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판례/ 수원지방법원 2012. 2. 21 선고 2011가단8928 판결

Ⅰ. 사실관계

2010년 7월1일부터 안산시지역에 최저임금법 제6조제5항<각주1> 시행을 앞두고, 피고 회사를 포함한 안산시지역 일반택시업계의 노사는 단체교섭에서 ‘최저임금제 시행에 대비한 퇴직금 중간정산 실시 여부와 사납금 인상액’을 놓고 대립하게 됐다. 사측은 “퇴직금 중간정산을 실시해 부담을 없애겠다”고 했고, 노측은 “퇴직금 중간정산이 꼭 필요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사측이 강제로 중간정산을 실시해서는 안 된다”고 맞섰다

결국 노사는 최저임금법 시행으로 인상되는 퇴직금인상분을 고려한 금액으로 사납금을 대폭 인상하고 회사 차원에서 퇴직금 중간정산을 강제로 실시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교통사고나 사납금 미입금시 담보할 돈이 필요하다며 근로자들의 정당한 퇴직금 중간정산 요구도 거절해 왔던 피고 회사는 합의를 무시했다. 회사는 ‘최저임금법 시행에 따라 퇴직금 중산정산 신청을 하라’는 두 차례의 공고를 내고, ‘최저임금법이 시행되더라도 퇴직금은 늘어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설명회를 열었다. 미신청자에게는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전화통화를 하며 근로자들에게 퇴직금 중간정산을 계속 권유해 126명 중 80여명으로부터 퇴직금 중간정산 신청을 받았다.

그 후 피고 회사는 최저임금법 제6조제5항 시행 이후 퇴직한 근로자들에 대해 2010년 6월30일까지는 2010년 6월30일 기준의 평균임금을(고정급이 최저임금에 미달한 액수), 그 이후부터 퇴직일까지는 퇴직일 기준의 평균임금을(고정급이 최저임금에 상회한 액수) 기준으로 퇴직금을 계산해 지급했다.

이에 퇴직금 중간정산을 받았던 원고들은 퇴직금 중간정산에는 문제가 있다며 법원에 ‘전체 근속기간에 대해’ ‘퇴직일 기준 평균임금으로 계산한’ 퇴직금에서 기지급 퇴직금을 공제한 나머지 금액을 지급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던바, 법원은 원고들의 손을 들어 줬다.

Ⅱ. 이 사건 판결의 검토

필자는 이 사건에서 먼저 원고들의 자율적 의사에 기초한 유효한 중간정산 요구가 없어 퇴직금 중간정산의 요건(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제8조)을 충족하지 못했으므로 중간정산이 무효라고 주장했다. 법원이 최저임금법의 취지를 감안, 근로자의 퇴직금을 충분히 보호해주려는 적극적 태도를 보이길 바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원은 “원고들이 중간정산신청서를 작성·제출하고 중간정산퇴직금을 수령한 이상 유효한 요구가 있었다”고 판단했다.

이것은 사직서 제출 등 의사표시에 대한 법원의 판례에 비추면 비난받을 정도의 판단은 아니다. 그러나 법원이 근로자의 요구라는 퇴직금 중간정산 요건에 대해 엄격하게 해석한다면 그 긍정적 효과는 크다. 사용자의 근로자에 대한 퇴직금 중간정산 강요 등의 폐해는 크게 줄 것이고 퇴직 후 생활보장이라는 퇴직금제도의 취지를 살릴 수 있다. 이런 생각을 알아주지 못한 법원의 태도가 아쉬웠다. 법원의 태도는 노동현장에 대한 이해부족에서 기인한다. 과연 근로자들이 만날 때마다, 전화나 문자를 통해 퇴직금 중간정산을 수시로 요구하고 불이익을 줄 것 같은 태도를 보이는 사용자를 상대로 그 요구를 거절할 수 있을까. 그들에게 선택의 여지나 유효한 퇴직금 중간정산 요구가 있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인가.

다음으로 동기의 착오<각주2>를 이유로 한 퇴직금 중간정산 취소 주장을 했다. 다행히도 법원에서 받아들였다.

법원은 “피고 회사는 개정된 최저임금법의 시행으로 퇴직금이 늘어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고 이로 인한 경제적 부담을 덜기 위해 중간정산을 시행한 점, 원고들은 피고의 권유로 퇴직금 중간정산을 신청한 점, 개정된 최저임금법 시행으로 퇴직금이 늘어나는 것을 알았다면 원고들은 퇴직금 중간정산을 신청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는 점, 사용자는 근로자들과의 계속적 고용관계에 있어 일반 계약보다 훨씬 더 큰 신뢰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에서 피고가 위와 같이 법률이 개정됨으로써 퇴직금이 상승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원고들에게 묵비한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반하는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종합할 때 피고가 유발한 것으로 봄이 상당하고 원고들은 물론 일반인의 입장에서도 위와 같은 오인이 없었다면 퇴직금 중간정산을 신청하지 않았을 것이 명백하다. 따라서 원고들은 이 사건 중간정산 신청을 취소할 수 있다”고 판시한 것이다.

