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과 관련해 무역협정 사상 가장 강력한 조항이다." 한미FTA 노동장을 따라다니는 표현이다.

"전 세계에서 한 번도 시행된 적이 없기 때문에 그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 한미FTA 노동장에 대해 물으면 정부나 국제노동법리 전문가들이 항상 하는 답변이다.

도대체 한미FTA 노동장이 어떤 내용을 담고 있기에 '유례없이 가장 강력하지만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것일까.
 

2007년 6월 노동장을 새롭게 쓰다

한미FTA 노동장은 미국의 요구로 도입됐다. 한국과 미국은 2006년 5월부터 노동분과 협상을 시작해 2007년 3월 중순까지 모두 8차례 협상을 통해 협정문을 마련했다. 당시 협정문은 현재 노동장과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2007년 4월3일 고용노동부가 공개한 내용에 따르면 한미 두 나라는 △국제적으로 인정된 노동권 준수 노력 △노동법의 효과적인 집행의무 △공중의견제출 및 분쟁해결심판제도와 같은 협정문 이행을 담보하기 위한 절차 도입 △노동 분야 협력강화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노동장을 두기로 합의했다.

그런데 한미FTA 타결안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미국 정부가 노동장 추가협상을 요구했다. 그리고 같은해 6월29일 노동장은 전혀 새로운 내용으로 다시 쓰여졌다. 기존에 제1조와 제2조, 제7조에 걸쳐 명시됐던 국제적으로 인정된 노동권 준수 노력이 국제노동기구(ILO) 98년 '작업장에서의 기본적인 권리와 원칙에 관한 선언'상의 노동권을 국내법령과 관행에 채택·유지하는 의무로 강화됐다. 권장사항이 의무조항으로 바뀌고 내용도 구체화된 것이다.

아울러 무역·투자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으로 기본노동권에 관한 법령의 적용을 면제하거나 이탈하는 것을 금지했다. 역시 미국측의 요구가 반영된 것이다.

미국은 특히 기존에 노동 분야 협정 위반시 특별분쟁 해결절차를 두도록 한 것을 무역보복이 가능한 일반분쟁 해결절차를 적용하도록 변경하기를 원했다. 기존 협정문에는 특별분쟁 해결 절차를 적용해 협정 위반시 최대 1천500만달러의 벌과금을 부과하고, 벌금을 피제소국(위반국)의 노동 여건을 개선하는 데 쓰도록 돼 있었다. 그런데 추가협상에서 노동장을 위반하면 일반분쟁 해결 절차를 적용해 무관세 혜택 중단 등 무역보복 조치를 내릴 수 있도록 이행강제력을 대폭 강화했다.

'미국' 노동자 보호를 위해!

한국 정부는 당황했다. 이행강제력이 커지면 노동 문제로 인한 무역보복 조치가 현실화되기 때문이다. 그러자 한국 정부는 "무역·투자 효과가 입증될 수 있는 실질적인 경우에만 분쟁해결절차에 회부한다"는 내용의 미 무역대표부 대표(USTR) 명의 서한을 요구했다. 노동 문제로 분쟁에 휘말리는 사태를 막기 위해 노동 관련 의무 위반이 무역·투자에 실질적 영향을 미치는 경우로 한정하고 입증책임을 상대국에서 지도록 제한하기 위한 최후의 조치였다.

미국 정부가 노동장의 내용을 대폭 보강한 이유는 2007년 5월 발표된 미국의 ‘신통상정책’ 때문이다. 미국 대통령은 '패스트 트랙(fast track)'이라고 불리는 권한을 갖는다. 다른 국가와 무역협정을 체결할 때 광범위한 '무역촉진권한'을 부여하는 것이다. 2007년 5월 민주당 다수의 하원과 재무부 무역대표부는 대통령의 이러한 무역촉진권한의 효력을 연장하는 대신 노동과 환경 기준을 무역과 연계하는 7개 조항의 신통상정책에 합의했다. 이 과정에서 2006년 선거에서 민주당을 다수당으로 만들어 준 미국 노동계의 요구가 대폭 반영됐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한미FTA 노동 관련 추가협상은 이러한 미국의 신통상정책에 의해 만들어진 첫 번째 무역협정이었다.

