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경훈 화학섬유노조 JW지회 지회장
“노조가 없으니 관리자들이 일상적인 작업지시를 하면서도 노동자들을 무시하고 함부로 대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기댈 곳 없는 서러움이 이런 건가 싶었죠. 노조를 만들고 나니 회사가 불성실한 태도로 교섭을 지연시키고 있습니다. 게다가 얼마 전부터는 노무사까지 동원해 조합원들을 흔들고 있어요. 어떻게 만든 노조인데요. 끝까지 지킬 겁니다.”

전날 노조 설립 후 처음으로 대규모 집회가 열렸던 탓인지 박경훈 화학섬유노조 JW지회 지회장(사진·40)의 목소리는 가라앉아 있었다. 지회는 지난 19일 사측에 성실교섭과 노조활동 보장을 요구하며 충남 당진에 있는 공장 앞에서 전 조합원과 상급단체 간부들이 참가한 가운데 항의농성을 벌였다.

박 지회장은 집회 다음날인 20일 오후 <매일노동뉴스>와의 통화에서 노조 설립과정을 설명했다. 지난해 8월 의료용 수액을 전문으로 생산하는 JW생명과학에 노조가 생겼다. 조합원중엔 유명 제약사인 중외제약 출신도 있었다. 중외제약은 2002년 회사의 주력상품인 수액 생산을 전문화하기 위해 JW생명과학을 설립한 뒤 법인을 분리했다. 동시에 자동화시스템을 갖춘 별도의 생산공장 설립을 추진했다.

2006년 5월 충남 당진에 수액전문 생산공장이 완공되면서 박 지회장을 포함한 다수 노동자들의 일터가 그곳으로 옮겨졌다.

“95년 입사하면서부터 노조활동을 열심히 했어요. 그래서 작업장이 바뀌니 혹시 조합원 신분을 잃게 되지 않을까 불안해지더군요. 노조는 그때 걱정하지 말라는 말로 조합원들을 안심시켰어요.”

하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조합원 신분을 보장하겠다던 노조는 막상 조합원들이 당진공장으로 이동하자 관심을 두지 않았다. 노조라는 방패막이가 사라지자 회사 관리자들의 태도가 바뀌었다. 박 지회장은 "관리자들이 작업지시를 하는 과정에서 전에 하지 않던 폭언을 하면서 강압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말했다.

그나마 박 지회장의 사정은 나은 편이었다. 회사는 공장 이전 후 새로 뽑은 직원들에게는 출퇴근 통근버스 탑승을 허용하지 않았다. 공장을 이전하면서 살인적인 2조2교대제가 시행된 것도 노조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판단이었다. 노동자들이 "사람을 더 뽑아 노동강도를 줄여 달라"고 요구하자 회사측은 용역을 고용해 버렸다.

박 지회장은 “기존 노조가 우리를 방치하자 회사가 노동자들을 함부로 대하면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고 있다”며 “답은 따로 노조를 설립하는 것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런 속사정을 뒤로 하고 JW지회가 설립됐다. 조합원은 70여명이다. 박 지회장은 회사측과 9차례 단체협상을 진행했다. 그러나 협상은 공전을 거듭하고 있다. 그는 “사측의 태도를 봤을 때 협상의지가 엿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사측은 1차 교섭 직전에 공장에서 한참 떨어진 서울 본사에서 협상을 진행하자고 통보했다. 난데없이 대형마트에서 교섭을 하자고 요구한 적도 있었다. 회사 대표는 교섭장에 나온 적이 없고, 공장장 역시 1·2차 교섭 이후 교섭장에서 자취를 감췄다.

박 지회장은 “한 달 전부터 회사가 노무컨설팅을 통해 조합원 개별 면담을 진행한다”며 “노조 탈퇴를 부추기고 부서 이동 등 인사상 불이익을 주겠다는 으름장을 놓고 있다”고 비판했다.

지회는 충남지방노동위원회에 쟁의조정을 신청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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