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장으로 출발하기 전에 물청소를 하고 있다. 굳어버리면 골치아프다. 돈도 든다. [정기훈 기자]
아침 7시에 공장으로 출근한 노동자들은 점심 나절이 되도록 휴게실 주위를 서성거렸다. 여태 하루 작업량의 5분의 1밖에 일을 하지 못했다. 오늘도 영락없이 야간까지 작업이 이어질 모양이다. 새벽잠 설치고 출근한 노동자들은 하나 둘 딱딱한 휴게실 바닥에 등을 붙이기 시작했다. 이따금 공장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다음 차 준비하세요"란 냉랭한 음성을 놓치지 않기 위해 귀는 쫑긋 세운 채다.

전날인 지난 5일 오후 6시께. "내일 물량. 1000루베 아침 7시 출차" 레미콘 노동자인 이동복(58)씨의 휴대전화로 문자가 수신됐다. 회사가 다음날 작업량을 통보한 것이다. '루베'는 건설현장에서 사용하는 일본식 용어다. 부피의 단위인 세제곱미터(㎥)를 말한다. 레미콘 차량 1대는 6㎥를 실을 수 있다.

일당을 계산하기 위해 이씨는 머릿속으로 간단한 곱셈과 나눗셈을 하기 시작했다. 다섯 탕을 뛸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최근 들어 최고로 많은 일거리다. 이씨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 기다림이 길다. 일감이 많지 않다. 파주 쪽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라고 했다.

일당 모아 월급 받는 사장?

건설현장에 레미콘을 실어 나르는 레미콘노동자는 사장님이다. 딱 보기에도 비싸 보이는 레미콘 차량을 직접 소유하고 있다. 개인사업자 등록증도 가지고 있다. 회사에서는 그들을 "사장님" 혹은 "기사님"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상하다. 사장님이 자신의 일당을 계산하고 있다니…. 게다가 매달 월급을 받고 있다. 일당을 모아 월급으로 받아 가는 이상한 사장이다. 지난 6일 <매일노동뉴스>가 '이상한 사장'의 레미콘차량에 동석했다.

레미콘노동자는 일명 '탕뛰기'를 통해 운반비를 받는다. 노동시간당 임금을 받는 것이 아니라 차량 1대가 레미콘을 싣고 공사현장에 한 번 왕복할 경우 정해진 운반단가를 받는 방식이다.

이씨는 한탕을 뛸 때 3만4천원을 받는다. 다섯 탕을 뛰면 17만원이다. 적지 않은 금액이라고? 그렇지 않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이씨는 지난달 100탕 정도를 뛰었다. 하지만 이 작업량을 연간으로 계산하면 월 평균 액수는 한참 떨어진다. 장마 시기와 한겨울에는 공사현장이 없어 차량을 놀린다. 실제 지난해 이씨는 한 달 평균 82회의 탕뛰기를 했다. 연봉으로 3천340여만원이다.

그러나 이씨는 사장님이다. 부가 지출이 많다. 레미콘자동차 보험료 연간 200여만원, 타이어 교체 및 차량 수리비 600여만원, 정기 엔진수리비 100만원…. 비용을 제외하고 계산했더니 월 평균 150만원이 손에 떨어진다. 여기에 국민연금·건강보험 보험료를 부담해야 하니 실수익은 더 떨어진다. 중고 레미콘차량 할부금 납부가 끝나면 그나마 다행이다.

"보통 레미콘 신차는 1억원 가까이 합니다. 5년 할부로 구입하면 한 달에 140만원은 내야 합니다. 그래서 대부분 레미콘노동자들은 중고차를 할부로 구입합니다. 저도 90년식 차량을 몰다가 최근 97년식 중고로 바꿨는데요. 완전히 벤츠를 타는 기분입니다(웃음)."


▲ 중고로 구입한 97년식 차량. 전에 비하면 벤츠를 타는 기분이라고 했다.

"2만여대 중 1만대는 놀아…가동률 50% 미만"

이씨가 있는 경기도 파주지역은 최근 건설현장이 많아졌다. 사정이 다른 지역보다 좋아서 그 정도라도 번다. 한탕 운반비가 3만1천원인 회사도 있는데, 이씨의 회사는 노조가 있어 일당이 많은 편이다.

