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법원이 현대자동차 사내하청은 불법파견이므로 정규직으로 봐야 한다는 확정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로 제조업 사내하청 노동자의 고용상 지위에 대한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행정부가 사내하청 문제에 대해 ‘갈지자’를 그리는 와중에 사법부가 "도급을 가장한 대기업의 사내하청 고용관행은 불법"이라고 쐐기를 박은 것이다.

대법원의 판결로 현대차뿐만 아니라 제조업 전반의 사내하청 사용에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자동차 생산시설 같은 제조업은 작업의 특성상 도급이 불가능하다는 게 대법원의 판단이다. <매일노동뉴스>가 현대차 불법파견 판결이 가진 의미와 파장을 네 차례에 걸쳐 살펴본다.

-----------------------------------------------------------------
[게재순서]
1. 제조업 불법파견, 8년 논쟁 마침표 찍다
2. 발등에 불 떨어진 현대차
3. 자동차업계 다음은 철강·조선·전자업계, 그리고?
4. 문제는 간접고용, 어떻게 규제할 것인가
-----------------------------------------

현대자동차에서 2년 이상 일한 사내하청 노동자는 정규직으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은 꺼져 가던 비정규직 투쟁에 기름을 부었다. 경영계는 겉으로 “대법원 판결은 개인에 대한 판결이며, 모든 사내하도급이 불법은 아니다”고 큰소리치지만, 각 기업별로는 불법파견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특히 자동차업계(69.4%)만큼이나 사내하청 비중이 높은 철강(79.7%)·조선(73.8%)·전자(72.5%) 업종은 불법파견 정규직화의 요구를 비껴 가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들 업종은 수년 전부터 불법파견 논란에서 벗어나기 위해 원·하청 공정분리를 꾸준히 시도해 왔다. 자동차업종의 초보적인 사내하도급 관리·운영 시스템보다 앞서 있다는 말이다. 실제로 철강·조선·전자업체들은 현대차와 달리 물량단위의 도급계약을 맺거나 하청에 대한 업무지시가 독립적으로 이뤄지고 있어 적법한 도급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대법원 판결은 제조업에서 하청업체가 생산시설이나 기술력 등을 갖추지 않은 채 사람만 투입하는 이른바 ‘인력도급’이 과연 가능하냐는 본질적인 의문을 제기한 것이어서 불법파견 혐의를 벗기가 쉽지 않다.

최근 늘어나는 ‘정규직 0명 공장’에 대한 노동계의 우려는 이런 현실에서 출발한다. 금속노조는 “기업들은 기아차 모닝 생산공장(동희오토)처럼 원·하청 공정분리를 넘어 아예 모든 생산직 노동자들을 사내하도급으로 채우는 방식으로 전환하고 있다”며 “더 늦기 전에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우려했다. 대법원 판결 이후 철강·조선·전자 업종의 사내하청의 움직임을 <매일노동뉴스>가 살펴봤다.

◇법원 판단 기다리는 철강업종=광주지법 순천지원 제2민사부는 오는 26일 오후 전남 광양시 금호동 광양제철소에서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작업공정을 점검한다. 이번 현장점검은 양동운 지회장 등 16명이 지난해 5월 포스코를 상대로 제기한 '근로자지위확인 및 임금차액 지급 청구소송'에 따른 것이다. 양 지회장 등 16명은 "87년부터 광양제철소 원청 관리자의 직접 지휘·감독을 받아 일했기 때문에 포스코의 정규직으로 봐야 한다"며 소송을 냈다. 이웃 순천에 위치한 현대하이스코 하청노동자 110명도 지난해 7월 서울지법에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이 사건은 현재 순천지원에 계류 중이다.

포스코 광양제철소와 현대하이스코 순천공장의 사례는 원청노동자보다 하청노동자가 많다는 점에서 닮았다. 노동부의 ‘2010년 300인 이상 사업장 사내하도급 현황’에 따르면 포스코 광양제철소는 원청 정규직이 6천106명인데, 사내하청 노동자는 7천262명으로 118.9%에 달한다. 원청 정규직이 393명인 현대하이스코는 하청노동자가 500명으로 127.2%나 된다.

메인 공정을 제외한 나머지 기계정비·포장·검사·물류 등 업무 전반을 도맡아 하는 현대하이스코 하청노동자들과 열연공장 크레인 운전업무를 하는 포스코 하청노동자들은 “모든 업무가 원청의 직·간접적인 작업지시에 의해 이뤄지고, 하청노동자가 빠지면 공정이 정상적으로 돌아갈 수 없다”며 불법파견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사용자측은 “하청업체는 경영상 독립성이 확보돼 있고 하청노동자에 대한 노무지휘권도 하청업체가 직접 행사한다”고 맞서고 있다. 노동부는 2010년 사내하도급 점검 결과 이들 철강업체들에 대해 "압연·제강 등 핵심업무는 원청이 직접 수행하고, 하청은 포장·기계정비 등 지원업무를 하고 있다"며 적법도급이라고 판단했다. 가장 먼저 나올 것으로 보이는 포스코 광양제철소에 대한 법원의 판단은 자동차가 아닌 제조업에서 파견과 도급을 구분 짓는 척도가 될 가능성이 높다.

