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윤식 변호사
(법률사무소 로정)

대상 판결 / 서울서부지방법원 2011나10420 임금

들어가는 말
노동 친화적인 정부가 들어서면 공공기관 노동자들은 일반 사기업 노동자들처럼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3권을 누린다. 하지만 노동 적대적인 정부가 들어서면 공공기관 노동자들은 노동3권 향유는커녕 탄압의 대상이 된다. 심지어는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곤 하는 게 아직까지의 우리나라 현실이다. 이명박 정부도 그러한 흐름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또한 공공기관 노동자들이 각고의 노력 끝에 체결한 단체협약의 효력을 제한하는 법령이 있는 경우도 그렇다. 공무원인 근로자와 주요 방위산업체에 종사하는 근로자의 노동3권을 일정 부분 제한하는 것으로 헌법 스스로 정한 것과는 달리, 일반 근로자처럼 노동3권 향유에 있어 별다른 헌법상 제약이 없는데도 공공기관 노동자들은 단체교섭권과 그에서 파생된 단체협약체결권의 행사에 있어 중대한 제약을 받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이와 관련해, 며칠 전 공공기관 노사 간에 체결된 단체협약의 효력과 관련해 아주 의미있는 판결 선고가 있었다. 서울서부지방법원 판결(2012. 2. 10. 선고 2011나10420)이 바로 그것이다. 이 사건을 담당한 재판부는 공공기관 노동자들의 노동3권, 특히 단체교섭권 내지 단체협약체결권을 괄목하게 신장시키는 판결을 선고한 것이다.

본 사안의 개요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이 적용돼 공공기관인 한국산업인력공단의 정관 제35조 제1항은 “직제·인사·복무·회계·재산 및 물품관리에 관한 규정의 제정 및 개정에 관한 사항은 이사회의 의결을 거쳐 고용노동부 장관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공단의 노사는 2008년 11월28일 3급 상당 이하 직원의 정년을 공무원 정년 연장에 따른 경과조치에 준해 2009년부터 2010년은 58세, 2011년부터 2012년은 59세, 2013년 이후에는 60세로 각각 연장하는 단체협약(이하 ‘정년 연장 단협’이라 함)을 체결했다. 그 후 공단은 2009년 5월18일 단체협약 체결에 따른 이행을 위한 인사규정 개정안을 공단 이사회에 상정했으나 그 안이 부결됐다. 이에 공단은 5급인 갑에 대해 종전 정년규정인 57세에 따라 2009년 6월30일자로 퇴사처분을 했다. 갑은 그 퇴사처분이 부당해고임을 전제로 정년 연장 단협에 따라 늘어난 1년 동안 근무했을 경우 정당하게 받을 수 있는 임금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 사안에서 우리가 주목할 점이 있다. 공단을 규율하는 법률로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이외에도 공단의 설립 및 활동의 직접적 근거가 되는 법령으로 한국산업인력공단법과 그 시행령 등이 있다. 그런데 그 시행령 제15조는 다음과 같이 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제15조는 2008년 1월22일 대통령령 20560호로 삭제되기에 이르렀다.

제15조(내부규정의 승인)
공단은 다음 사항에 관한 내부규정을 제정하거나 개정하고자 할 때에는 노동부장관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1. 공단의 조직 및 정원에 관한 사항
2. 임직원의 보수 및 복무에 관한 사항
3. 회계·재산 및 물품관리에 관한 사항

공공기관 단체협약 효력에 대한 억압의 법리
우리 대법원은 당해 공공기관을 규율하는 법률이나 그 시행령 또는 시행규칙에 위 제15조와 같이 조직·정원 등에 관한 내부규정을 제정하거나 개폐하는 경우 주무부장관의 승인을 얻도록 한 조항이 있음에도 그 승인이 없는 경우에는 그 조항을 근거로 단체협약의 효력이 없는 것으로 일관되게 판시한 바 있다.(대법원 2002. 2. 10. 선고 2002다36136 판결, 대법원 2002. 1. 25. 선고 2001다60170 판결, 대법원 2002. 11. 13. 선고 2002다24935 판결, 대법원 2003. 4. 11. 선고 2002다69563 판결)
그리고 헌법재판소 2004. 8. 26. 선고 2003헌바28 결정, 헌법재판소 2004. 8. 26. 선고 2003헌바58 결정 및 헌법재판소 2005. 6. 30. 선고 2003헌바74 결정도 위와 같이 단체협약 효력 제한의 근거가 되는 그 근거 법령이 헌법에 반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다만 그 근거규정은 헌법 제33조 노동3권을 침해하는 위헌이라는 소수의견이 있었다.

