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훈
도서출판 후마니타스 대표

미국 정치학자 필립 슈미터라고 있다. 학생 시절 그는 이탈리아에 여행을 갔다가 우연히 브라질 축제를 보고 반했고, 결국 브라질 노동문제로 박사논문을 쓰면서 학자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당신에게도 누군가가 브라질에 반할 만큼 좋은 점 하나를 들라면 어떻게 답하겠는가. 나라면 주저 없이 룰라라는 가난한 노동자도 정당을 만들고 대통령이 된 사실을 말하겠다.

비정규직을 포함해 노동문제가 심각하다고들 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부당한 현실을 개선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여러 노력이 모두 소중하겠지만, 노동운동에 기반을 둔 정당과 후보가 당선되고 대통령이 되는 것만큼 사태 개선에 더 좋은 효과를 갖는 것은 없다고 본다. 물론 그런 정당이나 대통령이 등장한다고 해서 노동문제가 금방 좋아질 것이라고 말할 만큼 필자가 순진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노동운동에 기반을 둔 힘센 정당이 있는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그런 정당이 없다면 절규에 가까운 항의는 끊이지 않지만 그 해결은 늘 지배적 위치에 있는 세력들의 각성과 온정주의에서 구하게 되는 종속적 심리가 계속해서 만들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민주화는 두 단계로 이뤄진다. 첫 번째 단계는 군부가 쿠데타를 포기하고 저항세력이 혁명을 포기하는 것, 그래서 선거 경쟁을 통해 국가권력의 향방이 결정되는 체제에 모두가 순응하는 것이다. 우리의 경우 87년 직선제 개헌이 그 전환점이었고 97년 야당도 집권할 수 있게 됨으로써 그 단계를 지나게 됐다. 두 번째 단계는 ‘어떤 민주주의’를 갖게 될 것인가의 문제다. 민주주의라고 해서 다 같은 것이 아니다. 미국의 민주주의가 다르고, 일본이나 이탈리아의 민주주의가 다르며, 독일과 북유럽의 민주주의가 모두 다르다. 우리는 어떤 민주주의를 갖게 될 것인가.

자본주의 경제체제라는 현실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는 ‘노동 있는 민주주의’ 혹은 ‘진보정당 있는 민주주의’의 길이 있느냐 없느냐에 있다. 민주주의의 질은 정당들의 배열구조가 사회의 갈등 구조를 얼마나 비례적으로 대표하는가에 달려 있다. 그때의 핵심은 노동의 열정이 정당이 되는 계층적 기반의 문제와 진보의 열정이 정당이 되는 이념적 기반의 문제가 좋아지는 데 있다. 과거에는 이를 “노동의 정치세력화”라고 표현했다. 필자는 그 표현이 정확하고 좋은 표현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점점 그 가치가 평가절하되고 있는 느낌이다. 노동문제가 많이 개선돼서 그럴까. 진보정당이 필요 없을 만큼 사회가 좋아져서 그럴까. 오히려 그 반대다. 그런데도 노동의 정치세력화 혹은 진보정당 있는 민주주의의 길은 여전히 어둡다.

많은 사람들이 ‘반MB 야권연대’라는 이름의 ‘민주대연합론’을 말한다. 분명 그것은 현 정부의 악정에 대한 반대와 항의를 말하고 있지만, 그 가치에만 너무 맹목적이지 않았으면 한다. 냉정하게 말해 그 길은 민주당이 중심이 되는 것이자, 기존 정당체제 안에서의 변화를 말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면 '진보정당 있는 민주주의'의 미래는 사라질 수 있다. 말 많고 탈 많은 진보정당 안에서 씨름하기보다는 반한나라당 투표를 극대화하고 민주당을 진보적으로 만드는 것이 합리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국 정치가 민주주의의 가치에 맞게 발전하길 바란다면 이념적·계층적 기반에 있어서 ‘종류가 다른 정당’의 역할이 있는 게 좋다.

새로운 제3 정당의 시도는 늘 어렵다. 그런데 한번 실패하고 다시 시도하는 것은 훨씬 더 어렵다. 더군다나 선거를 앞두고 급조 내지 따로 따로 쪼개져 시도하는 것은 그야말로 무진장 더 어렵다. 이런 점을 생각한다면, 오늘의 진보정당들이 보여 주는 잘못이나 미숙함을 손쉽게 비난하는 대신 좀 더 인내를 갖고 지켜보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새누리당과 민주당만의 양당체제로 고착되는 민주주의라면, 정말 기운 빠지는 미래 아닐까.

도서출판 후마니타스 대표 (parsh0305@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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