대해 너무 늦은, 시기에 적절치 않는 안이라고 지적하는 것이다. 근로기준법이나 파견법을 개정해서 적법과 불법의 기준을 만들어야 할 시기에, 그것도 2006년이나 2007년에 적절했을 안을 노동부가 가지고 나왔다. 법이든 정책이든 시기와 타이밍이 있다. 그때 할 것은 그때 해야 한다. 법이나 정책이 완벽하지 않더라도 틀을 바꾸는 의미가 있다. 물길을 여는 법이나 제도가 있고, 완벽하게 끝내 줘야 하는 법이나 제도가 있다. 사내하청 문제를 예로 들면, 지금은 구덩이를 덮어야 할 시기다. 생태하천으로 바꿔야 할 시기에 물길이나 트자는 얘기를 하면 안 된다."

- 교섭창구 단일화가 노조가 제 역할을 하는 데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나.

"창구단일화가 위헌이 아니라는 헌재의 결정이 있었지만 나는 사실 위헌이라고 본다. 창구단일화는 분명히 비정규직이나 간접고용 노동자에게 부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합헌 결정이 나왔지만 국회에서 입법개정을 하든, 정부정책으로 풀어야 한다. 사실 노동부가 태도를 분명히 정하고, 노동위원회를 통해 사례를 만들어 주면 된다. 교섭단위 분리를 쉽게 하는 것이다. 창구단일화 이후 도대체 노동3권이 얼마나 확장됐는지 조사해야 한다. 만약 교섭확장이 안 됐다면 창구단일화의 근본 취지를 훼손하는 것이다. 그에 대한 설득력 있는 입증이 필요하다."

“100인 미만 기업 근로시간단축 별도협약 있어야”

- 노동부가 실근로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정책방향을 정했다. 어떻게 보나.

"노동부가 실근로시간 단축을 핵심의제로 잡은 것은 무척 좋게 생각한다. 쭉 가시라. 다만 2가지는 넘고 가셨으면 좋겠다. 첫째, 대기업에 준법경영을 요구할 것이지 호소할 것이 아니다. 노동부가 행정해석을 잘못했다. 할 수 있는데 안 한 것이다. 솔직하게 반성해야 한다. 헌법과 노동법에 따라 준법경영을 요구하고 페널티와 인센티브를 주겠다, 노동부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한다는 것을 분명히 했으면 좋겠다. 둘째, 근로시간 단축에서 걸리는 문제가 저임금 문제다. 대기업의 고임금 장시간 노동은 준법경영을 하면 되지만, 중소·영세 사업장은 그렇지 않다. 100인 미만 기업의 근로시간 단축을 위한 별도 협약이 나와야 한다. 영세사업주 문제와 저임금근로자 대책이 들어가야 한다. 그러면 무조건 찬성이다. 노동부가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 근로시간단축 문제가 사회의제가 될 수 있다고 보나.

"그래야 된다고 생각한다. 실근로시간 단축은 한국의 노동패러다임을 바꾸는 문제하고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단순히 일자리 창출이 아니다. 법과 제도, 정책적 지원 모두를 가지고 집중해야 할 문제다. 청년고용 문제이기도 하고 여성문제이기도 하다. 실근로시간이 단축돼야 여성이 경력단절 없이 일한다. 사회적 의제가 되려면 양대 노총이 그걸 받아야 한다. 한국의 노동운동 역사를 근로시간과 관련해 설명하라고 하면 못한다. 이제 해야 한다. 양대 노총이 이를 받고 실제 프로그램을 진행해야 사회적 의제가 된다. 예를 들어 서울시에서 노동복지센터를 구당 하나씩 만들었는데, 그 핵심이 실근로시간 단축이다. 예산을 서울지역 근로자들의 장시간 노동 실태조사와 지원책 만드는 데 쓰겠다고 하는 게 노동계가 줄 수 있는 시그널이라고 생각한다."

- 1호 법안은 무엇으로 생각하고 있나.

"(비정규직) 사회보험료 지원처럼 아주 쉽게 할 수 있는 것인데 효과가 꽤 큰 것을 생각하고 있다. 근로행정을 강화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쉽지만 굉장히 혜택이 넓은 것이 있고, 중요하지만 어려운 법안이 있다. 두 가지를 섞어야 할 것 같다. 1호 법안이 중요한 게 아니라 4년 내내 끈질기게 해야 할 것이 뭔지가 고민이다. 삼성백혈병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끈질기게 붙어야 할 것 같다. 노동이 중시되는, 그걸 복지국가로 부르는 사회권 1234를 실현하고 노동권 1234를 확립하는 새로운 국가를 만들고 싶다. 4년간 아주 끈질기게 달라붙을 것이다. 국회의원은 입법기관이다. 사회적 근로기준을 확립하고 싶다. 사회권을 최대한 확대하고 싶다. 현재 노동3권 보장이 10%도 채 안 되는데, 20~30%까지 확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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