위 대법원 판례의 문제점
그러나 “제9조의 규정에 따라 체결된 단체협약의 내용 중 법령·조례 또는 예산에 의하여 규정되는 내용과 법령 또는 조례에 의한 위임을 받아 규정되는 내용은 단체협약으로서의 효력을 가지지 아니한다”고 규정한 공무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 제10조와 위 제15조를 대비해 보면, 위와 같은 대법원 해석의 부당함은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즉 전자는 단체협약으로서 효력을 가지지 않는다고 입법자가 명확하게 선언하고 있지만, 위 제15조는 아무리 봐도 그와 같은 문언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조항을 근거로 단체협약의 효력을 부인하고 있는 것이다.

대법원이 이와 같이 무리한 해석을 하는 배경에는 ‘공공기관은 국민의 예산으로 운영되는데, 국민의 예산은 함부로 사용돼서는 안 된다’는 사고가 있다. 즉, 단체협약의 효력보다 주무부장관의 승인을 우위에 둠으로써 공공기관에서의 예산을 통제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와 같은 점이 단체협약 효력 제한에 대한 나름의 합리적 근거가 된다고 하더라도, 최소한 필자는 헌법을 정점으로 하는 규범체계에서 합헌적 해석이 되기 위해서는 위 공무원노조법 제10조와 같은 입법적 결단이 필요하다고 본다.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는 그 점도 위헌적 해석을 합리화할 수는 없다고 본다.

위 헌법재판소 결정의 소수의견의 음미
이 지점에서 위 헌법재판소 결정의 소수의견을 음미해보자.
“이 사건 법률조항은 공단의 인사·보수 등에 관한 사항은 건설교통부장관의 승인을 얻도록 하고 있는데, 법원은 이 조항을 근거로 공단과 노동조합 사이에 체결된 단체협약상의 인사 및 보수에 관한 사항도 건설교통부장관의 승인을 얻어야만 종국적으로 효력을 갖는 것으로 해석하여 노동조합의 단체교섭권에 제한을 가하고 있다. (중략) 노사 간의 자율적인 단체교섭을 통하여 체결된 인사 및 보수 등에 관한 단체협약 조항의 효력 유무를 전적으로 건설교통부장관의 승인 여부에 맡기는 것은 다음에서 보는 바와 같이 과잉금지원칙에 위배하여 단체교섭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것으로 헌법에 위반된다고 볼 것이다. (중략) 정부의 인사권, 각종 관리·감독권을 감안할 때 개별 기관에서 이러한 정부지침을 이행치 않기란 사실상 거의 불가능한 실정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막강한 규제권한을 갖는 정부에게 노사 간에 자율적으로 체결된 단체협약상 주요 근로조건에 관한 조항의 효력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권한까지 부여하는 것은 그 보호하려는 공익에 비해 근로자들의 단체교섭권을 필요 이상으로 지나치게 제한한 것이라고 할 것이다.”
하지만 위 주옥같은 헌법해석도 헌법재판소의 소수의견으로 머물러 있을 뿐이다. 위 제15조와 같은 법령이 있는 경우에는 헌법상 노동3권이 발현된 단체협약도 한낱 휴지조각에 불과한 것이다.

본 판결의 의미
이러한 와중에 선고된 본 판결은 위와 같은 위헌적이고 노동억압적인 법리에 파열구를 내는 신호탄이라고 본다. 즉, 본 판결은 위 제15조가 삭제된 상황에서 정년 연장 조항을 직접적으로 제한하는 법령은 없고, 직제·인사 등 내부규정의 개정시 노동부장관의 승인을 얻도록 하는 정관 조항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정관으로는 그 단체협약의 효력을 제한할 수 없다고 명확히 선언한 것이다. 그렇게 보는 것이 헌법적 원칙인 법률유보의 원칙에 부합하고, 만일 그렇지 않게 보는 경우 “노사 당사자의 자율적인 협약 체결과 그 효력을 일방 당사자인 사용자나 노사 당사자가 아닌 제3자의 행위에 복속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여 노동조합의 단체교섭권을 형해화하는 결과”를 가져 온다고 판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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