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통합진보당 유시민 공동대표가 최근 전국운영위원회에서 통합진보당도 공식행사에서 애국가를 부르고 국민의례를 해야 한다는 의미로 문제를 제기했다. 국민들과의 관계에서 벽을 쌓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 이유다. 왜 하필 부정선거 문제로 당이 시끄러운 때에 이 문제를 제기하느냐는 시큰둥한 반응이 대체적이었다. 지금은 분명 때가 아니다. 발등의 불부터 끄는 것이 상식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깊이 따져 볼 때 이 문제는 부정선거 시비와 맞물려 있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옛 국민참여당 계열이 이 기회를 통해 자신들은 부정선거 시비에 내몰린 옛 민노당 계열과 다르다는 것을 부각시키면서 노동자 민중의 이름이 아니라 국민의 이름으로 자신들을 드러내려는 것은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든다.

국민의례 문제를 제기하려면 창당 협상 때 제기했어야 한다. 미래 사회의 전망이 다른 정당들의 통합은 오랜 논쟁과 숙의를 거쳐 강령을 제정하고 조직과 이념을 합치해 나가는 것이 올바른 절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옛 민노당이 의회 정치세력화라는 목표를 지나치게 의식해 부실이든 부정이든 잘못된 선거 관행을 가벼이 본 것처럼, 옛 국참당도 당장의 선거 승리에 집착해 통합부터 하고 보자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국민의례 문제는 당의 기본 이념 및 시대관과 관련된 문제다. 무엇보다 ‘현재의 애국가 부르기’와 ‘현재의 국민의례’가 상징하는 잘못된 국가주의가 완전히 해소됐는가를 따져 봐야 한다. 독일과 같은 전범 국가뿐만 아니라 2차 대전의 피해국들도 국기게양대를 향해 행진하는 등의 행위들을 군국주의나 전체주의로 보아 더 이상 강제하지 않는다. 역설적으로 과거 동구 현실사회주의 국가들이나 북한 혹은 베트남 같은 전체주의 국가들에서 오히려 엄격한 국민의례를 강제한다.

물론 민주국가들의 경우도 국가기관에서는 국민의례를 의무적으로 행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학교나 교회, 사회단체 등 시민사회에 속하는 기관이나 단체들의 국민의례는 자율에 맡기는 것이 상례다. 정당도 권력 중심의 정치활동을 핵심으로 하지만 엄연히 국가기관은 아니며 시민사회에 속하는 단체다. 시민사회의 단체가 국민의례를 행하지 않는다고 그것이 국민과의 관계에서 벽을 쌓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것이 바로 여전히 고루한 보수 이데올로기에 얽매인 것이다.

현재와 같은 형식의 국민의례를 행해야 애국심을 갖는 것인가. 침략적 민족주의가 아닌 해방적 민족주의의 입장에서 보자면, 노동자와 민중이 주체가 되고 이들이 잘사는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 진정한 해방적 민족주의를 추구하는 애국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민중의례가 곧 국민의례가 되는 셈이다. 그럼에도 기존의 국민의례를 복구하자는 주장은 민중과 국민을 구분하고 민중보다 국민을 강조하는 모순을 초래한다. 그것도 스스로 서민이나 민중을 강조하고 진보를 자칭하는 정당이 말이다.

실제 ‘국기에 대한 맹세’조차 세계관과 국가관의 변화에 따라 변해 왔다.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의 통일과 번영을 위하여 정의와 진실로서 충성을 다할 것을 다짐합니다.”라는 초기 맹세문은 1972년에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로 바뀌었다. 또한 2007년에는 “나는 자랑스러운 태극기 앞에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로 다시 변경됐다.

시대관과 국가관의 바뀐 내용을 따지려는 것이 아니다. 국민의례도 시대에 따라 바뀐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하물며 시민사회에 속한 단체로서 자신의 이념을 표현하는 독자적 국민의례 혹은 당원의례를 행하는 것은 민주사회의 기본이다.

통합진보당의 진정한 진보세력은 부정선거 파동이라는 발등의 불을 끄되 통합 시점부터 안고 있는 불씨가 섶불로 타오를 때를 함께 대비해야 할 것이다. 국민의 이름을 빌려 민중 주체 진보와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희석시키려는 시도에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byungkee@y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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