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법률사무소 로정)

들어가는 말

이명박 정부가 코너에 몰려 있다. 집권 4년차에는 각종 비리가 터져 나와 정권이 위기에 처한다는 이른바 ‘집권 4년차 증후군’이 반복되고 있다. 그것도 어느 정권 못지않게 확실하게 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시퍼런 서슬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숨을 죽여야 했던 이명박 정부 위세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초기에 선진화라는 미명으로 각종 분야에서 개혁을 추진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개혁’은 어느 면에서는 ‘개악’인 경우가 적지 않았다. 특히 노사관계에서는 기존 노사관계를 불안정하게 하거나 일방적으로 사용자를 편들며 노동자를 탄압하는 사례가 왕왕 있었다.

최근 노조 와해를 획책하기 위해 조합원의 노조 탈퇴를 유도한 사용자의 불법행위에 대해 노조의 위자료청구권을 인정한 판결이 선고됐다.(고양지원 2012. 4. 6. 선고 2011가합2579 손해배상 판결)

여기서 사용자의 노조 탈퇴 유도행위에 대한 불법행위의 성립 여부와 노조의 위자료청구권의 법적 의미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본 사안의 개요

본 사안에서 문제가 된 사용자(이하 ‘이 사건 사용자’라 함)의 한 간부는 행정부서 선임급 이상 직원들을 모아 놓은 자리에서 ‘여기에 계신 분들은 다 사용자를 위해 일하는 자에 포함된다. 자신은 사용자를 위해 일하는 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면 그 자리, 그 직을 떠나야 한다.’는 취지로 말하면서 노조 탈퇴를 압박했다. 그 결과 몇 명의 조합원이 노조에서 탈퇴를 했다. 또한 이 사건 사용자는 기존의 승진인사에서 다수의 조합원이 승진인사에 포함되는 관례를 무시하고 승진 인사에서 조합원을 한 명도 포함하지 않았고, 그 과정에서 조합원이면 승진인사에서 탈락할 것이라는 소문이 직장에서 무성했다. 또한 일부 간부들은 부서원들에 대해 노골적으로 노조 탈퇴를 유도하거나 압박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노조 탈퇴 유도행위로 6개월의 단기간 내에 그 사업장 노동자의 노조 가입률이 80%대에서 27. 2%까지 급격하게 하락했다.

이에 그 사업장의 노동자들이 가입된 노동조합(이하 ‘원고 노조’라고 함)은 이 사건 사용자와 그 대표자를 피고로 해 불법행위에 의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그 손해의 내용으로는 이 사건 사용자의 노조 탈퇴 유도로 탈퇴한 조합원들이 원고 노조에 납부하는 조합비의 감소분을 적극적 손해로, 원고 노조가 자유로이 노조로서 활동할 자유 등 헌법상 단결권 등이 침해됐음을 이유로 한 위자료 청구를 했다.

사용자의 노조 탈퇴 유도행위, 민법상 불법행위인가

대법원은 󰡒사용자의 단체교섭 거부행위가 원인과 목적, 과정과 행위태양, 그로 인한 결과 등에 비추어 건전한 사회통념이나 사회상규상 용인될 수 없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부당노동행위로서 단체교섭권을 침해하는 위법한 행위로 평가되어 불법행위의 요건을 충족하는바, 사용자가 노동조합과의 단체교섭을 정당한 이유 없이 거부하다가 법원으로부터 노동조합과의 단체교섭을 거부하여서는 아니된다는 취지의 집행력 있는 판결이나 가처분결정을 받고도 이를 위반하여 노동조합과의 단체교섭을 거부하였다면, 그 단체교섭 거부행위는 건전한 사회통념이나 사회상규상 용인할 수 없는 행위로서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노동조합의 단체교섭권을 침해하는 위법한 행위이므로 노동조합에 대하여 불법행위가 된다”고 판시한 바가 있다.(대법원 2006. 10. 26. 선고 2004다11070 판결)

이러한 판례 취지에 따르면 이 사건 사용자의 노조 탈퇴 유도 행위는 노동조합의 단결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민법 제750조의 불법행위가 성립한다.

원고 노조가 청구한 손해의 내용

위와 같이 불법행위가 성립한다고 할 경우 원고 노조는 이 사건 사용자에게 어떤 손해배상을 청구할 것인가. 이 사건 사용자의 노조 탈퇴 행위로 인해 약 300여 명의 조합원이 노조에서 탈퇴했을 것은 고도의 개연성이 있지만, 그 조합원 한명 한명이 그에 대하여 증언을 하지 않은 이상 명백하게 입증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원고 노조는 앞서 본 바와 같이 사용자측이 직접적인 언사로 노조 탈퇴를 유도하거나, 탈퇴한 조합원들이 노조 탈퇴서에 그 탈퇴사유로 ‘신변불안’, ‘승진인사’ 등으로 기재한 사실에 주목했다. 이 사건 사용자의 압박에 의해 노조를 탈퇴한 것이 비교적 선명한 조합원을 추출해, 그 조합원이 원고 노조에 납부할 조합비가 그 탈퇴로 인해 상실됐으므로 그 감소분을 적극적 손해로 주장했다.

