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 위치한 노사발전재단 서울전직지원센터 입구 모습. [정기훈 기자]
금세 사람이 가득했다. 들어설 때 곳곳이 비어 있던 터라 늘 자리가 꽉 찬다는 말을 쉬이 믿지 못했다. 지난달 30일 오전 서울 공덕동 노사발전재단 전직지원센터 사무실. 개인용컴퓨터(PC) 52대가 들어선 구직자 지원실은 사람들로 붐볐다. 이곳에는 신문이나 각종 잡지를 볼 수 있는 쉼터도 마련돼 있다.

'다양한 직업세계'를 주제로 한 오전 강의가 끝나자 사람들이 물밀 듯 나와 자리를 채웠다. 일자리난의 시대. 새 직장 찾기에 나선 이들은 컴퓨터를 두드리며 '내 직업 찾기'에 열중했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피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서로 대화를 나누는 모습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구직자들의 험난한, 그리고 우울하기까지 한 이 항해는 언제쯤 끝날까.

그나마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든든한 동반자가 있어 다행이랄까. 그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며 취업까지 안내하는 제2의 삶의 설계자인 ‘커리어 컨설턴트’. <매일노동뉴스>가 이들의 하루를 따라가 봤다.
▲ 컨설턴트 임은경씨가 센터 강의실에서 '시간관리'를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친구이자 취업 전략가, 커리어 컨설턴트

"어떻게 하면 이력서를 잘 쓸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었어요. 4개월째 상담과 취업 컨설턴트를 해 드린 분인데 취업이 쉽지 않네요. 또 다른 일자리가 있어 이번에도 입사지원서를 함께 쓰고 있어요. 능력은 괜찮은데 취업이 안 되니 ‘조언을 제대로 못한 내 탓 아닌가’하는 생각에 마음만 무겁네요."

노사발전재단 전직지원센터 소속 커리어 컨설턴트인 임은경(36)씨. 은경씨는 이날 오전 10시쯤 기자를 만나자마자 이른바 '고객'이라고 부르는 구직자에 대한 이야기부터 풀어놓았다. 마음속은 온통 걱정투성이인데, 얼굴만은 웃는 낯이다.

또 다른 커리어 컨설턴트 임희정(30)씨도 마찬가지다. 오전 9시 출근 직후부터 지금까지 어제(28일) 첫 통화를 하고 오늘 처음 만날 예정인 고객(구직자)에 대한 정보를 살펴보고 있었다.

"고객의 성격과 장·단점, 경력을 꼼꼼히 살펴야 어떤 분야(직장)에서 빛을 발할지, 취업이 가능할지 판단할 수 있어요. 오늘 첫 상담에서도 이러한 사항을 꼼꼼하게 물어보고 챙기려고 합니다."

이렇게 말하던 희정씨는 "마음이 활짝 열린 분이 오셔야 할 텐데…. 걱정이에요"라며 웃었다.

커리어 컨설턴트(Career Consultant)는 구인업체와 구직자를 연결해 주는 단순한 취업알선·소개사가 아니다. 피상담자의 성격과 능력을 파악하고 평가한 뒤 적합한 직업·직장을 조언해 주고, 그 방면에 필요한 능력을 함께 키우고 취업까지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

재단 전직지원센터는 명예·정년 등 다양한 이유로 퇴직하거나 직장을 옮기고 싶은 이들을 대상으로 재취업을 지원하는 기관이다. 목표는 고객의 재취업 성공이지만, 컨설턴트라는 직업은 심리상담사에 더 가깝다. 피상담자와는 평균 3개월, 길게는 6개월 동안 만나면서 취업활동을 함께한다. 밀착도가 높고 감정교류가 많다. 이들은 스스로를 '감정노동자'라 부른다.
▲ 커리어 컨설턴트 김수진(오른쪽)씨가 센터를 찾은 고객과 일대일 상담을 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구직자 기분 따라 우리도 ‘하늘·별·땅’

"피상담자가 우울하면 덩달아 우울해질 때도 있어요. 물론 힘들게 이곳을 찾아왔다가 취업에 성공해 웃으며 나가실 때는 내 일처럼 덩달아 기쁘기 그지없죠. '고맙다·감사하다'는 말이 보람 그 자체입니다. 그러나 처음 오실 때는 대부분이 어깨가 축 처져 있고 마음도 열지 않으려고 하세요. 심하면 우울증상을 보이는 분도 있죠."

