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3세들이 잘 나가고 있다. 최근 줄줄이 최고경영자로 승진했다. 타이어업계 1위인 한국타이어 조현범 사장도 승진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사위로 알려진 조 사장이 부사장직을 뗀 것이다. 조 사장이 승진 후 한 일은 직원들과 소통이란다. 조현식·조현범 형제 사장은 지난달 직원들과 스키여행을 다녀왔다.‘말보다는 몸으로 부딪히는 소통을 실천했다’는 게 회사측 얘기다.

이쯤 되면 골목상권에 해당하는 빵집·커피숍까지 먹어치우는 재벌 3세보다 나은 것처럼 보인다. 적어도 그룹 주력사업에 집중하고, 직원들도 살피려고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겉과 속은 다른 법이다. 자식들에게 경영권을 세습한다는 세간의 비판을 의식하는 행태라는 것은 말할 나위 없을 것이다. 부자아빠가 없어 말단부터 차근차근 계단을 밟아야 하는 직원들의 허탈한 심정도 말해야 무엇하랴.

조 사장 형제는 운도 좋다. 한국타이어는 올해 연결 기준 타이어 매출이 7조2천328억원, 영업이익은 8천182억원에 달한다고 지난달 31일 공시했다. 지난해 대비 매출은 11.5%, 영업이익은 44.5% 증가했다. 지난해 10월 가격 인상과 신규 공장 가동으로 올해 매출과 영업이익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게다가 상승세였던 천연고무·합성고무 등 원재료비가 떨어져 큰 폭의 이익개선이 가능할 것이라는 호재도 작용했다. 한국타이어 주가가 연초부터 강세를 보이는 이유다.

이렇듯 잘 굴러가는 덕택에 한국타이어 경영권 세습에는 아무런 장애물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조 사장 형제만 잘 나간다. 한국타이어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죽을 맛이다. 재벌 3세들의 화려한 경영성과를 떠받치느라 노동자들의 몸은 망가지고 있다. 지난 2006~2007년 15명의 한국타이어 노동자가 잇따라 사망한 사건이 발생한 지 만 4년이 넘었지만 그들의 죽음의 행렬도 멈추지 않고 있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달 30일 한국타이어 노동자의 이런 실태를 처음 보도했다. 고용노동부가 특별근로감독을 진행한 2008년 5월 이후 최소 20명의 노동자가 암이나 심혈관계질환·폐질환 등으로 사망했다는 것이다. 노동부가 특별근로감독을 벌여 시정조치를 내렸음에도 달라지지 않은 셈이다. 같은 기간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신청을 낸 노동자는 246명에 달하며 이 가운데 221건이 승인됐다. 유해물질에 의한 질병이 산재로 인정된 경우도 2건에 달한다. 권아무개씨는 벤젠이 포함된 유기용제로 불량타이어 해체작업을 하다 백혈병을 앓게 됐다. 지난 2010년 산재승인을 받은 공아무개씨는 재생불량성빈혈을 앓다 숨졌다. 권씨·공씨의 사례를 보면 유해물질을 사용한 것이 화근이 됐음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산재신청자가 246명에 달하는데 권씨·공씨와 같은 사례보다는 사고성 재해자가 대다수였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회사측의 조직적 은폐시도가 작용했다는 정황이 밝혀졌다. 회사측이 직업병이 의심돼 산재신청을 한 이아무개씨에게 보복성 휴직을 강요하면서 이런 사실을 은폐하려 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집단 사망사건과 관련된 유족들에게 위로금을 주면서 그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합의서를 작성했음도 드러났다. 500억원을 들여 작업환경을 개선했다는 회사측이 떳떳하지 못하게 직업병 환자의 산재신청을 봉쇄하려 하거나 위로금을 전제로 유족들의 대외활동을 막았다는 것이다. 이러니 유해물질을 사용한 노동자가 많았음에도 해당 산재신청 건수는 적을 수밖에 없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런 사건이 재발되지 않도록 노동부라도 정신을 바짝 차렸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노동부는 특별근로감독 이후 직업병에 의한 사망자가 있는 줄도 파악하지 못했다. 특별근로감독 이후 노동부의 정기점검이 매우 형식적으로 이뤄졌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게다가 대전지법 2심 재판부는 지난달 12일 집단 사망사건과 관련해 한국타이어 법인에 1심 판결을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기업과 정부 그리고 사법부까지 나서 한국타이어에 면죄부를 주고 집단 사망사건을 세인의 기억에서 지우려고만 하니 개탄스럽다.

이명박 대통령이 설 연휴 전통시장에서 외손녀에게 과자를 사주는 장면이 보도됐는데 세간의 관심은 그 외손녀가 입은 흰색 패딩점퍼에 쏠렸다. 일각에선 ‘명품 몽클레어 아동용 제품으로 무려 300만원에 달한다’는 주장마저 나왔다. 외손녀는 조현범 한국타이어 사장의 딸이다. 재벌 3세이니 어린 딸에게 명품 점퍼를 사주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다. 하지만 조 사장은 호주머니에서 내어준 점퍼 값이 아직도 유해가스와 분진, 독극물인 벤젠을 마시며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목숨 값임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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