노동장 파장 “아무도 모른다”

한미FTA에 반대하는 노동계는 노동장과 관련해서도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고 선을 긋는다. 98년 ILO 선언에서 규정한 핵심노동기준은 결사의 자유(제87호)·단체교섭권(제98호)·강제노동 금지(제29호·제105호)·아동노동 철폐(제138호·제182호), 고용·직업상의 차별금지(제100호·제111호) 등 8개 협약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4개 협약만 비준했고 미국은 단 2개의 협약만 비준한 상태다. 이승철 민주노총 정책국장은 “ILO조차 눈치를 보며 미국의 노동법 제도에 큰소리를 못 내는 형편”이라며 “노동권을 강화한 무역협정이라 해도 과연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노동장을 안이하게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승욱 이화여대 교수(법학과)는 “ILO 98년 선언은 회원국이 협약을 비준하지 않더라도 원칙을 준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면서 “그런데 그 원칙에 대한 규정은 현재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핵심노동기준 위반에 대한 국제적인 판단기준이 없기 때문에 노동장 위반에 따른 조치는 결국 중재패널(한·미·제3국에서 1인씩 총 3인으로 구성)에서 결정하게 된다는 것이다.

노동장 의무에 관한 해석이 사실상 백지상태에 있다는 설명이다. 이 교수는 “미국에서 노동장에 대해 가장 강력한 이행강제력을 부과하고 있는 것은 실제 노동 문제로 인한 무역보복 조치를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전례나 판단기준이 없기 때문에 노동장의 파장을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다만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의 노동협정(NAALC) 사례를 참고할 수는 있다. 94년부터 2005년까지 NAALC에 접수된 공중의견제출은 34건이었다. 이 중 22건이 멕시코를 대상으로 한 것이고, 미국을 대상으로 한 것은 10건이다. 미국 사무처(NAO)에 접수된 21건의 내용을 구분해 보면 결사의 자유가 15건으로 가장 많았고 단체협상권 7권, 최저노동기준 5건 등으로 대부분이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에 관한 내용이었다.

한국 노동계의 딜레마

당장 한미FTA가 발효될 경우 당장 국제노동기준에 못 미치는 우리나라의 공무원노조 가입대상 범위·형법상 업무방해죄·이주노동자 노조설립 제한 문제가 도마 위에 오를 공산이 크다. 이 문제들은 대부분 노동계의 오랜 숙원이다.

사내하청 노동자 단체교섭권의 경우 한미FTA 최대수혜 업종인 자동차산업과 긴밀한 관계가 있어 노사정 모두 예의주시하고 있다. 현대차의 사내하청 노동자 징계·해고 문제나 노조활동 방해 등을 미국 노동계에서 문제 삼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최종 무역조치까지 이르지 않더라도 양국의 분쟁해결 과정에서 현대차의 피해가 불가피하다.

한국 노동계도 딜레마에 놓이게 된다. 노조 입장에서는 사내하청 노동자의 단결권을 옹호해야 하지만, 무역조치로 현대차가 대미 수출에 타격을 입을 경우 고용 문제가 위협을 받을 수 있다.

이승욱 교수는 “미국에서 한국의 노동시장 문제를 아주 자세히 들여다보고 있다”며 “우리 정부가 FTA 노동 관련 조치에 대비해 여러 연구를 진행하고도 공개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로 2006년부터 2009년까지 진행된 FTA와 관련한 노동부의 연구용역 8개 중 7개가 현재까지 비공개 처리되고 있다.

한미FTA 노동장은 노동기본권 향상의 발판이 될 수도 있고, 무역보복의 강력한 수단으로 작동할 수도 있는 양날의 검인 셈이다.

[Tip] 공중의견제출제도

개인이나 노조 같은 단체 등 누구나 상대국의 협정 위반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제도다. 북미자유무역협정에서 미국측의 무역보복의 수단으로 활용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미FTA 노동장에 규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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