은경씨는 “심리상담을 통한 자신감 회복에 무엇보다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퇴직·실직자에게는 어떤 취업정보·스킬보다 위축된 자신감을 회복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해외 영업실적 감소에 책임을 지고 다니던 회사를 나와야 했던 50대 초반의 한 남성 고객. 그는 경력이나 능력은 출중했다. 그러나 취업(면접)에 잇따라 실패했다. ‘이사님·부장님’이라는 호칭을 들으면서 사람을 부리는 위치에 있다가 경제위기 때 불명예 퇴직을 하면서 생긴 트라우마가 깊었다.

은경씨는 "그분의 과거 경력을 꼼꼼히 살피면서 잘하고 성과를 냈던 부분을 찾아냈고, 이런 성과를 냈던 것이 바로 당신이라는 점을 강조했다"며 "여러 번의 상담 끝에 자신감을 되찾자 금세 취업에 성공했다"는 경험담을 들려줬다.
▲ 센터는 모의면접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동영상을 녹화해 면접 지원자의 표정과 자세 등 세세한 부분까지 살피고 조언한다. 선임 컨설턴트 홍제희씨가 면접관 역할을 맡았다. [정기훈 기자]

하루 2~4건의 면담, 전화·이메일 상담은 수시

센터는 청년·고령 상관없이 경력 1년 이상이면 누구나 회원으로 가입해 이용할 수 있다. 다만 전직을 주된 업무로 하다 보니 40~50대 남성 고객이 다수를 차지한다.

전직을 원하는 사람은 그나마 재취업에 대한 열정을 엿볼 수 있다. 반면 퇴직자든 실직자든, 직장을 잃은 사람의 모습은 비슷하다. 평생 몸 바쳐 하던 일을 잃은, 우리 아버지들의 모습 그것이다.

센터 소속 커리어 컨설턴트들은 이들과 함께 제2의 인생을 설계한다. 하루 평균 2~4건의 대면상담을 하고 전화나 이메일 상담은 문의가 오는 대로 그때그때 처리한다. 취업 관련 각종 강의도 도맡는다.

배정받은 고객에 대해서는 대면상담이 없더라도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취업활동은 어떻게 하고 있는지 일일이 전화를 걸어 확인한다. 희정씨는 “꾸준히 관리하지 않으면 취업전선에서 이탈하는 사람이 생긴다”고 귀띔했다.

이른바 ‘취업 전략짜기’는 커리어 컨설턴트에게 늘 고민거리다. 고객별로 성격도, 취업을 원하는 직종·직업도, 경력·능력도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상담 내용이나 취업 전략이 각기 다를 수밖에 없다. 사전준비가 꼼꼼하지 않으면 상담이나 취업활동이 제대로 될 리 없다. 센터는 이를 '1:1 개인형 맞춤 서비스'라고 부른다.

대면상담을 비롯해 성격유형검사(MBTI)·직업적성검사를 통해 개인별 성격·적성을 파악한 후 구직자의 경력·능력과 욕구에 따른 직종별 직업세계를 소개하고, 각종 강의를 통해 직업능력을 배양시킨 뒤 이력서(자기소개서) 작성·면접방법·온라인 지원전략과 같은 세세한 취업스킬을 가르쳐 준다. 모두 컨설턴트의 몫이다. 심지어는 증명사진까지 찍어 준다.
▲ 금요일 오후 센터를 찾은 구직자들이 각종 취업정보 검색을 하고 있다. [정기훈 기자]

69명의 컨설턴트, 한 해 1만6천명 마주 대해

▲ 교육상담팀 책상엔 거울이 하나씩 놓여있다. 밝은 표정으로 고객을 맞기 위해서다. 컨설턴트 임희정씨가 각종 상담 문서를 살피느라 내내 바빴다. [정기훈 기자]
이런 방식으로 컨설턴트 1명이 1년에 마주 대하는 고객은 270~300명 정도다. 서울 24명을 포함한 경기·부산·대구 등 전국 14개 지역센터에서 69명의 컨설턴트가 재단 소속으로 일한다. 행정인력을 포함한 센터 전체 직원은 106명이다.