그리고 지급돼야 할 퇴직금의 액수에 대해서는 “전체 근속기간에 대해 퇴직일 기준 평균임금으로 계산한 퇴직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했다. 법원은 “최저임금법 적용이라는 특수하고 우연한 사정에 의해 임금이 2배 가까이 급상승했으므로 급상승한 평균임금을 기준으로 전 재직기간의 퇴직금을 산정하는 것은 불합리하므로 최저임금법 개정조항의 시행 전·후 기간을 나누어 각 평균임금을 기준으로 퇴직금을 산정해야 한다”는 피고의 주장을 일축했다.

그 근거는 다음과 같고 지극히 타당하다.

“최저임금법이 근로자에 대해 임금의 최저수준을 보장해 근로자의 생활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꾀함으로써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점, 입법자가 제반 사정을 감안해 2010년 7월1일부터 지방자치법 제2조제1항제2호의 시지역의 일반택시운송사업에서 운전업무에 종사하는 근로자에 대해서도 최저임금법을 적용한 점, 최저임금법의 적용과 함께 사납금도 인상된 점 등을 고려할 때 최저임금법의 적용으로 인해 원고들의 임금이 증가한 것을 두고 퇴직을 즈음한 일정 기간 특수하고 우연한 사정으로 인해 임금액 변동이 있었다거나, 평균임금이 통상의 경우보다 현저하게 적거나 많게 산정된 것으로 평가할 수 없다.”

이 사건의 변론은 그야말로 치열하게 진행됐다. 변론의 종결과 재개, 판결선고 연기가 있기도 했다. 원고는 6명이었지만 퇴직금 액수가 쟁점이라 사업장의 모든 근로자들을 대표하는 성격을 띠었기 때문에 그만큼 재판결과에 따라 조합원들이 일희일비했다.

최저임금법 제6조제5항의 시행과정에서 야기된 사건으로 유사 사례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었다. 특히 기간을 나누어 퇴직금을 계산, 퇴직금 액수를 줄이고자 하는 사용자의 시도가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이러한 시도를 용납하지 않은 법원의 태도는 최저임금법 제6조제5항의 시행취지에 부합하고 법원의 근로자 보호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높이 평가할 만하다.

일반택시운전근로자에 대한 최저임금법 제6조제5항이 시행된 배경이 사납금제를 주로 취하고 있는 현실에서 택시운전근로자들이 받는 임금 중 고정급의 비율을 높여 운송수입이 적은 경우라고 하더라도 최저임금액 이상의 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해 택시운전근로자들이 보다 안정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으로, 이러한 배경을 이해하고 있는 판단이다.

또한 최저임금법 제6조제5항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합헌결정과도 궤를 같이 하는 판단이다(헌법재판소 2011.8.30 2008헌마477 결정). 참고로 퇴직금 중간정산의 요건을 엄격하게 제한하는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제8조제2항<각주3>이 개정돼 2012년 7월26일 시행된다.

<각주>
1) 2007년 12월27일 “택시운전근로자들의 최저임금에 산입되는 임금의 범위에서 생산고에 따른 임금은 제외한다”는 취지의 최저임금법 제6조제5항이 신설됐고, 이 조항은 특별시 및 광역시의 경우 2009월 7월1일부터, 제주특별자치도 및 시지역의 경우 2010년 7월1일부터 시행됐다.

※ 최저임금법 제6조(최저임금의 효력) ⑤제4항에도 불구하고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제3조 및 같은 법 시행령 제3조제2호다목에 따른 일반택시운송사업에서 운전업무에 종사하는 근로자의 최저임금에 산입되는 임금의 범위는 생산고에 따른 임금을 제외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임금으로 한다.

부칙 <법률 제8818호, 2007.12.27>
이 법의 시행일은 다음 각 호와 같다.
1. 「지방자치법」 제2조제1항제1호의 특별시 및 광역시 : 2009년 7월1일
2. 제주특별자치도 및 「지방자치법」 제2조제1항제2호의 시지역 : 2010년 7월1일
3. 제1호 및 제2호를 제외한 지역 : 2012년 7월1일

2) 동기의 착오가 법률행위의 내용의 중요 부분의 착오에 해당함을 이유로 표의자가 법률행위를 취소하려면 그 동기를 당해 의사표시의 내용으로 삼을 것을 상대방에게 표시하고 의사표시의 해석상 법률행위의 내용으로 돼 있다고 인정되면 충분하고 당사자들 사이에 별도로 그 동기를 의사표시의 내용으로 삼기로 하는 합의까지 이루어질 필요는 없지만, 그 법률행위의 내용의 착오는 보통 일반인이 표의자의 입장에 섰더라면 그와 같은 의사표시를 하지 아니했으리라고 여겨질 정도로 그 착오가 중요한 부분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대법원 1997.9.30 선고 97다26210 판결, 대법원 1998.2.10 선고 97다44737 판결, 대법원 2000.5.12 선고 2000다12259 판결 등 참조).

3)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 제8조(퇴직금제도의 설정 등) ② 제1항에도 불구하고 사용자는 주택구입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유로 근로자가 요구하는 경우에는 근로자가 퇴직하기 전에 해당 근로자의 계속근로기간에 대한 퇴직금을 미리 정산해 지급할 수 있다. 이 경우 미리 정산해 지급한 후의 퇴직금 산정을 위한 계속근로기간은 정산시점부터 새로 계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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