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판례/ 대법원 2011다6632 임금



부당한 차별이란 무엇인가



차별(差別)이란, 둘 이상의 대상을 각각의 등급과 수준을 두어 부당하게 구별하는 행위를 말한다. 여기서 키워드는 ‘부당’이다. 모든 구별행위가 부당하지 않다면 차별이라고 할 수 없고, 이는 ‘차등’ 또는 ‘차이’라는 용어 정도로 표현할 수 있다. 따라서 차별이라는 의미는 구별돼 처우받는 모든 상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구별의 분리기준이나 구별의 정도가 부당한 정도에 이르고 있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부당함’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이는 다시 말하면 옳고 그름에 대한 인식을 의미한다. 이는 그 법률규범을 받아들이는 사회의 가치관에 따라 허용 여부가 달라진다는 의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회의 지배이념과 가치관이 무엇이냐에 따라 언제든지 달라진다는 말이다. 좀 더 현실적으로 보면 판단하는 사람의 주관적 잣대에 따라 차별로 보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 된다.

물론 이런 문제는 모든 옳고 그름에 관한 상황을 판단할 때 생길 수 있는 문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차별이 발생하는 모든 영역에서 그 차별의 옳고 그름의 문제를 따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절대 차별받아서는 안 되는 영역, 즉 차별의 절대금지영역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절대 차별이 허용될 수 없는 영역

예를 들면 인종이나 성별·출신·민족과 같이 자신의 선택과 무관하게 자신을 결정짓는 요소들이 있는데 이러한 요소로 인해 차별받는 것은 원칙적이고 절대적으로 허용될 수 없다. 차별은 그 자신이 차별을 감내하더라도 어떤 다른 선택을 통해 다른 만족이나 행복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선택적 상황에서 허용될 수 있는 것일 뿐이다. 자신의 선택과 전혀 무관한 것을 이유로 차별을 허용한다면 결국 당신을 여성으로 만들고, 당신을 유색인종으로 태어나게 하고, 당신을 억압받는 민족의 후손으로 태어나게끔 한 그 신을 원망하라고 하는 것에 다름 아닌 것이다. 이런 억지를 정의의 개념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성별을 이유로 한 차별 실태는 한번쯤 진지하게 곱씹어 볼 필요가 있다.



인류의 가장 오래된 차별 … 남과 여

성차별은 성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이성에 대해 차별하는 것을 의미한다. 성차별은 어느 한쪽 성이 다른 성적 존재보다 우월하고, 잠재적으로 더 뛰어나다는 인식에 기반해 있다. 이러한 인식은 전쟁과 사냥을 담당하는 남성과 채취와 육아를 담당하는 여성으로 나뉘는데 여기서 남성은 강하고 여성은 약하다는 논리에서 남성에 대한 우월적 가치관이 탄생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구분법이 과연 보편적으로 타당한가에 대한 의문이 남아 있고, 나아가 여성의 총생산가치가 남성의 총생산가치보다 총량이 적은가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다.

여하간 이러한 인류역사를 통해 나타난 성별 분업적 가치관은 오늘날에도 국가를 막론하고 고용의 영역에 적지 않게 남아있다. 그 중에서도 유교적 전통이 강한 한국에서의 여성에 대한 성별 분업적 가치관은 여전히 다른 국가에 비해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의 문제는 실제 성별 분업이라고 평가되는 현실은 변화하고 있는데 성별 분업적 가치관은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것에 있다. 기계와 전자기기를 사용하는 작업이 늘어나고 그에 따라 인간이 담당하는 업무는 과거 인간의 근력 그 자체를 사용하는 업무에서 기계적 작동을 통제하고, 작동 오류를 예방하는 작업으로 변화하고 있어 그 업무를 수행하는데 실제 성별 분업의 필요성은 소멸하거나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실제 인간이 담당하는 업무의 대부분은 인간이면 누구나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업무로 표준화되고 변화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라인에서 업무를 하는 남성과 여성이 업무를 수행하는데 남성이 중요한 업무를 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실제 여성이 담당할 수 있는 업무에서 요구하는 직무수행능력의 수준을 넘지 않는다.



