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법원이 현대자동차 사내하청은 불법파견이므로 정규직으로 봐야 한다는 확정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로 제조업 사내하청 노동자의 고용상 지위에 대한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행정부가 사내하청 문제에 대해 ‘갈지자’를 그리는 와중에 사법부가 "도급을 가장한 대기업의 사내하청 고용관행은 불법"이라고 쐐기를 박은 것이다.

대법원의 판결로 현대차뿐만 아니라 제조업 전반의 사내하청 사용에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자동차 생산시설 같은 제조업은 작업의 특성상 도급이 불가능하다는 게 대법원의 판단이다. <매일노동뉴스>가 현대차 불법파견 판결이 가진 의미와 파장을 네 차례에 걸쳐 살펴본다.

[게재순서]
1. 제조업 불법파견, 8년 논쟁 마침표 찍다
2. 발등에 불 떨어진 현대차
3. 자동차업계 다음은 철강·조선·전자업계, 그리고?
4. 문제는 간접고용, 어떻게 규제할 것인가

‘선거의 해’인 올해, 남다른 주목을 받으며 주가를 올리고 있는 정책은 ‘비정규직 대책’이다. 보수와 진보를 가릴 것 없이 모든 정당들이 비정규직 해결사를 자처하며 각종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정부 통계로 600만명에 달하는 비정규직의 규모를 줄이자는 데 여야 모두 이견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공공부문을 제외한 비정규직에 대해서는 사용을 제한하기보다는 불합리한 차별을 시정하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특히 파견제도와 관련해 새누리당은 특별법(사내하도급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정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법률의 내용은 이명박 정부가 지난해 발표한 ‘사내하도급 근로자 보호를 위한 가이드라인’과 별반 다를 게 없다.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진보신당은 도급과 파견의 구분을 법률로 엄격히 규정하고, 불법파견에 대해 '직접고용 간주규정'을 적용하겠다고 공약했다. 불법적인 파견근로는 규제하고 적법한 도급은 허용한다는 점에서 보면 야당의 입장이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첫걸음부터 서로 가는 길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핵심은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에 대한 태도다. 민주통합당은 파견법 개정을, 통합진보당은 파견법 폐지를 각각 공약으로 제시했다.

파견법 개정 vs 파견법 폐지

민주통합당과 한국노총은 현행 파견법에 도급과 파견을 구분하는 기준을 신설해 불법파견과 위장도급을 규제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파견기간을 초과하거나 제조업 등 파견금지 업종에서 불법파견을 사용한 경우 즉시 고용간주 조항을 적용하는 방안을 내놓고 있다. 사용휴지기 제도 도입도 포함돼 있다. 동일 업무에 파견노동자를 교체 사용하는 것을 규제하기 위해 파견노동자를 사용한 뒤 휴지기간(동일한 업무에 파견노동자 사용이 제한되는 기간)을 적용하되, 6개월에서 1년 동안 기간을 두는 규정이다.

파견법 개정에 앞서 민주통합당은 ‘상시·지속적 업무의 직접고용 원칙’을 근로기준법에 명시해 간접고용을 엄격하게 제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울러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사용자 정의를 확대해 원청에 사용자성을 부여하는 방안과 근로기준법상 일반적 구속력 제도를 사내 도급업체 노동자에게 확장해 적용하는 방안을 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반면에 통합진보당은 파견법 자체를 '없애야 하는 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통합진보당과 민주노총은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중간착취 금지의 원칙에 따라 파견제도를 금지해야 한다"는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대신 직업안정법에 도급에 대한 판별기준을 마련하고, 직업안정법을 위반한 근로자공급사업이 행해진 경우 고용의제 조항을 적용해 정규직으로 간주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불법파견을 비롯한 모든 파견 근로관계가 사라지고, 정규직이든 기간제든 사용자가 직접 고용하는 형태의 근로계약만 합법적으로 인정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만연한 간접고용을 규제하기 위해 98년 파견법이 제정됐지만 14년이 흐른 지금까지 여전히 불법적이고 위장된 근로관계가 사회문제로 제기되는 만큼 파견법이 나오기 이전 상태로 법·제도를 되돌려야 한다는 지적이다.