그런데 운반비는 5년째 그대로다. 건설노조에 따르면 전국에 2만여대의 레미콘 차량이 있다. 하지만 가동률은 50%에 미치지 못한다. 하루에 1만대가 넘는 차량이 한탕도 뛰지 못한다는 말이다.

정오가 가까워지자 이씨에게 순서가 돌아왔다. 차량을 주차하고 레미콘을 싣는 공간을 업계에서는 '빠차'라고 부른다. 빠차에 들어가기에 앞서 세차용 물을 한가득 차량 탱크에 실어야 한다. 물을 싣기 위해, 레미콘이 차량에 제대로 투입되는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이씨는 높은 운전석에 오르락내리락하기 바빴다.

한탕을 뛸 때마다 보관해야 하는 '레미콘 납품서'는 공장 옆 건물 2층의 출하실에서 관을 통해 보내 준다. 떨어진 배식 주워가듯 납품서를 챙길 때마다 이씨는 회사에 정나미가 떨어진다.

레미콘이 쏟아지자 차량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일감을 받았다는 생각 때문인지 이렇게 레미콘이 들어갈 때는 묘한 안도감이 들어요." 레미콘을 가득 실은 차량은 공장 밖을 나설 때 물청소를 해야 한다. 레미콘 투입부에 흘러내린 시멘트가 건설현장까지 가는 사이 굳어 버리면 큰일이기 때문이다. 굳은 시멘트를 처리하려면 또 비용이 든다.

레미콘노동자들이 가장 많이 다치는 순간이 바로 이때다. 겨울에는 투입부로 올라가는 계단에 묻은 물이 얼어 미끄러지기 일쑤다. 34명의 노동자가 일하는 이 공장에서 지난해 두 명이 투입부 물청소를 하다 떨어져 갈비뼈가 부러졌다. 노조가 산재보험 전원 가입을 주장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탕뛰기도 못하고 병원비는 병원비대로 지불할 뻔했다.


▲ 차 한대를 비우는 데 30여분이 걸렸다. 모르타르여서 오래 걸린단다. 한 탕이 아쉬운 입장에선 답답할 노릇. 일반 콘크리트의 경우 5분에 끝낼 때도 있다고 한다.

사장 고용해 일 시키는 회사

레미콘노동자는 2008년 7월부터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특수형태근로종사자로 분류돼 산재보험 가입이 가능하다. 사업주가 보험료의 50%를 내고 노동자가 나머지 50%를 낸다. 그러나 의무가입이 아닌 선택가입이다. 건설노조는 실제 현장 노동자의 20% 정도만이 보험에 가입해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2010년 국정감사 자료에는 1만3천여 등록 노동자 중 28%만이 보험에 가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씨는 매달 3만2800원의 보험료를 내고 있다.

사장(레미콘 회사 경영진)이 사장(레미콘노동자)의 보험료 일부를 대신 내는 특수한 상황인 것이다. 회사가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데도, 노동자가 사장인 특이한 상황. 이를 우리 사회는 '특수고용노동자'라 부른다.

"기자님은 지금 레미콘노동자 중 최상의 노동조건을 가진 현장을 보는 겁니다. 노조가 있어서 산재보험도 거의 의무가입으로 하고 있고요. 기름값도 운행거리 1킬로미터당 0.6리터로 계약돼 있습니다. 현장에는 0.48리터 정도로 계약한 회사가 수두룩합니다."

레미콘노동자들에게 운송거리에 맞춰 회사가 기름값을 지급하는 기준율은 개인수익과 직결된다. 기준율에 따라 레미콘노동자는 기름값을 개인이 추가 부담하기도 하고, 사용을 아껴 회사로부터 기름값을 되레 받기도 한다. 이씨는 지난달 6만원을 받았다.


▲ 회사로 돌아가는 길. 현장 향하는 동료와 손인사를 나눈다.

"노동3권 보장 안 돼 … 고용불안 시달려"

이씨의 설명에 따르면 노조가 없는 곳에는 회사의 횡포가 심하다.

"노조를 만들면 바로 해고하는 사업장이 대부분이에요. 업체들끼리 노동자에 대한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쫓겨난 노동자는 받아 주지 않는 경우도 있어요."

레미콘을 싣고 건설현장으로 향하는 동안 이야기는 이어졌다.