성별을 이유로 한 차별은 편견에 기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성은 여성보다 더 많은 임금을 지급받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여전히 사업장에 성별 분업적 가치관이 남아 있어서 그렇다. 남성은 미혼이든 기혼이든 전업의 가능성이 없는 반면 여성은 혼인을 이유로 기업을 떠날 수 있기 때문에 충성도에 차이가 있다고 본다. 더불어 기혼인 여성의 경우 남성이 주로 가정경제를 책임지고 있기 때문에 여성에게 더 많은 가정경제의 책임이 주어져 있지 않고, 여성은 본능적으로 가사와 육아에 더 많은 책임감을 가지고 있으므로 직업에 대한 업무 몰입도가 남성보다 약하다고 보고 있다.

이 모든 것은 현대에 와서는 편견에 속한다. 88만원세대에게 혼인은 직업결별의 계기가 되지 않는다. 출산은 최소한 후세의 사회유지를 위한 사회 스스로가 져야 하는 의무이므로 이를 이유로 불리하게 대우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또 경제활동을 하는 모든 기혼여성이 가정경제를 책임지지 않는다고 볼 수도 없고, 직무 몰입도가 떨어진다는 것은 검증되지 않은 괴담일 뿐이다. 이러한 편견이 지배하는 노동현실 속에서 우리가 말하는 노동의 평등은 과연 어떤 의미였을까.



차별금지법의 과잉, 그러나 차별은 여전

현재 우리 노동관계법에는 차별금지와 관련된 많은 규정들이 존재하고 있다. 근로기준법은 제6조에서 균등처우를, 제24조 제2항에서는 정리해고시 여성에 대한 차별금지를 각각 규정하고 있고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9조는 노조 조합원에 대한 차별금지를,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및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서는 비정규직 근로자에 대한 부당한 차별처우 금지를 규정하고 있다.

앞서 보는 바와 같이, 입법자는 고용상 차별의 사전적 예방을 위해 여러 법률에 걸쳐 고용상 차별을 금지하는 규정을 제정해 왔다. 그러나 이와 같은 입법자의 적극적 입법태도에도 불구하고 우리사회에는 성별·학력·고용형태 등의 여러 가지 요소에 의한 차별이 여전히 현존하고, 나아가 그와 같은 차별이 심각한 사회적 갈등으로 종종 등장한다. 이런 것을 볼 때면 우리의 차별금지법제가 제정된 법의 양적측면에 비해 우리 고용사회의 차별을 실질적으로 규율하고 있다고 볼 수는 없는 것 같다.



피해자들이 말할 수 없게 하는 차별금지법

우리의 차별금지법제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현상에 대해 이를 설명하는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실제 법제도의 활용을 통해 스스로의 권리를 방어해야 하는 권리침해자, 즉 차별받는 근로자들이 현재의 법제도를 자신을 위한 권리 방어의 수단으로 여기지도 않고, 이의 조력을 구하지도 않는다는 점이 가장 주된 원인일 것이다. 즉 법제도에 대한 수용자의 신뢰도가 현저히 낮다는 것이다.

성별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는 남녀고용평등법이 제정된 시점으로부터 24년이 돼가는 현 시점에서 대법원이 다룬 사건이 단 2건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이나, 비정규직 차별을 금지하는 비정규직법 차별시정제도의 도입이 이루어진 지 5년이 돼가지만 실제 기획된 사건 이외에 근로자 당사자들의 자발적 요구에 의해 사건이 개시되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는 사실이 현재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모든 노동에서 차별 허용돼선 안 돼

차별받는 근로자들이 법제도에 스스로를 의탁하지 않는 것은 법제도가 그들에게 실질적 차별을 제거한다는 사회적 경험을 부여하지 못했고 나아가 제도에 접근하기 위한 방법상의 난해함, 높은 쟁송비용 등이 현실적 장애로 존재하기 때문이 아닐까.

고용상 차별의 해결제도가 사문화될 위기에 봉착됐다고도 평가받을 수 있게 된 현재의 상황을 더 이상 개선하지 않는다면 결국 사회구성원 전체를 차별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할 수 없는 부정의의 사회를 그대로 용인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모든 노동에서의 차별은 모든 노동의 서열화를 의미한다. 노동자의 단결은 노동자가 동일하다는 관념에 따라 형성된 동일성의 개념을 토대로 한다. 따라서 노동의 서열화는 노동의 단결을 해하는 가장 근본적이자 강력한 수단이 될 것이다. 따라서 노동에서의 반차별은 선언 그 자체를 넘어 매우 중요한 가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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