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쌍용차 희망텐트촌에 세워진 '희망나무' 사진=정기훈 기자

한진중공업의 ‘소금꽃나무’가 쌍용자동차 공장 앞에 심어졌다. 한진중공업 해고노동자들을 비췄던 희망의 불씨가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의 얼어붙은 몸을 녹였다.

지난 11일 저녁 경기도 평택시 칠괴동 쌍용자동차 공장 앞에서 ‘제3차 쌍용자동차 공장 포위의 날’ 행사가 열렸다. 3천여명의 노동자와 시민들이 공장 진입로를 가득 메웠다.

진입로 중간에 소금꽃나무가 세워졌다. 나무에 달려 있던 ‘박’ 모양의 열매에 불빛이 들어왔다. 열매에는 전국의 투쟁사업장 노동자들의 소원이 적힌 ‘천’이 들어 있었다. 한진중공업 해고자들이 전국을 돌면서 받아 온 것들이다. 이어 100여개의 횃불이 공장 정문을 중심으로 담벼락을 따라 좌우로 흩어졌다. 정문 앞에 세워진 ‘희망’이라는 모양의 글씨 형상에 불이 붙었다. 활활 타올랐다.

평택에 입성한 '희망 뚜벅이'

이날 오후 12시40분께 평택역 오거리. 평택시청 방향에서 100여명이 구호를 소리치면서 역광장으로 들어왔다. 까맣게 그을린 얼굴들. 저마다 털모자에 두터운 옷을 입고 있었다.

지난달 31일 서울 혜화동 재능교육 본사를 출발해 288킬로미터의 대장정에 나섰던 ‘정리해고·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향한 희망 뚜벅이’ 참가자들이었다. 재능교육을 포함해 콜트콜텍·세종호텔·유성기업 등 비정규직과 해고자가 있는 사업장을 돌고 돌아 마지막으로 쌍용자동차 공장이 있는 평택에 입성한 것이다.

곧 민주노총 금속노조 조합원들이 모이면서 평택역 광장이 가득 찼다. 이달 15일은 지난 2009년 5월 쌍용자동차가 3천여명의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한 지 1천일째 되는 날이다.

평택시민 대표를 자처한 이명희(41)씨가 금속노조 결의대회 무대에 올랐다.

“대부분의 평택시민들은 3년 전의 일에 대해 더 이상 말하지 말자고 합니다. 어쩔수 없는 일 아니었냐고…. 그런데 내 남편도, 내 가족의 일도 아닌데 여러분들은 어떻게 한걸음에 달려오셨나요?” 이씨는 “감사드린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1천일 동안 20명이 죽었다”

오후 4시30분께 칠괴동 쌍용차공장으로 행진이 시작됐다. ‘우리가 희망이다. 공장으로 돌아가자’고 쓰여진 대형 현수막이 맨 앞에 섰다.

“평택시민 여러분. 저희들 기억하십니까. 민주노총 금속노조입니다. 저희들이 3년 만에 돌아왔습니다. 그동안 20명이 죽어 나갔지만 쌍용차는 복직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시민들은 놀란 표정으로 시위대를 쳐다봤다. 통복시장 앞에서 야채노점상을 하는 할머니가 물었다.

“쌍용자동차 사람들이야? 복직시켜 달라고? 복직도 되고 공장도 잘 돌아가야지. 쌍용차 그렇게 되면서 경기가 죽었어.”

한 택시기사는 “노조가 파업 할 때는 시민들이 호응을 많이 했지만, 지금은 먹고사느라 바빠서 잘 모른다”고 말했다. 그리곤 목소리를 높였다. “경기도 다 죽었고, 있는 놈들만 더 잘 살고 있잖아?”

오후 6시가 조금 넘어 공장 정문에 도착했다. 2009년 여름의 모습과 큰 차이가 없었다. 정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앞에는 경찰병력이 진을 쳤다. 정문 안쪽에서 용역경비와 경찰병력의 헬멧이 번쩍였다.

3년 전 공장 안과 밖에 있던 이들의 위치만 반대로 바뀌었을 뿐이다. 목숨을 걸고 공장을 지키려 했던 노동자들은, 이제 목숨 걸고 공장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처지가 됐다.

김정우 쌍용차지부장이 소리쳤다.

“우리는 1천일을 기다렸고, 20명이 죽었다. 우리 공장으로 들어가려는데 왜 막는 거냐.”

10분여를 경찰과 대치하던 행사 참가자들은 자리를 깔고 앉았다.

