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범
전국금속노조
노동연구원

대법원은 2월23일 현대자동차 비정규 노동자가 제기한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 재심판정 취소 소송에서 현대차 사내하청이 불법파견임을 확인하는 최종 판결을 내렸다. 판결 내용을 면면히 따져 보면 부족한 부분이 적지 않지만 2003년 현대차에서 사내하청 투쟁이 발발한 이후 얻어 낸 몇 안 되는 귀중한 성과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깊다고 하겠다.

현대차 사용자는 그러나 이번 판결이 소를 제기한 개인에 국한된 일이라며 의미 해석을 축소시키려는 시도를 꾸준히 하고 있다. 정부는 그저 방관하고 있을 뿐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의 정치·정세 속에서 비정규직 문제, 특히 간접고용 문제에 대한 입법 논의가 불씨를 지피고 있다는 점이다. 이어 노동계의 적극적인 개입이 요청되기 이르렀다.

진짜 문제는 ‘사업 내 도급’


일반적으로 ‘사내하청’이라고 지칭할 경우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하나의 작업과정 내에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혼재편성돼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는 경우다. 자동차업종에서 널리 퍼져 있는 이런 방식은 당장 위장도급 문제를 피해 갈 수 없다. 혼재편성의 특성상 구체적인 업무지시가 불가피하기 때문에 사실 따져 볼 것도 없이 거의 대부분이 불법파견이라고 할 수 있다. 대법원의 최종 판결 또한 원청 사업주의 구체적인 업무지시를 근거로 파견관계를 확인한 것이다.

하지만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이른바 ‘사업 내 도급’이다. 작업과정을 세분해서 공정별로 개개의 사내하청 업체에 업무를 맡기는 사업 내 도급은 혼재편성과는 달리 한 하청업체가 한 공정을 온전히 담당하기 때문에 ‘외형상’ 완전한 도급 형태를 띤다. 셀 작업방식이 주류인 전기·전자 부문의 경우에는 ‘소사장제’라는 이름으로 이미 사업 내 도급 방식이 보편화돼 있다.

사업 내 도급하에서는 그 외형상 실질적인 사용종속관계를 밝혀내기가 매우 어려운데, 문제는 사내하청이 사회문제화되면서 사업 내 도급으로 고용형태를 바꾸는 사례가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마치 2007년 비정규직법 시행 당시 직접고용 비정규직이 외주화(고용관계의 외부화)를 통해 간접고용으로 전이되는 풍선효과가 우려됐던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대기업 원청업체가 편법적 방식을 동원해 사내하청을 사업 내 도급으로 전환하는 시도가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말이다.

익히 알려져 있듯이 충남 서산에 위치한 ‘동희오토’는 그 대표적인 사례다. 기아차 레이와 모닝을 생산하는 ‘완성차 업체’인 동희오토는 모든 공정이 사업 내 도급 형태로 구축돼 있는데, 1천300여명의 노동자 모두가 17개 하청업체에 고용된 간접고용 비정규직이다.

사내하청, 또 다른 간접고용으로 대체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현재의 사내하청 운동, 불법파견 투쟁이 간접고용 전체의 문제로 확대되지 않는다면 이익추구를 지상 최대의 목표로 둔 자본은 끊임없이 편법적인 방식을 동원해 새로운 착취방식을 만들어 낼 것이다. 따라서 간접고용 문제에 대한 노동운동의 접근방식은 특정한 간접고용 형태가 아니라 전체 간접고용, 전체 비정규직 문제로 확대돼야만 한다. 그렇지 않다면 지금 문제시되는 형태의 사내하청은 또 다른 종류의 간접고용으로 대체될 뿐이다. 이 과정에서 정규직 역시 결코 안심할 수 없게 된다.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한 노동계 안팎의 입법 논의가 사내하청 문제에 대해 간접고용 자체를 규율하는, 나아가 비정규직 활용 자체를 규율하는 형태로 가야 한다는 논지를 담고 있다는 점이다.

‘상시업무의 직접고용 원칙’이 그렇다. 현재 노동계에서 논의되고 있는 비정규직 입법의 핵심은 비정규직 활용 자체를 규율하는 데 있다. 현행 비정규직법은 기간제 및 단시간 노동자와 파견 노동자를 활용하는 데 제한장치를 두고 있다. 기간제 및 단시간 노동자의 경우 ‘사용기간 제한’이 적용되고 있고, 파견 노동자는 ‘사용기간 제한’과 함께 포지티브 방식의 ‘사용사유 및 업종 제한’ 장치가 마련돼 있다.