또한 원고 노조가 자유로이 노조로서 활동할 자유 등 헌법상 단결권 등이 침해됐음을 이유로 한 위자료 청구를 했다.

그런데 위자료라고 하면 정신적 고통에 대해 인정되는 것이 일반적으로 관념화돼 있고 실무에서도 그와 같이 운영되는 것이 보통인데, 원고 노조가 이 사건 사용자에게 위자료를 청구하는 것이 가능할까. 이에 대해 보다 자세하게 살펴보자.

노조의 위자료 청구가 가능한가

이와 관련해 “법인은 정신적 고통을 느낄 능력이 없으므로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는 청구할 수 없다”는 것이(서울고법 1984. 1. 20. 선고 82나1522 판결)이 실무의 입장이다. 다만 법인이나 비법인사단이 손해배상의 내용으로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는지에 관한 대법원 판례는 아직까지 확인되고 있지 않다.

그런데 이 문제와 관련해서 대법원은 󰡒원심은 이어서, 이 사건 광고들로 인해 원고의 인격과 명예·신용 등이 훼손됨으로써 분유제조업체인 원고의 사회적 평가가 낮아지고 그 사업수행에 커다란 악영향이 미쳤으리라는 점은 경험칙에 비추어 쉽게 인정할 수 있으므로, 피고는 위 사회적 평가의 침해에 따라 원고가 입은 무형의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한 적이 있다.(대법원 1996. 4. 12. 선고 93다40614,40621 판결)

또한 최근에는 󰡒원심은, 원고가 범죄경력이 있는 자를 후보자로 추천하여 정치적 이미지가 실추된 것이 아니라 소외 2가 하력, 경력 등을 위조하여 처벌을 받고 원고의 대표인 소외 3이 소외 2의 공천 대가로 재산상 이익을 제공하게 하는 등 불법행위를 하였기 때문이므로 피고 2의 과실과 원고의 손해 발생 사이에 인과관계가 없다는 피고들의 주장에 대하여, 그 판시와 같은 이유를 들어 이를 배척하고, 소외 2가 피고 2가 발급한 범죄경력조회 회보서가 잘못되었음을 알고도 이를 원고에게 제출하였다고 하더라도 그로 인하여 인과관계가 단절될 수 없다고 판단한 후, 소외 2에 대한 후보자 추천 과정, 경위, 사건의 경과, 원고 정당의 규모, 인지도, 활동범위, 득표율 등 변론에 나타난 여러 사정을 참작하여 원고의 무형적 손해에 대한 배상액을 1억원으로 정하였다. 원심판결 이유를 기록에 비추어 보면, 원심의 이러한 판단은 정당한 것으로 수긍할 수 있다󰡓라고 판시하기도 했다.(대법원 2011. 9. 8. 선고 2011다34521 판결)

이에 원고 노조는 자신이 노동조합으로서 존속․유지하거나 조합원의 가입 및 탈퇴를 자유로이 결정할 자유(自由) 또는 권리(權利)․법적(法的) 이익 등 무형적 이익의 침해를 주장했다. 또 그에 대한 손해배상액 또는 그 비재산적 손해에 대한 배상으로서 위자료를 청구했다.

이에 대해 본 사건을 담당한 고양지원 담당 재판부는 “원고는 피고들의 노동조합 탈퇴 강요·유도 행위에 따라 단체의 존속, 활동에 관한 권리를 침해당했으므로, 피고들은 원고가 이로 인해 입은 비재산적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원고의 피해 정도와 현재 상황(원고 지부에 소속된 조합원의 수는 2009년 10월경 402명에서 2010년 5월경 128명으로 감소했고 조합원 가입률도 약 84%에서 약 27.2%로 떨어졌다), 피고들의 노동조합 탈퇴 강요·유도 행위의 양상, 기타 이 사건 변론에 나타난 여러 사정을 참작하여 보면 그 액수는 1,000만 원으로 정함이 상당하다”라고 판시했다.

본 판결의 의미


본 판결은 사용자의 노조 탈퇴 유도 행위에 대해 불법행위가 성립함을 명확히 선언하면서, 그에 대한 사용자의 책임으로 노조에 대한 위자료청구권을 정면으로 인정한 거의 최초의 판결이라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이로써 사용자가 노조 와해 목적으로 조합원을 탈퇴시키는 행위를 하는 경우에 대해 노동조합은 그 사용자에 대하여 위자료 청구 등을 함으로써 그 탈퇴를 방지함과 아울러 사후적으로 그 피해에 대하여 금전으로나마 손해배상을 받을 길이 열렸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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