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석확인도 깜찍, 발랄하게. 친구들이 가리키면 하윤이는 손을 번쩍 들어 인사한다. 정기훈 기자 photo@
최근 민간어린이집 집단 휴원에 대한 우려로 한동안 사회가 떠들썩했다. 주된 요구는 보육료 현실화와 규제완화였다. 그러나 실제 보육교사의 처우는 개선된 게 없다. 지난 10년간 보육예산은 10배 이상 늘었지만, 보육교사의 처우는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다. 반면 그간 언론에 보도된 보육교사는 부모들에게 '불신'의 대상이었다. 그럼에도 보육교사의 노동과정에 대해서는 알려진 게 거의 없다. 그들은 지금 어디에 서 있는 것일까.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2일 인천시 남동구청이 설립해 '좋은 어린이집을 만들기 위한 인천시민협동조합'이 위탁·운영하는 ‘공립 푸른숲 어린이집’을 찾아 이다연(28) 보육교사의 일과를 함께했다.

“신체적·정서적·사회적 돌봄”

▲ 콧물을 닦아줬다. 책 보던 효린이는 저 나오는 줄 어찌 알고 포즈를 취했다.
“쿵쾅! 쿵쾅!”오전 9시, 푸른숲 어린이집 3층. 이다연 교사가 몇몇 아이들에게 간식을 먹이고 있고 다른 한 쪽에서는 한 무리의 아이들이 뜀박질을 하고 있었다. 그는 주머니가 큰 앞치마를 둘렀는데, 작업복이라고 했다. 비상약과 휴지, 아이에 관한 사항을 적는 수첩 등이 담겨 있다.
 

"안녕하세요. 우리 진안이 아침에 밥 먹고 왔어요?"

이 교사가 등원하는 아이들을 일일이 웃음으로 맞는다. 부모가 직접 아이와 함께 교실에 들어와 교사에게 안부를 전하고 헤어진다. 모두 만 3세 아이들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만 3세의 경우 교사 대 아동의 비율이 1대 15다. 예외규정이 있어 2명까지 더 늘릴 수 있다. 민간어린이집은 이를 초과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날 등원이 예정된 아이들은 12명이었다. 3·1절 다음날이라 부모와 함께 연이어 쉬는 아이들이 더러 있었다. 이 교사는 부모들과 '날적이'(날마다 적는 공동육아일기)를 교환하며, 아이들의 몸 상태를 확인했다. 날적이는 이 교사와 부모가 함께 작성한다.

마지막으로 원빈이가 등원했다. 12번째 아이다. "으앙~ 으앙~" 전날 가족과 함께 보낸 원빈이는 엄마와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어린이집은 아침마다 부모와 헤어지지 않으려는 아이들과 전쟁을 치러야 한다. 이 교사 혼자 감당이 안 되자 옆 교실에서 교재 연구를 하고 있던 김효미(33) 교사가 긴급 투입돼 원빈이를 달랬다.

"선생님, 호랑이를 그렸어요." "선생님, 저 어제 토했어요." "선생님, 제가 성을 만들었어요." 아이들은 어린이집 곳곳에서 이 교사를 찾았다. 실내화를 얼굴에 문지르는 아이, 장난감을 쏟는 아이, 그림책을 보는 아이…. 노는 방법도 천차만별이다. 시장통이 따로 없다.

이 교사는 교실 한가운데 앉아 달려드는 아이들을 안아 주며, 여기저기서 쏟아지는 아이들의 질문에 또박또박 답했다. 환절기이다 보니 감기에 걸린 아이들이 적지 않았다. 한 아이가 콧물을 흘리자 이 교사가 코를 닦아 주고 손을 씻겨 줬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손을 씻어야 한다. 아이들에게 균이 전염되는 것을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방광염·위장염·근골격계질환 … 골병드는 보육노동자

▲ 점심시간, 식사 준비에 바쁘다. 미역국에 달걀말이, 묵과 김치가 반찬이다. 아이들은 가리지 않고 잘 먹었다.
집단활동 수업이 시작되자 이 교사의 변신이 시작됐다. 동화구연을 시작한 이씨는 엄마가 됐다가, 떼쓰는 아이가 돼 울다가, 강아지로 변신을 거듭했다. 아이들이 까르르 웃는다.

