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에 계몽군주 시대 도래? ”한국 재계에 가시화된 재벌 3세의 경영참여가 과거 황제경영의부활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그러나 이들 3세 오너는 선대와 달리 체계적 경영수업을 받았고 뚜렷한 미래 사업비전을제시하는등 새로운 특질을 보여주고 있어 이를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3세들의 급부상〓삼성전자는 지난 9일 주총에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외아들 이재용씨를 이 회사 기획담당 임원으로 선임했다. 재용씨는 이에따라 26일부터 31일까지 경기도 용인의 삼성인력개발원에서 올해 임원으로 승진한 166명과 함께 신규임원 연수에 참가해 직무교육을 받게됐다.

재용씨는 31일 서울신라호텔에서 신규임원승진자 부부동반 오찬모임에 부인 임세령(임창욱 대상그룹 명예회장의 딸)씨와 함께 참석할 예정이다. 최태원 SK㈜회장은 98년 작고한 고 최종현 회장의 뒤를 이어 일찌감치 회사경영을 승계했으며 지난해말 비상장사인 SK C&C를 지주회사격으로 그룹 지배체제를 공고히 했다.

두산은 고 박승직창업주-고 박두병 회장-박용곤 명예회장, 박용오 두산 회장, 박용성 OB맥주 회장, 박용만 전략기획본부장에 이어 최근 4세들까지경영수업을 받고 있는 상태. 현대·기아차는 정몽구 회장의 외아들인 의선씨가 99년말 현대차에 입사한 뒤 이사를 거쳐 지난해말 상무로 승진해 구매실장직을 맡고 있다.

이밖에 LG 구본무 회장, 코오롱 이웅렬 회장,삼양사김윤 부회장은 이미 수년전 경영승계를 끝내고 그룹을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다. 한솔 조동혁 부회장, ㈜효성 조현준 전무, 신세계 정용진 부사장 등 비교적 젊은 3세들도 경영의 연륜을 더해가고 있는 중. 3세는 아니지만 이에 비견되는 2세 오너회장들도 많다. 29세에그룹을 넘겨받은 한화 김승연 회장, 한국롯데를 책임지고 있는롯데그룹 신동빈 부회장, 고 유찬우 풍산회장의 차남인 유진 회장, 삼환기업 최종환 명예회장의 장남인 최용권 회장이 대표적인 사례다.

◈신 오너체제의 특징〓황제경영으로 폄하됐던 1세들의 절대군주식 통치와 달리 ‘젊은 황제’들은 계몽군주와 같은 솔선수범형조직관리술을 구사하고 있다. 스스로 상당한 지적소양(MBA자격, 외국어능력, e비즈 감각)을 갖추고 회사 안팎에 대해 “나를 따르라”고 설득하는 리더십이 돋보인다.

실제 이들은 “나를 전문경영인(CEO)중 한 사람으로 평가해달라”며 “해보다 안되면 언제든지 그만둘 것”이라고 거침없이 발언하고 있다.

학계와 업계내 일부에서는 이같은 오너 3세들의 경영현장 전진배치가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이후 정체성이 희미해진 한국재벌의 새로운 경쟁력 강화수단이라는 해석이 제기되고 있다. 창업자 1인의 판단력에 절대 좌우되던 황제경영이 무너진 뒤 계열사 CEO 중심의 자율경영이란 공화정으로 가던 과정에서 다시 경영능력과 카리스마를 겸비한 현명한 군주에게 권력을 집중시키는계몽군주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이다. 계몽군주들은 계열사 단위의 지나친 사업이기주의를 배제시키고 경쟁과 협력을 통해 전체조직의 에너지를 최대한 뽑아내는데 주력하고 있다. 미래 유망업종을 선점해 기업을 영속시키는 것도 이들의 몫이다.

성균관대 경영학과 차동욱 교수는 “기업지배구조가 점차 소유·경영 분리 가속화와 함께 전문경영인의 전성시대로 가고 있다”며 “전문지식과 도덕성으로 무장한 오너 2, 3세들을 어떻게 봐야할지 지금부터 본격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삼성경제연구소 최인철 박사는 “굴뚝경제에 e비즈니스가 접목되는등 빛의 속도로 변화하는 디지털 경제시대에는 신속한 의사결정과 과감한 변신이 기업의 사활을 좌우하게 된다”며 “제한적중앙집권을 필요로 하는 이같은 시대적 상황이 신오너체제를 초래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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