◇대법원 판결 '있으나 마나 한' 조선업종=조선소 하청노동자들은 대법원의 불법파견 판결에도 담담한 표정이다. 조선업의 경우 하청노동자수가 원청 정규직을 추월한 지 꽤 오래됐다. 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2008년 이후 2년간 조선업 하청노동자 비중은 원청 정규직 대비 123%에서 158.7%로 35.7%포인트 급증했다.

대법원은 현대차 사내하청 최병승씨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되돌려 보내기 넉 달 전인 2010년 3월 "현대중공업은 사내하청 노동자의 사용자"라고 판결했다. 원청인 현대중공업이 노조가 설립된 하청업체를 폐업이라는 방식으로 사업장에서 배제(해고)한 것을 "노조활동에 대한 지배행위"로 판단한 것이다. 재판부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원청의 사용자성을 인정하고 부당노동행위를 시정하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현대중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사용자’를 대상으로 변변한 교섭 요구 한 번 하지 못한 채 판결 2년이 지나도록 해고자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소송 당사자였던 현대중 사내하청 해고자 이승렬씨는 “대법원 판례대로라면 현대중공업을 상대로 한 교섭도 가능했지만 결국 포기했다”며 “교섭을 하려면 조합원을 공개해야 하는데 100% 해고로 이어지기 때문에 부담이 컸다”고 털어났다. 금속노조 조합원이 소속된 하청업체를 모두 폐업시켜 논란이 됐던 현대중은 노조원이 다른 하청업체에 취직하지 못하도록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관리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한 발 더 나아가 아예 원청 정규직 없이 사내하청 노동자만으로 선박을 건조하는 조선소도 늘고 있다. 이는 노동부가 운영하는 ‘사내하도급 근로조건 개선 서포터즈’가 지난해 말 제출한 조선산업 사내하도급 실태조사 연구자료에서도 확인된다. 대기업 조선소 4곳과 중소기업 조선소 3곳 등 7곳을 실태조사한 박희준 서울대 교수(경영학)는 “최근 설립한 조선소일수록 사내하도급 활용 비중이 높았는데 어떤 곳은 95~100%가 사내하청 노동자로 파악됐다”며 “고용유연성과 인건비 절감은 조선업체의 경쟁력 확보에 중요한 요인이므로 제도적인 개입이 없다면 사내하도급 고용관행은 더 확산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금속노조는 현대중공업 군산조선소와 STX중공업에 대해 "정규직은 관리업무만 맡고 있고, 모든 생산업무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하는 ‘정규직 0명 공장’"이라고 비판했다.

◇'소리 없이' 정규직 사라지는 전자업종=기술개발의 속도가 빠르고 제품의 수명이 짧아 경기변동의 영향을 많이 받는 전자산업은 위기비용을 전가하고 생산의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해 외주화 전략을 쓴다. 금속노조는 “전자부품 업체들은 사내하도급이라는 간접고용이 갖고 있는 맹점을 악용해 ‘정규직 0명 공장’으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표적인 곳이 시그네틱스다. 시그네틱스는 재계 순위 42위의 영풍그룹 계열 반도체 후가공업체다. 당기순이익이 전년 대비 10% 이상 상승한 지난해 7월 시그네틱스는 안산공장 노동자 28명을 정리해고했다. 윤민례 금속노조 시그네틱스분회장은 “2009년 퓨렉스라는 하청업체가 생기면서 안산공장 생산물량의 상당부분을 옮겨 갔고 이어 2010년 유엔씨라는 또 다른 하청업체가 설립하면서 시그네틱스가 정리해고 수순을 밟았다”고 밝혔다.

시그네틱스 간판이 사라진 안산공장에서는 지금도 내비게이션이나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시그네틱스의 반도체패키지를 생산하고 있다. 차이가 있다면 시그네틱스가 고용한 정규직 대신 두 개의 하도급업체 소속 노동자들이 그 일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윤 분회장은 “정규직 0명 공장은 영풍그룹의 인력운용 방침”이라며 “시그네틱스를 비롯한 영풍그룹의 5개 IT계열사에는 6천여명에 달하는 생산직이 근무하고 있지만 대부분이 하도급(소사장)업체 소속 노동자”라고 설명했다.

공계진 금속노조 노동연구원장은 “시그네틱스 하도급업체들은 서류상 직업안전법상 기준을 명확히 지키고 있어 불법으로 규정하기 매우 어려운 조건”이라며 “적법한 형태로 위장하는 불법파견을 없애기 위해서는 사내하도급 사용을 허용업종에만 제한하도록 제도를 바꿀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상자] 이제는 ‘사업 내 도급’ 시대

사내하도급은 사실 법률용어가 아니다. 하청의 업무가 원청 사업장 내에서 진행된 경우를 총칭하는 이를테면 '하도급의 장소적 구분'일 뿐이다. 은수미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동희오토 사례나 방송국의 독립제작사와 원청고의 관계처럼 사내도급이냐, 사외도급이냐 구분조차 어려운 고용형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며 “사내하청·용역·위탁 등 다양한 용어로 나타나는 ‘사업 내 도급(간접고용)'에 대한 규제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은 연구위원에 따르면 사내하도급의 경우 대법원 현대자동차 불법파견 판결에서 나타난 도급과 파견의 구분기준을 적용해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등 노동 관련 법률을 정비해 규율할 수 있다. 그러나 규제의 범위를 ‘사업 내 도급’까지 확대하려면 원·하청 간의 불공정거래를 규율하는 기업집단법을 제정하거나 공정거래법 등을 손봐야 한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