하지만 이 교사는 말 못할 고민이 많다. 우선 성대결절을 앓고 있다. 말을 많이 해 생긴 직업병이다. 목을 위해 물을 많이 마셔야 하는데, 화장실을 제때 가지 못하기 때문에 그럴 수도 없다.

“보육교사가 되면 방광염과 기관지 질환을 통과의례처럼 겪어요. 아이들을 안아 주다 보니 디스크 등 근골격계 질환도 앓게 되고요.”

동화구연이 끝난 뒤 아이들과 산책을 했다. 곧 점심시간이 됐다. 이 교사의 노동강도가 두 배로 높아지는 시간이다. 그는 조리사가 만들어 준 음식을 아이들 식판에 담아 나눠 줬다. 그런데 이 교사가 식사하는 데 걸린 시간은 정확히 7분이었다. 나머지 시간은 편식하는 아이들의 식습관을 잡아 주고, 수저 등 도구가 서툰 아이에게 밥을 먹이고, 반찬 이름을 묻는 아이들의 질문에 답하느라 정신 없이 보냈다. 위장염을 달고 사는 이유다.

신입 보육교사가 가장 어려움을 겪는 시간이 바로 점심시간이다. 밥을 먹는 동안 배변을 하거나 토를 하는 아이들이 적지 않다. 김효미 교사는 "신입 교사들은 처음에 적응을 못해 밥을 못 먹는 경우가 많다"며 "시간이 지나면 몸이 지쳐 살기 위해서라도 밥을 먹을 수밖에 없게 된다"고 전했다.

최근 보육시설에서 안전 문제가 불거지면서 CCTV 설치가 보편화되고 있지만 한편에서는 보육교사를 감시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푸른숲 어린이집에는 옥상 등 아이들이 혼자 가서는 안되는 위험한 곳에만 CCTV가 설치돼 있다. 김혜은(44) 푸른숲 어린이집 원장은 "CCTV는 교사는 물론 아이들의 인권도 침해할 수 있다"며 "안전한 보육이 되려면 부모와 교사가 서로 믿는 공동체적 관계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상과 현실이 너무 달라요”

▲ 약 챙겨먹이는 것도 선생님 몫.
아이들 낮잠시간이 돌아왔다. 그래도 쉴 틈이 없다. 아이들의 칫솔과 컵을 소독하고, 날적이를 작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유아교육과를 졸업한 후 유치원 교사를 하다 지난해 10월 어린이집에 입사한 이 교사는 "처음엔 상상했던 보육교사에 대한 이상과 현실이 너무 달라 그만두려고 했었다"고 토로했다. 그때마다 아이들이 눈에 밟혔다고 했다.

이 교사는 "아이들의 첫 사회경험을 함께 나누고 소통하는 보육교사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해 진다"며 "값진 직업인만큼 후배들에게 더 나은 노동환경을 물려주기 위해 처우개선 방안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오후 3시가 지나면 간식을 먹은 뒤 귀가준비를 한다. 그리고 오후 5시30분이 되면 남은 아이들이 함께하는 통합보육을 한다. 통합보육은 시간연장보육을 담당하는 선생님이 아이들을 지도한다. 이 교사는 그 사이 교실을 청소하고, 서류를 정리하는 등 밀린 업무를 처리한다.

"긴장되네요."

이날 첫 출근한 시간연장보육교사 박아무개(46)씨의 첫 소감이다. 박씨는 민간 어린이집에서 5년을 근무한 베테랑 교사다. 다른 연령대가 섞인 통합교실은 더 정신이 없다. 교실 한가득 장난감이 쏟아지고, 눈 깜짝할 사이 장난감 하나가 깨졌다. 한 아이는 친구들과 박치기를 하는 바람에 이마에 혹이 생겼다.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보육정책"

