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노무사
(노무법인 인재경영컨설팅)

대상판결/ 대전지방법원 2011구합183

노사관계는 ‘노사가 규칙(rule)을 만드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러한 규칙의 형성은 법제도의 영향을 받는다. 즉 법제도를 근간으로 노사 간 관행이나 힘의 균형, 질서, 교섭 결과 등이 단체협약 등을 통해 구체화된다.

2010년 시행된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 허용과 타임오프 제도는 우리나라 노사관계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개별 기업의 노사관계에서 새로운 규칙을 형성하기 위해 수많은 시행착오가 불가피하게 발생하기도 했다.

게다가 노사관계의 근본적인 지형을 흔드는 법률을 개정하는 일인데도 시간에 쫓겨 졸속으로 입법이 진행되면서 법률의 내용이 모호하거나, 일부 조문이 상호충돌하거나, 시행시기가 명확하지 않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더욱이 졸속입법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그나마 보완할 수 있는 기회도 잃었다. 노동행정은 졸속입법을 보완해 제도를 연착륙시키기보다는 과도하게 규제하고, 특정한 방향성만을 고집하면서 또 다른 갈등과 현장 노사관계 불안요소를 만들고 말았다.

이번에 다룰 판례는 비록 하급심이지만 이러한 졸속입법과 불통행정이 만들어낸 여러 문제들 중 가장 민감하고 쟁점이 된 사안에 대한 사법적 판단으로 의미가 있다. 또한 형식적으로는 노동관계법령에 위반한 단체협약에 관한 시정명령 취소 여부지만 내용적으로는 개정 노조법의 시행시기와 개정 내용 중 쟁점사항의 강행규정 여부에 관한 것이다. 과잉노동행정이 현장 노사관계를 어지럽히고 노사자치주의를 어떻게 뒤흔들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것이다.

개정 노조법 시행시기와 타임오프 적용대상 판단

행정기관은 노동위원회의 의결을 통해 위법한 단체협약에 대해 시정을 명할 수 있다. 이번 판례에서 논점이 된 시정명령은 단체협약의 다양한 내용을 대상으로 내려졌다. 유일교섭단체, 해고자 조합원 자격, 전임자 처우, 비전임자 처우, 시설편의 제공, 단체협약 해지권 제한, 산모 휴가, 육아휴직 등 8가지에 이른다.
이중에서 육아휴직이나 산모 휴가 조항과 같이 전부 또는 일부가 관련 법률을 위반한 것으로 다툼의 여지가 없는 것도 있고, 유일교섭단체 조항처럼 개정 노조법의 복수노조 허용이나 교섭대표노조 지위와 관련해 위법한 것도 있다. 그러나 해고자 조합원 자격에 관한 부분은 기업별 노조와 달리 산별 노조에서는 폭넓게 인정한 부분과 시설편의 제공을 노조의 자주성을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면 부당노동행위로 볼 수 없다는 등 상식적인 결론을 보여주는 것도 있다.

물론 단체협약 해지권 제한의 경우 해지 가능성을 원칙적으로 배제해 어떤 예외도 인정하지 않고 단체협약 체결권을 박탈하는 내용이므로 위법하다는 부분은 아쉬움이 남기도 한 결론이다.

남은 쟁점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은 전임자 처우 조항에 대한 것으로, 이는 개정 노조법 부칙의 시행시기와 관련된 것이다. 그동안 노동부는 법 시행일을 2010년 1월1일로 일관되게 주장하며, 2010년 1월1일부터 2010년 6월30일 사이에 체결된 단체협약에서 전임자 처우와 관련된 조항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 사이에 체결된 단체협약 중 타임오프 한도를 위반한 경우 이는 법을 위반한 단체협약으로 시정명령의 대상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법원은 전임자 관련 규정을 시행되지 않은 신설조항 및 개정조항의 ‘시행 및 적용’과 이미 시행됐으나 적용이 유예된 ‘적용’으로 구분 해석해 “이 법 시행일 당시 유효한 단체협약이란 2010년 7월1일 당시 유효한 단체협약을 의미한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보고 있다. 조금 복잡하지만 2010년 7월1일 이전에는 전임자임금 지급금지가 유예되고 타임오프가 시행되지 않은 상태이므로 이 때 체결된 단체협약에서 전임자에 대해 임금지급을 규정한다고 하더라도 전임자임금 지급금지 및 근로시간 면제한도, 부당노동행위를 규정한 노조법 위반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법률의 효력이 발생해 있는 상태에서 그 법률에 반하는 행위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를 적용하지 않는다면 ‘법률 위반’이라고 볼 여지는 없다”는 것으로, 법률 위반이 되기 위해서는 시행되고 적용돼야 하는데 시행은 됐지만 적용되지 않은 2010년 1월1일부터 2010년 6월30일까지 체결된 단체협약은 체결 당시 그 단체협약에서 정한 유효기간까지 효력이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비전임자 처우 조항은 타임오프 한도 적용 대상이 전임자에 대한 것으로 단체협약으로 인정된 비전임자에 대한 유급 노조활동의 정당성을 인정하고 있다. 즉 타임오프 적용대상은 전임자로 한정해 봐야 한다는 것을 다시 확인하고 있다. 따라서 이 부분도 위법한 단체협약 내용이라고 볼 수 없는 것이다.

선(先)행정주의가 만들어낸 현장 노사관계의 현실

이미 언급한 대로 노사관계는 규칙을 만드는 과정이다. 따라서 노사자치주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러한 노사자치주의를 제대로 지원하고 보호하기 위해서는 법의 안정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실 법은 그런 점에서 현실을 선도하기 보다는 현실을 뒤따르면서 보완하는 보수적인 역할을 한다.

그런데 복수노조와 타임오프 제도가 들어서면서 이러한 보수적인 법의 역할은 완전히 바뀌게 된다. 법대로 현장 노사관계를 이끌겠다는 이른바 선(先)행정주의가 노사자치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현장 노사관계를 엉망으로 만들고 만 것이다.

물론 정책은 일정한 방향성을 유지해야 효율적일 수 있지만, 효율적인 정책이 반드시 효과적인 것은 아니다. 이번 판결이 비록 하급심이지만 노사자치주의는 사라지고 선(先)행정주의만 남은 우리시대의 노사관계를 다시금 제자리로 돌려놓는 노둣돌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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