하지만 ‘사용기간 제한’이라는 장치는 2년 이내의 자유로운 해고를 오히려 방치하고 용인한다. 또 현행 비정규직법은 외주화, 특히 외형상 합법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는 도급·용역·위탁 등을 전혀 규율하지 못한다. 외주화 자체를 규율하지 못하는 한 얼마든지 새로운 형태의 합법적 외주화, 위장된 간접고용이 횡행할 수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비정규직법 논의에서 지켜야 할 두 가지 원칙

비정규직법 논의 과정에서 한 가지 피해야 할 함정은 핵심업무와 주변업무의 구분이다. 2006년 공공부문 비정규직 종합대책은 90년대 말 이후 간접고용의 확산 과정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공공부문 간접고용 개선대책이었다. 그러나 공공기관의 업무를 주변업무(또는 부가업무)와 핵심업무(또는 본연의 업무)로 구분하고, 주변업무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외주화를 허용했다는 점에서 치명적인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사업 또는 기업을 하나의 유기체, 즉 사람의 몸이라고 생각해 보자. 과연 사람의 몸을 핵심적인 부문과 주변적인 부문으로 양분할 수 있을까. 가령 콩팥이 하나 없다고 해서 생존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콩팥이 없는 사람이 정상적으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것 또한 아니다. 마찬가지로 하나의 사업에 있어 모든 업무는 유기적 연관성을 갖고 있으며 핵심업무와 주변업무를 구분하는 것은 그 자체로 성립하기 어렵다. 이런 구분은 새로운 쟁점만을 야기할 뿐이다. 핵심업무와 주변업무를 나눠 주변업무에 대해 외주화를 허용하자는 주장은 불편한 신체부위를 은폐하고 마치 건강한 사람처럼 위장하자는 말과 다를 바 없다. 따라서 비정규직 활용, 나아가 외주화 자체를 규율하기 위해서는 ‘상시업무 전체를 직접고용’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아울러 ‘상시업무의 직접고용 원칙’은 반드시 ‘차별 금지 및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과 함께 가야 한다. 직접고용만이 능사는 아니다. 2007년 비정규직법이 시행되면서 금융권에서 새롭게 탄생한 용어가 바로 ‘중규직’이었다. 일부 비정규직 업무를 직접고용으로 전환했지만 새로운 직제로 편성하면서 기존의 정규직 노동자와 노동조건에 있어 차이를 존속시켰음을 빗대어 표현한 말이다.

비정규직법이 기간제 및 단시간 노동자, 파견 노동자에 대한 차별금지를 천명하고 있지만 실제로 차별시정 제도가 활용되고 차별 판정을 받은 사례는 손에 꼽을 정도다. 여기에는 비정규 노동자에게 한정된 신청권도 한몫했지만 비교대상으로서 동일유사 업무를 수행하는 정규직 노동자를 찾지 못할 경우 차별 자체가 성립이 안 되는 법체계의 한계도 큰 역할을 했다.

상시업무 직접고용이 중규직의 양산으로 치닫지 않기 위해서는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이 반드시 함께 관철돼야만 한다.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의 실현가능성에 의문을 품는 우리 사회의 인식지평을 확대하기 위한 노동운동의 노력과 사회적 합의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간접고용, 현대판 ‘마름’이 널리 퍼지게 된 계기가 90년대 말 외환위기였음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미 90년대 신경영전략 속에서 노동유연화를 전개했던 자본이 외환위기를 계기로 전 산업에 걸쳐 외주화를 확대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위기를 조기에 극복한다는 미명하에 정부가 추진했던 각종 정책들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비정규직 문제를 양산하거나 혹은 해결하는 데 정부의 의지와 정책이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자본이 스스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한 정부의 의지와 개입은 필수적이다. 이것을 만들어 내는 것은 노동운동의 끊임없는 문제제기와 적극적인 개입 노력이다. 지금이야말로 ‘잠재적 비정규직’으로서 우리 사회의 모든 노동자들의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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