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무송 서울지방고용노동청장이 16일 서울 숭인동의 한 봉제업체를 찾아 공장 관계자와 얘기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일자리의 질이 너무 좋지 않아요. 그러니 미스매칭이 생기죠. 젊은이들을 포함해 연간 280여명이 평생직업의 꿈을 안고 이곳에서 기술을 배웁니다. 그런데 막상 공장에 가면 일하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지는 거예요. 임금은 두 번째 문제로 치더라도 공장시설·작업환경이 그냥 보기에도 너무 열악하거든요. 반대로 공장주들은 인력이 없다고 난리고.”

전순옥 패션봉제아카데미 대표는 16일 오후 임무송 청장을 포함한 서울지방고용노동청 관계자들이 사무실에 들어서자 “서울 의류·봉제산업은 일자리 창출 여력이 큰 분야”라면서도 “상황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전순옥 대표는 19대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1번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서울노동청은 서울의류노조·동대문봉제협회 관계자와 함께 이날 오후 서울 종로구 창신동·숭인동과 중구 무학동·신당동 일대 의류·봉제업체를 찾았다. 이곳은 동대문과 중구 명동 패션타운의 의류생산 배후기지로 유명한 곳이다.

임무송 청장은 “동대문과 중구 명동을 중심으로 패션거리가 조성돼 있고, 창신동과 신당동에는 영세한 의류·봉제업체 1만여곳이 들어서 있다”며 “이른바 의류·봉제벨트라고 불리는 거리를 따라 현장의 의견을 듣고 애로점을 개선하기 위해 현장방문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서울 숭인동의 소규모 봉제공장 모습. 정기훈 기자

서울의 대표 제조업, 의류·봉제산업

서울은 사무·서비스업이 발달하면서 제조업은 대부분 쇠퇴했다. 그러나 동대문구와 중구 명동을 중심으로 화려한 패션거리가 펼쳐져 있다. 이 패션거리를 1만개가 넘는 영세규모의 의류·봉제업체들이 떠받치고 있다.

MK패션산업발전협회 등이 2008년과 2010년에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종로구·중구·성북구에 위치한 의류·봉제공장은 1만1천200개에 달하고 이곳에서 일하는 의류·봉제 기술인은 6만여명에 이른다.

또 중구 패션유통단지 내에는 약 3만개의 의류상점이 있다. 이곳에서도 6만명이 일한다. 의류제조와 유통·판매를 합치면 연간 일자리 창출 여력은 10만명이 넘는다. 서울을 대표하는 제조업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그러나 의류·봉제업의 노동조건과 작업환경이 열악하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전순옥 대표는 서울 종로구 패션봉제아카데미에서 3년 넘게 의류·봉제 기술인을 육성했다. “일종의 실험이죠. 숙련기술인을 육성하고 일자리 질만 조금 높이면 일자리 창출 여력이 매우 크거든요. 교육생 중 20~30대 젊은층이 35%나 됩니다. 의지와 기술이 있으니 환경만 조금 나아지면 무언가를 이룰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직은 어렵네요.”

“강북패션벨트 만들자, 3D 업종을 3L로”

전 대표는 민주통합당 비례대표 1번을 받자마자 ‘강북패션벨트’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의류·봉제산업의 제조·유통·판매 인프라가 집중된 종로구·중구·성북구를 묶어 패션벨트를 만들겠다는 복안이다.

그는 “3D를 3L로 바꾸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힘들고(Difficult), 더럽고(Dirty), 위험한(Dangerous) 의류·봉제산업을 숙련기술(배우고·Learning)을 통해 직업·생존에서 자유로워지고(Liberating), 이를 통해 삶의 질 변화(Life Changing)를 도모하겠다는 뜻이다.

전 대표는 한국제품 프리미엄 상가(Made in Korea Premium) 육성과 의류·봉제공장 리모델링 지원을 구체적인 방안으로 제시했다.

동대문과 명동은 한국을 방문한 외국 관광객이라면 반드시 들르는,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쇼핑지다. 하지만 중국과 동남아에서 수입되는 저가 상품도 넘쳐난다. 이곳에서 한국제품의 경쟁력을 높이고 더불어 일자리의 질 향상을 도모하겠다는 것이다.

전 대표는 “결국 일자리의 질을 높이는 게 핵심”이라며 “그것을 위해 다양한 방법을 고민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임 청장은 이에 대해 “충분한 인프라와 인력이 배출돼야 성과가 가시화되는데, 그렇다고 너무 성과에 급급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이어 “서울노동청이 지원하고 협조할 수 있는 방법을 다각도로 검토해 보겠다”고 말했다.

창신·숭인동, 골목마다 영세 의류·봉제업체 '빽빽'

종로 6가에 있는 패션봉제아카데미에서 5분여를 걸어 찻길을 건너면 창신동이 나온다. 이곳에는 동대문 의류·봉제업체를 대표하는 ‘동대문 의류봉제협회’가 있다. 다시 언덕을 넘고 15분을 걸어 찻길을 건너면 숭인동이다. 두 지역은 의류·봉제공장이 밀집한 곳이다.

거리를 걷다 보면 문을 활짝 열어 놓고 미싱(재봉틀)을 돌리는 노동자들을 쉽게 마주할 수 있다. 일감이 없는지 기계를 멈추고 옹기종기 모여 담배를 피우거나 수다를 떠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거리 곳곳에 ‘미싱사·시다(미싱보조)·객공 급구’라고 쓰인 벽보가 붙어 있었다.

객공은 개인 도급업자와 같은 고용형태를 말한다. 김정호 서울의류노조 위원장은 “일감이 일정치 않으니 업체들이 바쁠 때만 도급업자처럼 채용하는 이들을 객공이라고 부른다”며 “고용형태는 특수고용직이나 일하는 것은 일반 노동자와 다를 바 없다”고 설명했다.

종로구 숭인동에서 청바지를 만들고 있는 ㅁ사 사장인 윤아무개씨는 “1년에 6개월은 열심히 옷을 만들고, 나머지 6개월은 일감 구하기에 급급한 시기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변절기인 봄·가을은 의류 소비가 많아 덩달아 바쁘지만 여름·겨울은 일감이 많지 않기 때문이다. 윤씨는 “만드는 옷이나 업체마다 사정이 다르니 서로가 일감이 많을 때는 일을 넘기고, 없을 때는 넘겨받는 식으로 운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상부상조 혹은 품앗이랄까.

임무송 청장 “사회안전망 유인이 급선무”

윤씨의 공장에는 사장을 포함해 8명이 일하고 있다. 임 청장이 영세사업장 국민연금·고용보험료 지원제도를 설명하자 그는 “가입은 해야 하는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이어 “일하시는 분들의 임금이 많지 않고 다들 보험료를 부담스러워한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서울노동청 관계자들은 이날 오후 늦게까지 영세 의류·봉제공장 4곳을 포함해 7곳을 들러 의견을 들었다. 임 청장은 “사업자등록을 하는 것조차 정말 머나먼 이야기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사업규모가 영세해 경영이 어렵고 시설과 환경이 너무 좋지 않다는 것을 체감했다는 설명이다.

그는 “너무 안타깝고, 지원을 하고 싶지만 당장 무언가를 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며 “우선 영세사업장 사회보험료 지원제도를 최대한 활용해 의류·봉제 근로자와 자영업자를 사회안전망으로 끌어들이는 게 급선무”라고 말했다. 이어 “현장방문과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대책팀을 구성해 의류·봉제산업과 지역 특성에 맞는 지원책을 마련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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