"가장 악질적인 것이 회사의 말을 안 들으면 배차정지를 시키는 겁니다.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배차정지 당하면 손가락 빨고 지내야 합니다. 출하 담당자에게 찍히면 탕수를 줄이거나, 거리가 먼 곳으로 운송을 보내 버립니다."

특수고용노동자라는 신분이어서 노동3권이 보장되지 않고, 노조를 만들기 어려우니 단체협상을 통해 고용안정을 논의할 수도 없는 답답한 상태라는 설명이다.

레미콘노동자가 처음부터 '특수한 노동자'였던 것은 아니었다. 이씨는 87년부터 94년까지 회사 직영으로 일했다. 기본급 80만원에 시급 2천원을 받았다. 상여금에 학자금까지 지원해 줬다.

"당시에 13평 아파트가 320만원 정도 했어요. 한 달 일하면 120만원 받았는데 두 달이면 집을 구하는 거예요. 그런데 20년이 지난 지금 노동자 월급은 거의 그대로인데 집값은 수십 배 뛰었습니다."

97년 이후 건설경기가 하락하자 건설사들은 원가절감을 외치기 시작했다. 레미콘업계가 대응한 방법은 노동자를 '사장'으로 만들어 비용을 줄이는 것이었다. 고용이 불안하고 수익도 줄어들다 보니 레미콘에 종사하는 노동자수가 줄어들고, 고령화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 20여분을 달려 도착한 빌라 신축 현장.
저임금·고령화로 "바닥까지 내려온 느낌"

이씨는 "우리 공장만 해도 지난해에는 차량이 50대였는데 올해는 34대로 줄었다"며 "배운 게 도둑질이라 아파트 경비를 하느니 레미콘 계속한다는 분들이 많아 평균 연령도 55세에 육박한다"고 전했다. 그는 "이제 바닥까지 내려온 느낌"이라고 푸념했다.

공장 밖을 나와 20여분 달려 건설현장에 도착했다. 때마침 점심시간. 현장 관계자가 자리를 비우면 이씨도 차량을 주차하고 대기할 수밖에 없다. 대기하면서도 차의 시동을 꺼서는 안 된다. 레미콘이 담긴 드럼을 계속 회전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노조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한탕이라도 더 뛰기 위해 레미콘 타설을 빨리하고 공장으로 복귀하려고 했어요. 지금처럼 현장 관계자가 없으면 미쳐 버리죠. 그런데 노동자들이 순번제를 정해 순서대로 탕을 뛰면서 스트레스가 줄었어요."

동료들과 탕뛰기 경쟁을 해야 하는 스트레스는 해소됐지만 이씨는 이날 일당을 손해 본 셈이 됐다. 회사 식당에서 식권을 매일매일 받는데, 이날은 현장에서 점심을 사 먹어야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오늘 차에 실린 것은 시멘트와 모래를 고중량비로 배율한 모르타르(mortar)다. 타설을 하는 데 30여분이 걸린다. 일반 콘트리트는 5분 정도면 한 차를 비울 수 있다.

탕뛰기 체계가 잘 알려져 있지 않아 곤혹을 치르는 때도 많다.

"현장에 갔는데 레미콘을 리어카로 받기 시작하더라고요. 3시간 이상 걸려서야 타설이 끝났는데 현장 건축기사가 '기사님 편히 쉬라고 시간 때워 주는 거예요'라는 겁니다. 우리가 하루 시간만 때우면 월급을 받는 줄 알아요."

공장으로 돌아가는 이씨의 손놀림이 바빠졌다. 복귀하면서 빼놓지 않아야 하는 것 역시 세차다. 레미콘이 흘러내려오는 통로인 일명 '슈트'를 씻어야 한다. 레미콘이 빨리 굳기 좋은 날씨면 부리나케 공장으로 돌아와 세차를 해야 한다. 공장마당에 줄 맞춰 세워진 레미콘 차량 사이로 이씨는 순번에 맞춰 주차를 했다. 이제 오후 2시. 이렇게 또 한탕을 뛰었다. 앞으로 세 탕을 더 뛰어야 한다. 그는 다음 순번을 기다리기 위해 휴게실로 향했다.

 

▲ 차를 세우자마자 다시 물청소에 나선다. 한 탕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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