한 사람이 연단에 올랐다. 부산 영도구 한진중공업 89호 크레인에서 306일간 농성을 했던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었다. 언제나 그랬듯, 그의 음성은 듣는 이들의 눈물을 뺐다.

“1천500일 이상 투쟁한 재능교육 노동자들, 해고당한 KEC와 유성기업 노동자들, 우리가 희망을 버릴 수 없는 이유입니다.”

쌍용차를 언급하는 김 지도위원의 목은 메었다. 잠시 말을 멈췄다가 울부짖었다.

“복직시켜 주겠다던 약속을 기다리면서, 작업복을 다리던 20명이 죽었습니다. 그 아이들도 자살을 생각하고 있다는데, 책임지는 놈 하나 없습니다. 이런 나라는 꼭 바꿔야 합니다.”

소금꽃이 희망의 열매로

김 지도위원의 발언이 끝나자 참가자들의 시선이 대열 중간에 설치된 소금꽃나무 형상을 향했다. 나무 열매에 불이 켜졌다. 크리스마스트리처럼 소금꽃나무가 번쩍거렸다.

참가자들은 저마다의 소원을 적은 하얀 천 쪼가리를 소원줄(새끼줄) 사이사이에 끼워 넣었다. 소원줄은 다음날 아침 소금꽃나무에 치렁치렁 걸렸다.

참가자들이 횃불을 들고 공장 정문 앞으로 향했다. 솜에 기름을 먹인 ‘희망’이라는 글씨모형이 설치됐다. 사람들이 횃불로 글씨를 태웠다. '죽음의 공장'으로 불리는 쌍용차 정문 앞에서 활활 희망이 타올랐다. 참가자들은 횃불을 한군데 모아 모닥불을 만들었다.

12박13일 동안 강행군했던 희망 뚜벅이 참가자들을 중심으로 어울림판이 벌어졌다. 방송녹화가 있는 날을 제외하고 열흘간 행진에 참가했다는 탤런트 맹봉학씨가 맨 앞에서 춤을 췄다.

맹씨는 “행진 기간 동안 방문했던 세종호텔노조가 파업 끝에 이겼다”며 “함께한다면 잘될 것이라는 희망을 봤다”고 말했다.

희망 뚜벅이를 이끌었던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는 “반드시 승리해야 한다기보다는 주눅 들지 않고, 낙관하고, 연대하는 것으로 희망을 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한진중공업 문제가 해결됐지만 쌍용차에서는 사람이 죽고 있다. 세종호텔노조가 노조 설립 37년 만에 파업을 해서 이겼지만 구미 KEC에서는 정리해고가 단행됐다.

쌍용차 공장을 둘러싼 노동자들과 희망 뚜벅이들의 이날 발걸음이 ‘시작’인 이유다. 희망 뚜벅이들이 이날 마지막 행진을 해 놓고도 해단식을 하지 않은 이유다.


[상자기사] “사람과 더불어 보태면서 살고 싶다”
 

▲ 희망 뚜벅이 자영업자 신영철씨
     사진=김학태 기자

12박 13일동안 288킬로미터를 행진한 희망 뚜벅이 참가자들 중에는 노동자가 아닌 자영업자도 있었다. 강원도 홍천에서 부동산중개업을 하고 있다는 신영철(50)씨가 그 주인공이다.

신씨는 희망 뚜벅이 일정에 모두 참가했다. 2008년 미국 쇠고기 촛불집회에 참여한 것이 계기가 돼 사회참여를 활발히 해 왔다고 한다. 지난해에는 5차례의 한진중공업 희망버스에 모두 올랐다. 같은해 여름에는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문제를 촉구하면서 김영훈 민주노총 위원장과 함께 광화문에서 열흘동안 단식농성을 하기도 했다.

신씨는 노조 조합원도 아닐뿐더러 사회단체에 속해 있지도 않다. 그런 그가 이처럼 사회문제 해결에 적극적인 이유는 뭘까.

“사람이 참여를 한다는 것은 소극적으로 보면 의무이지요. 하지만 적극적으로 본다면 권리라고 생각해요. 저는 저의 권리를 누리고 있는 겁니다.”

신씨는 서울에서 평택을 내려오는 동안 무수히 많은 투쟁사업장을 보고 놀랐다고 한다.

“평소 사회문제나 노동문제에 관심이 많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무슨 해고자들과 비정규직 사업장이 그리 많은지. 제 입장에서는 희망을 향한 발걸음이라 생각했지만, 씁쓸하기도 했어요.”

“최대한 검소하게 살고 있기 때문에 생업에 큰 지장이 없다”는 신씨. 그는 “지금은 저 혼자 ‘1’이지만, 더 보태면서 살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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