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전 쌍용자동차의 대주주 마힌드라의 한국사무소가 위치한 서울 역삼동 거리에 밥 짓는 냄새가 진동했다. 평택에서 희망텐트를 치고 지내는 이들이 점심 먹거리를 짊어지고 온 것이다. 하지만 뜨끈한 국물을 위해 가스불을 지피고 있는 이들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이날 열린 희망시국회의 ‘STOP 21’ 참석자들이 예상보다 적었던 탓이다. 쌍용차 해고자들은 "제주 강정마을이 위급한 상황이니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며 애써 실망감을 감췄다.

지난해 한국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아이콘은 85호 크레인 위의 ‘김진숙’이었다. 구조조정으로 졸지에 ‘죽은 자’가 되더니 하루가 멀다 하고 이 세상에서 사라져 가는 쌍용차 노동자와 가족들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희망버스를 탔다.

이를 두고 지식인들은 "시민들이 노동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자각하고 자발적으로 노동자와 연대한 놀라운 사건"이라고 분석했다. 과연 그럴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정리해고는 이미 한국사회에서 별다를 것 없는 일상이 돼 버렸고, 우리 모두의 일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시민들은 "노동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자각하는" 게 아니라 이미 자신들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정리해고와 구조조정으로 일자리에서 쫓겨난 이들이 10만명을 넘어섰다. 고용정보원이 지난해 고용보험 피보험자격을 상실한 사람을 분석한 결과 10명 중 4명꼴인 213만5천명이 비자발적으로 실직했다. 이 가운데 질병이나 부상·노령으로 일을 그만둔 사람은 8만6천명으로 전년 대비 1.5% 줄어든 반면 회사의 폐업과 도산 등으로 하루아침에 거리로 쫓겨난 이들은 21만6천명으로 2010년보다 4%나 늘었다.

경영상 필요에 의한 퇴직(정리해고)은 10만2천명이었다. 정리해고는 세계 금융위기 터널을 힘겹게 지나던 2009년 전년 대비 10.6% 줄었다가 2010년에 6.7%로 오른 뒤 지난해에는 무려 30%가 급증했다. 지난해의 경우 정리해고자가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10만명을 넘어선 해로 기록됐다. 이 밖에도 회사사정으로 인한 퇴직자가 72만8천명에 달하는 등 100만명 넘는 노동자가 구조조정으로 일자리를 잃었다.

정리해고는 사회안전망이 부실하기 짝이 없는 한국의 노동자에게는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느슨하기 짝이 없는 근로기준법상 정리해고 요건을 엄격하게 바꿔야 한다. 봄날을 기다리는 쌍용차 노동자들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그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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