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인 최병승 조합원의 대법원 판결 이후 자동차 공장이 요동치고 있다. 대법원은 현대차의 생산공정이 컨베이어벨트를 이용한 자동흐름방식으로 진행되고, 현대차의 시설과 부품을 사용하며, 현대차가 사내하청 노동자의 작업배치와 변경, 노동 및 휴게시간을 결정하기 때문에 최병승씨가 현대차로부터 직접 노무지휘를 받는 근로자파견 관계에 있다고 판결했다. 그런데 이 판결 이후 직접생산공정의 노동자들, 이미 불법파견 판정을 받은 노동자들은 기대치가 높아진 반면 기아자동차에서처럼 소수만이 불법파견 판정을 받은 곳에서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그리고 간접부서의 노동자들이나 2·3차 하청 노동자들, 2년이 되지 않은 노동자들은 침묵하고 있다. 이 판결의 결과가 자신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리라는 기대가 작은 것이다.

그런데 현대차 비정규직 3지회는 ‘불법파견 정규직화’가 아니라 ‘모든 사내하청의 정규직화’를 내걸고 있다. 제조업은 파견 금지업종이고 그 금지업종에서 불법적으로 파견을 한 것인데, 그 불법을 합법적인 파견법으로 규율한다는 것은 모순이다. 현대차의 불법행위로 인해 피해를 받은 것은 당연히 모든 사내하청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대법원에서 “2년 이상 불법파견으로 일했으므로 파견법에 의해 정규직으로 전환하라”고 한 것은 한계가 있는 판결이며, 그 한계를 뛰어넘어 현대차의 불법행위로 인해 피해를 받은 모든 사내하청을 정규직으로 인정하라고 요구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이 요구에는 중요한 함의가 있다. ‘모든 사내하청을 정규직으로!’라는 요구는 가장 조건이 좋고 법적으로 정규직화의 가능성이 높은 1차 하청을 넘어 2차와 3차 하청, 그리고 한시하청에 대해 사내하청지회가 책임을 지고 함께 투쟁하겠다는 선언이기 때문이다. 이 선언이 현실화될지 결과적으로 1차 하청 중심의, 직접생산공정 중심의 정규직화로 귀결돼 버릴지는 알 수 없으나 비정규직 내부의 차별을 스스로 용인하지 않고, 뛰어넘겠다는 의지는 매우 소중한 것이다.

자동차공장은 복잡한 하청구조를 갖고 있다. 1차 하청 아래에 2차, 3차 하청이 있다. 게다가 한시하청이라는 이름으로 3개월, 6개월짜리 노동자들도 일하고 있다. 기업은 더 이상 정규직 채용을 하지 않는 대신 1차 하청 노동자들의 고용안정과 임금수준을 보장해 준다. 그리고 더 낮은 임금과 노동조건으로 2차나 3차, 혹은 한시하청을 두고 자유롭게 인원조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기업이 필요에 따라 각 하청 사이에도 차별이 심해지기도 하고 더 세분화되기도 한다. 현대차 1차 하청과 2·3차, 한시하청 노동자들 사이에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처럼 높은 위계의 담벼락이 있다.

현대차만이 아니다. 기아차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한 노조로 단결하고 있다고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기아차지부에는 1차 사내하청만 가입할 수 있다. 기아차에서 일하지만 2차나 3차 하청 노동자들은 여전히 노동조합의 울타리 바깥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래서 기아차 사내하청 노조를 만들 때 노동조합 간부로서 책임 있게 투쟁했고 노동조합을 지켜왔던 2차 사내하청 노동자 한 명은 아직도 조합원 자격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지금까지 사내하청 노동조합들은 내부의 위계를 극복하지 못했다. 정규직과의 차별과 위계에만 주목하다 보니 내부의 차별과 위계를 넘어서지 못했다.

현대차 비정규직 3지회는 ‘불법파견 정규직화 투쟁’ 과정에서 이것을 넘어 보겠다고 한다. 물론 비정규직 3지회가 맞서 싸우기에 현대차는 너무나 큰 벽이다. ‘모든 사내하청의 정규직화’라는 요구를 쟁취할 만큼의 힘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이 요구가 허황된 것은 결코 아니다. 이 선언은 일종의 기준이다. 최선을 다해 싸우되, 마지막에 힘이 부족해서 무언가를 포기해야 한다면 무엇을 포기할지를 보여 주는 선언이기 때문이다. 당장 정규직화의 가능성이 높은 노동자들의 요구 일부를 포기하더라도 2차, 3차 하청과 함께 가겠다는 의지를 놓치지 않는 것이 ‘모든 사내하청의 정규직화’라는 요구에 담긴 정신과 의지임을 보여 주는 것이다.

지금까지 정규직과의 관계에만 주목해 1차 하청 중심으로 이뤄져 왔던 지금까지의 사내하청운동을 극복하고 사내하청의 위계를 뛰어넘기 위한 새로운 운동이 그 정신을 실현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기를 바란다. 더불어 1사 1조직으로 노동자 단결의 정신을 실현하겠다고 했던 기아차지부에서도 2차 하청이라는 이유로 조합원 자격에서 배제된 그 노동자를 하루빨리 조합원으로 받아들이기를 바란다. 단지 그 한 명이 아니라 지금도 기아차에서 일하는 2차와 3차, 그리고 한시하청 노동자들 모두가 조합원 자격을 갖게 되기를 바란다. ‘단결과 연대’라는 노조운동의 힘은 그런 어려운 과정을 거쳐서 확대되는 법이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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