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기아자동차 소하리공장에서 프라이드를 만드는 나구환(48)씨는 이달 2일부터 동이 트기 전 5시50분쯤 일어나 6시10분이면 출근길에 나선다. 경기도 안양의 집에서 공장까지 20분 정도 걸린다.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식당에서 아침끼니를 해결하고 7시20분부터 오후 4시까지 근무한다. 퇴근 후 그는 가족들과 주로 시간을 보내며 은퇴 후에도 할 수 있는 사회봉사 활동을 고민하고 있다.

#2.소하리 2공장 의장라인에서 일하는 유진종(39)씨는 지난달 26일부터 1주일간 하루 9시간 근무했다. 일을 마치고 새벽 1시30분에 집으로 돌아가면서 발걸음이 나는 듯 가벼워진 것을 실감했다. 근무시간은 평상시보다 1시간 정도 줄었지만 철야근무를 하지 않아 몸이 가뿐해진 것이다. 유씨는 “무엇보다 집에 가서 짜증내는 것이 눈에 띄게 줄었다”며 “컨디션이 좋아지고 여유가 생기니까 집사람에게 절로 잘해 주게 된다”고 귀띔했다. 그는 “일하면서 실수도 크게 줄었다”며 “회사 전체의 생산성이 향상됐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기아차가 지난달 26일부터 이달 6일까지 2주일간 실시한 주간연속 2교대 시범운영을 마무리했다. 기존 주야 맞교대는 주간조가 아침 8시30분부터 일을 시작해 오후 7시30분까지 10시간 일하고, 야간조가 오후 8시30분부터 다음날 7시30분까지 10시간을 일하는 '10시간+10시간' 근무형태였다.

기아차 노사는 주간연속 2교대를 시범운영하면서 오전조의 출근시간을 오전7시20분으로 1시간여 앞당겼다. 대신에 8시간 근무 후 오후 4시에 퇴근하도록 했다. 이어 오후조가 4시부터 다음날 새벽 1시30분까지 9시간(잔업 1시간 포함) 일하도록 했다. 시범운영 기간 노동시간은 평상시보다 3시간 단축된 '8시간+9시간' 근무형태로 운영됐다. 퇴근시간을 당기기 위해 식사시간은 기존 1시간에서 40분으로 20분 줄였다.

가장 큰 변화는 새벽 1시30분부터 오전 7시20분까지 공장의 불이 꺼진다는 점이다. 73년 회사 설립 이후 40여간 이어져 온 밤샘노동이 대부분 사라진 공장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6일 기아차 소하리공장을 찾았다.

새로운 인생설계 시작하는 노동자들

기아차 소하리공장 정문에서 바로 보이는 곳에 위치한 대식당은 2층짜리로 수백 명이 너끈히 들어갈 만하다. 오전 11시20분 점심시간이 시작되면서 줄이 길게 늘어섰지만 이내 짧아졌다. 평상시에는 노동자 스스로 반찬을 먹을 만큼 식판에 덜어 가는 자율배식 시스템이었는데, 시범운영 기간에는 식당 조리원들이 직접 배식을 했다. 황석 금속노조 기아차지부 소하지회 문화체육부장은 “평소보다 짧아진 식사시간에 조합원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여러모로 신경을 썼다”고 말했다. 이른 출근시간에 맞춰 대식당뿐만 아니라 2공장 식당에서도 아침식사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식사시간이 끝나고 찾은 엔진공장. 막 조립이 끝난 자동차의 엔진이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한 줄로 나란히 행진하는 가운데 회색 작업복을 입은 노동자들의 손길이 바쁘게 움직였다. 엔진출하 업무를 맡고 있는 이아무개(49)씨는 "시범실시가 이대로 끝나는 게 아쉽다"며 "계속 주간연속 2교대로 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동안 생각만 했었던 취미활동도 계획하고 있다. 그는 "퇴근 후 집에서 읽을 책 목록까지 뽑아놓았다"고 웃었다.

이씨는 시범운영 기간 동안 첫째 주는 오후조로, 둘째 주는 오전조로 일했다. 실제 경험해 보니 '8시간+9시간' 근무도 길게 느껴졌다고 했다. 23년째 근속하면서 하루 10시간씩 주야 맞교대로 일하고 한 달 3번 가량 주말특근을 해서 350만원을 받는다는 그는 “노동시간이 줄어든 만큼 임금이 줄어드는 것은 어느 정도 감수할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오후조 9시간도 너무 길어요. 딱 8시간만 일하고 12시30분에 퇴근해서 대중교통을 타고 갔으면 좋겠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임금문제가 빨리 해결돼야 되는데…. 개인적으로 주간연속 2교대 시행으로 임금이 줄어드는 것은 어느 정도 감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심야수당이 감소하니까 회사도 일정 정도 부담을 해야죠. 어쨌거나 월급을 100% 다 받지 못해도 주간연속 2교대가 바로 시행됐으면 좋겠습니다."

