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호진 언론노조 부산일보지부 지부장

"사장후보추천제를 도입해 소유주로부터 편집권을 분리해야 합니다. 언론으로서 제 기능을 하게 만들자는 겁니다. 언론의 주인은 소유주가 아니라 시민이어야 합니다."

편집권 독립투쟁을 벌이고 있는 이호진(41·사진) 언론노조 부산일보지부 지부장의 요구는 단순명료했다. 소유주가 사장을 임명할 때 편집국 의사가 반영되는 장치를 도입해 공정보도 시스템을 마련하자는 것이다. 소유주의 사장선임권이 언론의 경영과 편집에 대한 영향력 행사로 이어지는 것을 막자는 제안이다. 하지만 사측은 “경영진 선임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반발하면서 해고로 맞섰다. 이호진 지부장은 지난 17일 오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회관에서 <매일노동뉴스>와 만나 “이번 싸움에서 승리해 한국 언론운동사에 편집권 독립을 위한 투쟁의 단초를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1946년 창간된 부산일보는 부산에서 가장 오래된 종합일간지다. 부산 시민들이 가장 많이 보며 신뢰하는 신문이다. 이는 공정보도를 위한 지난한 투쟁의 결과물이다. 부산일보는 88년 편집국 독립을 요구하며 언론사로는 최초로 파업을 벌였다. 이어 기자들이 직접 편집국장을 선출하는 편집국장 선출제를 쟁취했다. 이를 계기로 다른 언론사에도 편집국장 선출제가 확산됐다.

그러나 사장선임제도를 개선하는 문제는 아직 풀지 못했다. 이로 인해 현재까지도 부산일보를 비롯해 MBC·KBS·YTN·국민일보 등 곳곳에서 공정보도 사수투쟁이 이어지고 있다. 이 지부장은 “제대로 된 언론으로 서고 싶다는 언론인들의 자성과 억눌림이 곳곳에서 분출되고 있다”며 “함께 연대해 이번 투쟁을 잃어버린 언론의 신뢰를 회복하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독립언론의 기치를 내걸었던 부산일보는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이 대선주자로 떠오르면서 격랑에 휘말렸다. 부산일보는 정수장학회가 지분 100%를 갖고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62년 부산 기업인 고 김지태 사장의 부일장학회를 헌납받았다. 이어 대통령의 이름 ‘정’과 육영수 여사의 이름 ‘수’를 따서 정수장학회로 바꾸었다. 박 의원은 95년부터 2005년까지 이사장을 맡았다. 2006년부터는 최측근인 최필립 전 청와대 비서관을 이사장으로 세워 연임시키고 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정수장학회가 강탈한 재산인 만큼 유족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권고했지만, 장학회는 이를 거부했다. 박 의원은 "이미 사회에 환원했다"며 정수장학회와 자신이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그런 가운데 박 의원이 한나라당 대표로 총선을 치르던 2004년 부산일보는 여야는 물론 시민·사회단체로부터 혹독한 비판을 받았다. 구성원들조차 “낯을 들고 다니기가 부끄러울 정도”라며 편파보도 중단 촉구 결의문을 냈다. 당시 공정보도위원장이었던 이 지부장은 “부산일보 사장의 선임권을 갖고 있는 장학회 이사장을 박 의원이 임명하는 한 언론의 공정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확인했다”고 회고했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자 지부는 2006년 사장선임제도 민주화를 요구하며 투쟁에 나섰다. 경영진은 ‘전향적인 검토’를 약속했지만, 현재까지도 이행되지 않고 있다. 그러다 결국 곪았던 고름이 터졌다. 지난해 11월30일 어이없는 일이 발생했다. 부산일보가 정수장학회와 박 의원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기사를 보도하려 하자, 부산일보 사장이 신문 발행을 중단한 것이다. 사측이 신문발행을 막은 초유의 사건이었다. 이 지부장은 "정수장학회가 사장 선임을 통해 편집권에 영향을 미친 결과"라고 풀이했다.

부산지역 시민·사회단체와 원로들이 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정수장학회의 사회 환원을 촉구하고 나섰다. 조만간 전국적으로 공동대책위원회가 출범할 예정이다. 한나라당에서도 반복되는 정수장학회 논란을 이번에는 털고 가야 한다는 비판이 제기될 정도다.

이 지부장은 "박근혜 의원 말대로 사회에 환원했다면 자신이 임명한 이사장을 물러나게 하고 장학회에서 완전히 손을 떼는 조치를 취하는 것이 상식”이라고 지적했다. 박 의원이 결단을 내리지 않는다면 장학회를 사회에 강제환원하도록 하는 특별법을 제정해서라도 박 의원과의 악연을 끊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이 지부장은 “상식을 지키는 투쟁인 만큼 반드시 승리해 부산일보를 원래의 주인인 시민에게 되돌려 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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