우선순위, 사용사유 제한일까 파견 철폐일까

통합진보당과 민주노총의 파견법 폐지 입장에 대해 노동계 내부의 반론도 적지 않다. 소모적인 비정규직 입법논쟁이 되풀이될 수 있다는 우려도 크다.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파견법 폐지는 역사적으로 상징적일 수 있지만 그것만으로 늘어나는 간접고용 비정규직을 규제하기는 역부족”이라고 지적한다. 이 소장은 “간접고용 비정규직 가운데 파견노동자는 소수이고 용역·호출노동 같은 근로형태가 다수를 이루고 있다”며 “간접고용 일반에 대한 규제가 가장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비정규직으로 가는 길목부터 틀어막는 ‘사용사유 제한’이 비정규직 해법의 1순위가 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 소장은 “파견법 폐지가 우선시되는 것은 조직된 비정규직 당사자 중심으로 입법요구안이 마련됐기 때문”이라며 “파견법 폐지는 민주통합당과의 차이와 선명성을 강조하기 위한 ‘최대강령주의’로, 손 놓고 주장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수세적인 방식”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은 “중간착취 금지 원칙에는 동의하면서 파견법을 폐지하자는 데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은 법 개정 과정에서 예상되는 이데올로기 공세를 피해 가자는 주장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홍순광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국장은 “현재 순수하게 파견법 적용을 받는 근로형태는 얼마 되지 않는다”며 “문제는 위장된 도급형태의 불법파견인데, 파견법을 폐지하고 이를 직업안정법에서 규율함으로써 중간착취를 종식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입법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일부 전문가들은 선거 국면을 맞아 비정규직 공약이 난무하는 데 대해 우려를 표하기도 한다. 지난달 양대 노총이 공동 주최하는 비정규직법 개정방향 토론회에서 이병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노동시장 분야에서 양대 노총의 정책 방향과 중심의제는 차이가 크지 않아 보인다”며 “이를 현실화하기 위해서는 우선순위에 대한 합의와 중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입법뿐만 아니라 정책과 행정 분야에서도 종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다. 참여정부 시절 특수고용직 보호법안이 지리한 논쟁 끝에 좌절된 경험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당장 8월이면 개정된 파견법이 시행된다. 불법파견시 원청에 직접고용 의무가 부과되는 것이 핵심이다. 최근 현대차 불법파견 대법원 판결과 맞물려 완성차를 비롯한 제조업 사업장에서는 벌써부터 2년 미만 사내하청 노동자를 줄이기 위해 업무를 외주업체에 아웃소싱하거나 1년 미만 초단기 고용형태로 돌리려는 시도가 나타나고 있다. 자칫 법 개정 논의에 밀려 이에 대한 감시가 소홀해진다면 노동시장 왜곡현상이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질 수 있다.

워낙 비정규직 공약이 쏟아지다 보니 19대 국회가 개원하기도 전에 지난 10여년간 진행된 '비정규직법 논쟁'이 재현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들린다. 이해관계가 첨예하고 중요한 문제일수록 사회적 합의를 이루려는 노력이 중요한 시기다.

[상자기사] 일본, 불법파견시 고용의제로 법 개정
일본에서도 파견법 개정은 뜨거운 감자다. 일본 국회는 지난달 28일 노동자파견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는다. 그런데 노동계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이번에 개정된 노동자파견법은 파견업체가 노동자의 임금에서 떼는 수수료율을 공개하도록 의무화했다. 파견노동자의 적정한 임금 보장을 위해 파견업체의 수수료율을 공시하도록 한 것이다.

원청이 위장청부(도급)계약을 맺고 실제로는 파견근로를 시키다 적발되면 직접고용한 것으로 간주하도록 했다. 불법파견시 고용의제를 적용하는 이 조항은 3년간의 경과규정에 따라 2015년부터 시행된다. 30일 내 단기파견도 금지된다.

그러나 일본 노동계는 "제조업 파견 금지 등 핵심적인 내용이 빠졌다"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일본 언론들은 노동자파견법 개정 논란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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