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강택 언론노조 위원장

"4·11 총선 직후 실망하는 분위기가 없지 않았습니다. 비유하자면 KTX 타고 가려고 했다가 놓쳐서 고속버스를 타야 하는 상황입니다. 시간이 더 걸리고 불편하겠지만 그렇다고 목적지로 가지 않는 것은 말이 안 되잖아요. 더 독하게 싸워야죠."

언론 5개사(MBC·KBS·YTN·연합뉴스·국민일보)의 동시파업이 장기화하고 있다. 언론노조(위원장 이강택) 집행부는 언론장악·민간사찰 국정조사를 촉구하며 지난 17일부터 서울 프레스센터 앞에서 농성에 들어갔다. 지난 20일 오후 농성장에서 <매일노동뉴스>와 만난 이강택(50·사진) 위원장은 "성과 없이 스스로 투쟁을 접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노조가 집회를 할 때면 어김없이 비가 내렸다. 사람들은 이 위원장에게 이름을 '이강우'로 바꾸라고 농담을 던졌다. 거리농성을 시작한 지 나흘째를 맞은 이날은 초여름 날씨처럼 햇빛이 강렬했다. 농성장 앞을 지나던 한 학생은 한 손을 치켜올리며 "언론노조 파이팅"을 외쳤다.

90년 KBS에 PD로 입사한 이 위원장은 2006년 한미FTA 반대운동의 '영상 교과서' 역할을 한 'FTA 12년, 멕시코의 명과 암'을 비롯해 '얼굴 없는 공포, 광우병', '신자유주의를 넘어서, 차베스의 도전', '위험한 연금술, 유전자조작식품'을 제작했다. 시사투나잇 책임 PD를 지냈고, 2008년 당시 이병순 사장이 부임하면서 연수원으로 발령나 제작일선에서 쫓겨났다.

"대반격의 시대 열렸다"

지난해 취임한 이 위원장은 선거에서 "대반격의 시대를 열겠다"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었다. 그는 "취임한 지 1년이 채 안 돼 대반격의 시대가 열렸다"며 "노조가 역량이 있어서, 대오각성해서가 아니라 언론장악 체제의 모순이 심각했기 때문에 강력한 저항이 터져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이명박 정권은 정보와 언론을 통제하며 국민을 기만했습니다. 언론장악과 민간인 불법사찰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합니다."

노조의 파업투쟁은 총선을 기점으로 '전반전'이 끝났다. 23일을 기준으로 각 본부·지부의 파업은 MBC 85일, KBS(2노조) 49일, 국민일보 123일, 연합뉴스 40일에 접어들었다. 투쟁규모나 지속기간에 있어 유례가 없는 일이다. 그는 "위에서 의식적으로 파업을 조직했다기보다는 자연스럽게 기류가 생겨났고, 그것이 수평적으로 확산된 것"이라며 "이전의 언론사 파업이 한 사업장 내에 국한된 노사 간 대치와 집회 위주였다면 이번 파업은 콘텐츠를 만들면서 진행됐다"고 말했다.

파업 기간 중 MBC본부는 '제대로 뉴스데스크', KBS본부는 'Reset KBS 뉴스9'을 제작해 인터넷으로 유통했다. 언론노동자들이 진짜 취재하고 싶은 아이템을 발굴했고, 민간인 불법사찰 같은 특종이 잇따랐다. 시민과 함께하는 콘서트는 이전의 파업현장에서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이 위원장은 "이번 파업은 내용과 양적 측면에서 새로운 역사를 썼다"며 "이런 형태의 싸움은 앞으로 언론사 투쟁을 하는 데 중요한 전형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언론노동자 스스로 많이 달라져"

이 위원장은 "아직까지 구조 자체를 바꿔 내지는 못했지만 언론노동자 스스로는 많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파업현장에 주류 언론에서 카메라 한 대가 와 있는 게 얼마나 힘이 되는지, 손배가압류가 어떻게 압박이 되는지 실감했다고 한다. 그는 "우리 스스로 다른 노동자들을 이해하게 됐고 지평도 넓어졌다"며 "이런 것을 체감한 사람들이 예전과 같이 행동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파업에서 승리하고 복귀할 때 시민과 노동자들이 언론인들에게 하고 싶었던 얘기를 하는 자리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그것을 마음에 새기고 공개적으로 약속을 한 뒤 복귀하겠다는 것이다. 이 위원장은 "전반부 투쟁은 대중의 자발성에 기초했다면 이제는 지도부의 헌신을 이용할 때"라며 "이번 싸움에서 승리하는 것은 국민의 명령이면서 동시에 우리의 역사적 책무"라고 강조했다.

"우리가 패배하면 노동계가 사활을 걸고 있는 노동법 개정이나 정리해고 투쟁, 비정규직 철폐와 같은 산적한 과제를 언론노동자들이 제대로 보도할 가능성이 없습니다. 우리가 패배한 상태에서 대선을 치르면 한국사회가 제대로 갈 리가 없습니다. 우리의 싸움은 전체 노동계, 나아가 한국 사회의 명운이 걸린 싸움입니다."

이 위원장은 "식민지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선배 투사들의 마음으로 다시 차근차근 준비해서 싸움에 승리할 것"이라며 "이제는 지켜보지만 말고 함께 어깨를 겯고 나가자"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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