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는 살인이다.” 부도덕한 정리해고로 물의를 일으킨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의 국회 인사청문회 자리에서 나온 정동영 민주통합당 의원의 발언이다. 정리해고는 지난해 쌍용자동차, 올해 한진중공업으로 갈아타며 사회에 파장을 일으켰다.

‘해고는 살인’이라는 말은 실제로 노동자들의 잇단 죽음으로 증명됐다. 해고는 사용자와 노동자가 근로관계를 단절하는 것이다. 생계수단을 잃게 되는 노동자는 약자일 수밖에 없다. 문제는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로 인한 해고다. 97년 외환위기로 인한 국가 부도위기를 모면하려고 도입된 정리해고제가 그것이다. 그러나 경영상 해고는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됐다. 이득을 보던 회사가 이득이 줄었다고 노동자들을 해고했고, 한쪽에서는 주주에게 배당하면서도 경영이 어렵다며 해고하기도 했다. 이런 태도는 민간기업이나 공공기관이나 매한가지였다.



정리해고 요건 강화, 공공기관 선진화 정책 잇단 제동



올해 6월 대법원은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라는 정리해고 요건을 엄격하게 제한하라고 판결했다.(2011두7526) 기업이 존폐위기에 이를 정도가 아니면 노사가 맺은 고용안정협약을 지키라는 것이다. 대법원은 “회사 인수 후 기업 자체가 존폐 위기에 처할 심각한 재정적 위기가 도래했다거나 예상하지 못했던 급격한 경영상 변화가 있는 경우 등 협약체결 당시 예상하지 못했던 사정변경이 있어 협약의 효력을 유지하는 것이 객관적으로 부당한 경우와 같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위 협약은 유효하다”고 판시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 의욕차게 추진했던 공공기관 선진화 정책으로 인한 일괄해고에도 법원이 잇따라 제동을 걸었다. 판결은 새해 벽두부터 시작됐다. 서울고법은 1월7일 선진화 정책에 따라 해고된 인천국제공항공사 직원들이 낸 소송에서 “정당한 이유가 없는 정리해고여서 무효”(2010나71259)라고 밝혔다. 법원은 “정부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는 공기업의 특수성만을 들어 정리해고의 요건인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이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정부정책의 근본적인 목적이 인원감축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경영효율성을 개선하고자 하는 것이므로 인원감축 외에 다른 방법으로 경영효율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지를 검토할 수도 있기 때문”(2010가합2894)이라고 밝혔다.

비슷한 이유로 서울남부지법은 6월 한국공항공사 정리해고자들이 낸 해고무효확인소송에서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충분히 정리해고 없이도 나머지 15명의 인원을 감축할 수 있는데도 정리해고를 단행했다”며 “해고에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었다거나 해고 회피를 위한 노력을 다했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파업=업무방해' 관행에 쐐기



올해 3월17일 이전까지 파업은 무조건 업무방해죄에 해당됐다. 대법원은 이날 "쟁의행위가 형법상 업무방해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고 정당성이 인정될 때 위법성이 조각돼 처벌을 면한다"(2007도482)는 기존 법리를 변경했다. 지난해 4월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른 후속조치였다. 당시 헌재는 “파업이 헌법상 기본권으로 보장되는 단체행동권의 행사로서의 적법한 요건을 갖춰 이뤄진 경우 이는 헌법적으로 정당성이 인정되는 행위이므로 이를 업무방해죄의 구성요건인 위력에 해당한다고 볼 수는 없다”(헌재 2009헌바168)고 결정했다.

대법원은 “전후 사정과 경위 등에 비춰 사용자가 예측할 수 없는 시기에 전격적으로 이뤄져 사용자의 사업운영에 심대한 혼란 내지 막대한 손해를 초래하는 등으로 사용자의 사업 계속에 관한 자유의사가 제압·혼란될 수 있다고 평가할 수 있는 경우에 비로소 그 집단적 노무제공의 거부가 위력에 해당해 업무방해죄가 성립한다”고 판시했다. 사용자가 예측할 수 있는 파업은 업무방해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용노동부가 불법이라고 금한 노조전임자 요구 파업도 업무방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결도 나왔다. 광주지법은 10월 금속노조 기아차지부가 회사의 노조전임자 관련 단체교섭 불응에 항의해 연장근로를 거부한 것에 대해 업무방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법원은 “연장근로거부가 사용자가 예측할 수 없는 시기에 전격적으로 이뤄졌다고 보기 어렵고, 또한 이것이 사용자의 사업운영에 심대한 혼란 내지 막대한 손해를 초래하는 등으로 사용자의 사업 계속에 관한 자유의사가 제압·혼란될 수 있다고 평가할 수 있는 정도까지 이르렀다고 볼 수 없어 업무방해죄에서의 위력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2010고단4748)고 판단했다.

한편 6월 삼성전자 백혈병에 대해 산재를 인정한 서울행법의 판결도 주목할 만하다. 재판부는 “백혈병의 발병 경로가 의학적으로 명백히 밝혀지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근무하는 동안 각종 유해화학물질에 지속적으로 노출돼 급성 골수구성 백혈병이 발병했거나 적어도 그 발병이 촉진됐다고 추단할 수 있다”(2010구합1149)고 판시했다.

지난해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에 대한 정규직화 판결에 이어 간접고용 노동자 보호 판결도 잇따랐다. 7월1일 대법원이 금호타이어 사내하청 노동자에 대해 별도의 업무지시가 없더라도 고유기술 없이 혼재작업했을 경우 위장도급에 해당한다며 직접고용 판결(2011두6097)을 내린 것이 대표적이다. 서울고법이 8월19일 KTX 여승무원에 대해 철도공사 소속 노동자로 해고가 무효라고 판결(2010나90816)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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