이들은 지난해 1만6천436명에게 전직서비스를 제공했다. 이 중 절반(45.5%)이 취업에 성공했다. 대면상담을 진행했던 고객 기준으로는 취업률이 60%가 넘는다.

모든 서비스는 무료다. 센터는 노사정위원회 '일자리 만들기 사회협약' 체결로 이듬해 11월 노사공동 재취업지원센터로 출발했고, 지난해 3월 노사발전재단 소속으로 재출범했다. 올해 예산은 93억4천만원. 정부가 전액을 지원한다. 창업지원 컨설팅도 제공한다.

박창인 센터 부장은 "올해부터는 퇴직예정자를 대상으로 기업이 집단 재취업서비스 지원을 신청하면 현장을 찾아가 상담·교육하는 기업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할 예정"이라며 “재취업서비스를 통해 기업은 이미지 제고를, 퇴직예정자는 새 직장을 구할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과 연봉제, 질적 평가로 보안 필요”

이날 만난 은경씨와 희정씨는 평소대로 각각 강의와 상담을 진행했다. 은경씨는 ‘시간관리’를 주제로 강의를 한 뒤 두 차례 상담을 했다. 강의는 ‘퇴직 후 변화상’과 ‘시간관리의 중요성’에 대해 참여자와 문답형식으로 진행됐는데, 참여도가 높아 나름 기분이 좋았다고 한다.

희정씨는 상담을 두 건 했다. 평소보다 많지는 않지만 처음 만나는 분들이라 은근히 걱정됐던 것이 사실이다. 벌써 4년째지만 직장을 잃은 사람들을 처음 만나고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 심리적 부담이 크다고 한다.

다행이랄까. 이날 희정씨가 만난 두 사람은 20대였다. 아무래도 젊은층이 취업에 대한 열정과 의지가 높다. 희정씨는 “둘 다 젊은 분들이라 조급해하지 말고 넓고 다양하게 취업문을 두드려 보자는 취지로 상담을 진행했다”며 “성격유형·적성검사를 해 보고 취업을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함께 세우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는 "오늘은 상담 후 ‘도움이 됐다’는 말도 들어서인지 보람찬 하루라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런데 커리어 컨설턴트의 월급은 얼마나 될까. 재차 되물어도 은경씨와 희정씨 모두 그냥 방긋방긋 웃었다. “돈보다는 제2의 인생을 설계해 준다는 보람으로 일하고 있다”는 수학공식 같은 답변만 돌아왔다. 후에 알고 보니 이들은 월급이 아닌 연봉을 받고 있었다. 성과에 따라 연봉수준이 결정된다. 센터 관계자는 “맞춤형 서비스는 고객의 성향·능력을 얼마나 잘 파악하고 제대로 된 전략을 마련해 주는가가 핵심”이라며 “그런데 평가는 상담건수·취업률 등 수량적 지표에 집중돼 있어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 서울전직지원센터 교육상담팀.

“사업 망하고, 취업해 눈물 흘리던…”

그래도 은경씨는 씩씩했다.

“이곳을 통해 축 처진 어깨를 활짝 펴고 나가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더 바랄 게 없죠(웃음). 사실 이렇게 좋은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잘 모르는 거 같아요. 몰라서 이용하지 못하는 분들이 있다는 게 항상 안타깝습니다.”

아직은 이것저것 살피며 쉴 틈이 없다. 일자리는 적고, 고령 퇴직자는 쏟아지는 시대. 갈 곳 없어 홀로 산을 오르며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이들에게 커리어 컨설턴트들의 손길은 절실하다. 컨설턴트 역시 그들에게 손을 내밀 때 비로소 보람을 느낀다.

희정씨도 은경씨와 같았다. 그는 “사업이 망하고 빚더미에 올라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센터를 찾았다’던 아버질뻘의 50대 고객이 취업에 성공한 후 눈물을 흘리시던 모습이 생각난다”며 “내가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내가 이 일을 계속해야만 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사진=정기훈 기자 photo@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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