얼마 전 아내가 출산해 5개월 된 첫째 아이를 두고 있다는 2공장 배인수(41)씨는 오후근무를 마치고 새벽 1시30분에 퇴근하면 그날 오전 11시쯤 일어나 오후 4시에 출근하기 전까지 아이와 시간을 보냈다. 주간연속 2교대 시범실시로 아이와 놀아줄 시간이 많아져 행복하다는 배씨는 “돈이 중요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고 말했다.

올해 13년차인 유진종씨는 수영강습을 등록했다. 8시간 일하고 2시간 잔업을 하면 몸이 녹초가 돼 운동은 꿈도 못 꿨던 일이다.

“얼마 전 우리 반에서 한 동료가 집에서 샤워를 하다가 쓰러졌어요. 나와 비슷한 40대 중반인데 뇌출혈이 온 거죠. 수술은 했지만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몸이 나빠져 출근을 못하고 있습니다. 의장 1반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죠. 옆에 동료가 쓰러지는 모습을 보면 덜컥 겁이 납니다.”

그래서 이씨는 "주간연속 2교대를 시행하려면 시간당 생산대수(UPH)를 높여 생산물량을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는 회사의 주장에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1공장 도어조립 라인에서 23년째 근무하는 장상일(47)씨는 “현재 급여와 노동강도로 8시간 근무하는 게 가장 좋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주간연속 2교대로 두통이 사라졌다고 했다. 장씨는 “도어조립 업무는 정밀한 작업이어서 자동화가 쉽지 않은데 지금보다 생산대수를 높이면 견디기 힘들다”고 우려했다.

사실 그가 생각하는 자동차 조립업무는 육체노동보다 감정노동에 가깝다. 반복되는 노동이 노동자의 팔·다리를 파괴하는 게 아니라 마음을 파괴한다는 것이다. 장씨는 "옆 동료와 손발이 맞지 않으면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끊임없이 밀려들어오는 자동차 차체 조립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주간연속 2교대로 가장 달라진 부분으로 "동료들의 표정이 밝아졌다"고 밝힌 이유다.

옆에 있던 금속노조 기아차지부 간부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평상시 야간근무를 할 때 현장을 돌면 조합원들이 귀찮아하는데, 주간연속 2교대 시범운영 기간에는 전혀 다른 분위기여서 놀랐다”고 전했다.

주간연속 2교대 논의, 가속도 붙을까

주간연속 2교대 시범실시에 대한 노동자들의 뜨거운 호응에 비해 회사는 시큰둥한 반응이다. 박병훈 현대차그룹 주간연속 2교대팀 부장은 “매일 10시간씩 일하다 8~9시간으로 근무시간이 줄었으니 직원들 반응이 좋은 것은 당연한 일 아니겠냐”며 “이번 시범실시는 임금과 생산물량은 손대지 않고 근무시간만 단축한 일종의 예비군훈련”이라고 말했다. 임금과 생산량 교환합의가 핵심인데, 이를 빼고 출퇴근 같은 기술적인 문제만 테스트한 것에 불과하다는 설명이다.

주간연속 2교대 시범실시로 근무시간이 3시간 단축되면서 생산량은 하루 800여대가 줄었다. 2주의 시범운영 기간 동안 7천여대가 감소했다. 회사는 줄어든 근무시간만큼 시간당 생산대수를 높이고 작업 가능시간을 최대한 늘려 생산물량을 보전해야 주간연속 2교대 시행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회사의 ‘생산물량 유지’ 주장은 금속노조가 교대제 개편의 조건을 내세우고 있는 ‘3무(無) 원칙’과 충돌한다. 노조는 노동강도 강화 없이, 생활임금의 저하 없이, 고용불안 없이 주간연속 2교대가 시행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생산량과 임금보전 논리의 쳇바퀴는 주간연속 2교대 논의가 지지부진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기도 하다. 기아차의 주간연속 2교대제 실험결과에 노사정의 눈과 귀가 쏠려 있다. 윤홍만 소하지회 사무장은 “지금은 조합원들의 반응이 폭발적이지만 다음달 급여를 받아 보면 또 달라질 수 있다”며 “시범실시에 대한 조합원 여론조사를 실시하고 올해 임금·단체협상을 하면서 생산성과 임금 문제를 풀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심야노동 철폐의 가능성을 확인한 기아차의 시범실시가 '물량-임금'의 복잡한 함수관계를 푸는 열쇠가 될지 관심이 모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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