민간시설을 이용하다 올해 1월부터 이곳에 아이를 보내기 시작한 학부형 이아무개(31)씨는 "최근 어린이집 파동으로 주변 직장맘들이 휴가를 내는 등 부모들이 피해를 봤다"며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민간보다 국공립 어린이집을 늘려 마음 놓고 아이를 기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정부가 보육의 질을 높이는 교사 처우는 무시한 채 민간시설 원장 배만 불리는 정책을 쓰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우리나라 국공립 어린이집은 5.3%에 불과하다. 민간에 의해 정책이 끌려 다닐 수밖에 없는 구조다. 외국의 경우 국공립 보육시설 비중은 일본이 58.5%, 독일이 40%, 스웨덴이 75%에 이른다. 세금이 시장의 배를 불리는 데 잘못 사용되고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저녁 7시. 어느새 이 교사의 목이 잠겼다. 화장도 땀으로 범벅이 돼 지워졌다. 눈에는 핏발이 섰고, 다크서클은 코끝까지 내려올 태세다. 오전 8시30분부터 일을 시작한 이 교사는 이날 1분도 쉬지 못했다. 화장실도 한 번만 다녀왔다.

매일 전쟁같은 하루를 보내는 이 교사의 임금은 얼마나 될까. 그는 복지부가 정한 4년차 호봉에 따라 140만원 정도의 임금을 받는다. 10년차가 돼도 교사의 임금이 180만원가량에 불과하다. 2009년 복지부가 조사한 결과 하루 평균 근무시간은 9.5시간, 평균 임금은 126만원이었다. 전체 취업자의 월평균 급여 대비 62%밖에 되지 않는 액수다.

복지부가 올해 처우개선비 등 수당을 올렸지만, 해당 지자체에 따라 지급수준이 하늘과 땅이다. 원장 재량에 따라 임금이 결정되는 민간시설의 상황은 말할 것도 없다. 초과수당은 언감생심이고, 토요일에도 돌아가며 출근한다. 생리휴가와 연차를 제대로 쓰기도 힘들다. 그러다 보니 이직률이 높다. 박 교사는 "민간시설의 경우 2년 안팎이면 다른 곳을 찾아 떠난다"며 "높은 이직률은 결국 보육의 질 저하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김혜은 원장은 “최소한 국공립 어린이집 비중을 전체의 30%까지는 끌어올릴 수 있도록 장기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준비가 덜 된 잘못된 무상보육 확대는 오히려 보육의 공공성 확보를 더디게 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아이들이 잠 든 사이, 아이들 날적이를 기록하느라 바쁘다. 쉴 틈이 없다.


[상자기사] "보육교사 '8253' 실현해 보육의 질 높이자”

지난달 어린이집 집단휴원 사태는 한국어린이집총연합회 민간분과위원회가 보건복지부와 지난달 28일 협의체를 구성해 규제완화를 논의하기로 합의한 뒤 마무리됐다. 그러나 연합회가 집단행동에 나서면서 내세운 보육교사 처우개선은 타 부처와 협의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논의하지 않기로 했다.

보육교사들이 반발하는 이유다. 인천 공립 푸른숲 어린이집에서 시간연장보육교사로 일하는 박아무개 교사는 "일부에서는 보육교사들이 처우개선을 위해 파업을 한 것처럼 오도돼 이용만 당한 것 같아 불쾌했다"며 "보육교사들도 올바른 보육을 위해 스스로 목소리를 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보육진흥원에 따르면 지난해 보육교사 자격취득자 중 현직 종사자는 29.3%밖에 되지 않는다. 현장에서는 구인난에 시달리고, 보육교사들은 적은 인력으로 열악한 노동에 시달리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보육협의회(의장 심선혜)는 보육의 질을 높이고 보육교사 처우개선을 위해 '8253'운동을 벌이고 있다. 하루 8시간 노동을 보장하기 위해 2교대제(오전-오후)를 실시하고, 이를 통해 5시간 보육과 3시간 수업연구 및 기타업무처리 시간을 보장하자는 것이다. 보육의 질을 높이고,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자는 제안이다.

심선혜 의장은 "복지부가 보육 시장화정책을 바꾸지 않는 한 휴업사태가 재현될 것”이라며 “지금이라도 보육의 질을 높이기 위해 보육의 공공성을 강화하고 보육교사들의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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