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인노무사
(노무법인 현장)

1. 서론

일하다 다친 노동자들은 마음 편히 쉴 수 없다. 의사가 ‘병원에 입원해야 한다, 안정가료가 적극 필요하다’고 아무리 잔소리를 해도 병이 나을 때까지 여유롭게 쉴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노동능력을 완전히 상실한 것이 아니면 몸이 아파도 출근하는 길을 선택하는 노동자가 아픈 것보다 더 두려운 것은 아프다는 이유로 해고를 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업무상 사유로 재해를 당한 노동자를 실질적인 해고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하는 최소한의 법적 장치가 근로기준법 제23조 제2항(구 근로기준법 제30조 제2항)이다. 근로기준법 제23조 제2항은 “사용자는 근로자가 업무상 부상 또는 질병의 요양을 위해 휴업한 기간과 그 후 30일 동안은 해고하지 못한다”고 규정했다. 이는 노동능력을 일정부분 상실한 재해노동자가 노동능력을 회복하는 기간과 그 후 30일간 동안 실직의 위협으로부터 절대적으로 보호하고자 하는 취지다.

최근 업무상 질병으로 요양을 하던 중 해고를 당한 노동자가 제기한 해고무효확인 소송에서 대법원은 “원고의 상태가 휴업을 할 객관적 필요성이 있는 정도가 아니라는 이유”로 이를 기각하면서 구체적으로 해고제한 사유에 해당하는 요양을 위한 휴업의 필요성 여부를 판단하는 대법원의 기준을 제시했다. 사건의 개요와 대법원 판결의 요지를 자세히 살펴본 후, 이번 대법원 판결의 문제점에 대해 지적하고자 한다.


2. 사건의 개요

이번 판결의 노동자는 지난 84년 삼생생명보험에 입사해 일하던 중 98년과 2001년 구조조정 과정에서 회사의 명예퇴직 요구에 불응했다. 회사는 기존의 영업소를 폐쇄하고 다른 영업국으로 전보발령한 후 대기발령 상태로 두어 그 과정에서 심리적 스트레스를 받아 왔다. 이 노동자는 회사로부터 퇴직압력, 부당한 인사고과, 차별대우, 인격적인 멸시 등의 갈등상황에서 스트레스 때문에 2002년 2월경부터 ‘불안신경증’이 발병해 치료를 받게 됐다.

이 노동자는 회사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받은 극심한 스트레스로 얻은 정신질환에 대해 2003년 5월경 근로복지공단에 업무상 재해로 요양신청을 했고, 공단은 2003년 7월25일부터 2004년 1월24일까지 요양을 승인했다. 노동자는 계속 치료가 필요해 치료종결되기 전 2004년 1월경에 공단에 2004년 2월24일까지 요양기간 연장신청을 했으나 공단은 2월7일자로 치료종결처분을 내렸다. 이 노동자는 치료가 계속 필요해 법원에 그 처분의 취소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은 “2004년 2월7일경 원고의 불안신경증 증상이 고정되지 않았고 계속적인 치료를 받음으로써 의학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상태에 있었다”는 이유로 원고의 손을 들어 줬다. 공단은 이 판결이 확정된 뒤 이 노동자의 요양기간을 소급해 2002년 4월4일부터 2009년 5월29일까지 요양연기를 승인했고 그 중 일부 기간에 대해 휴업급여도 지급했다.

공단을 상대로 한 요양연기 불승인처분취소를 다투던 중인 2006년 10월25일 회사는 당해 노동자를 해고했다. 노동자가 제기한 해고무효확인소송에 대해 대법원(대법원 2009다63205판결)은 본 사건을 기각했다.


3. 대상판결의 요지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요양이 종결된 2004년 2월7일 이후 업무에 복귀해 해고일인 2006년 10월25일까지 계속 근무했고, 2006년 중 원고가 불안신경증으로 단 1회의 통원치료를 받은 점, 요양연기 불승인처분취소소송에서 이 사건 해고일 무렵 원고를 신체감정한 감정의가 작성한 사실조회 회보에도 원고의 감정 상태가 병가나 입원치료를 꼭 필요로 하는 상태가 아니라고 판단된다는 취지로 기재돼 있는 점을 들어 해고 당시 원고가 우울장애 등으로 보험 영업 지원 등 담당 업무를 통상적인 방법으로 수행할 수 없을 정도에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원고의 상태가 휴업을 할 객관적 필요성이 있는 정도가 아니었다고 판단한 원심의 판단을 정당하다고 인정했다. 또 해고 당시 원고가 휴업할 필요가 있었는지는 그 해고 시점의 상태를 기준으로 객관적으로 판단할 것이라 이 사건처럼 해고 이후에 근로복지공단이 요양을 승인하고 휴업급여를 지급했다는 사정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그 결론을 달리해야 하는 것(휴업할 필요성을 인정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4. 대법원 판결의 문제점

종래 대법원의 입장(대법원 91누3321 판결)은 업무상 부상 등으로 휴업하고 있는 경우라도 ①정상적으로 출근하고 있거나 ②그 요양을 위해 휴업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되지 않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해고가 정당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 때 정상적으로 출근하고 있는 경우라 함은 정상적인 노동력으로 근로를 제공하고 있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므로, 객관적으로 요양을 위한 휴업이 필요함에도 사용자의 요구 등 다른 사정으로 출근해 근무하고 있는 것과 같은 경우에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휴업이 필요한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은 요양과 휴업사이의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고 객관적 사정을 종합해 판단한다고 했으나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판단할 때 엄격한 판단은 하지 않았다(치료가 필요한 기간은 휴업기간으로 보고 파업농성을 주도했다는 다른 정황이 휴업기간을 판단하는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대상판결에서는 휴업의 필요성을 살필 때 부상과 업무와의 상당한 인과관계를 판단하는 기준을 구체적으로 열거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객관적인 사정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하고 덧붙여 산재법에 의한 요양승인·휴업급여 지급여부는 하나의 참작사유에 불과하다고 판단했다.

첫째 대상판결은 근로기준법의 해고제한기간을 둔 법의 취지를 형해화하고, 해고제한 기간에 해당하는 요양을 위한 휴업기간에 대한 인정폭을 축소시킬 우려가 있다. 해고제한 기간을 설정한 법의 취지는 업무상 재해로 휴업이 필요할 경우 노동능력 상실상태에서 휴업한 사실 등으로 해고의 실질적 위협에 노출될 수 있기 때문에 노동자를 최소한도로 보호하기 위해 설정한 것이다. 때문에 매우 예외적인 상황을 제외하고 휴업기간을 폭넓게 인정해야 현실에서 법이 그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 법원은 노동자와 사용자의 입장을 모두 들어보고 ‘객관적’으로 휴업이 필요한지 판단해보겠다는 입장인데 사용자의 업무상 필요성보다 노동자의 회복을 보호하겠다는 입법 취지를 망각한 것이다. 휴업의 필요성 여부를 엄격히 판단한 대법원의 판단기준으로 인해 요양을 위한 휴업기간으로 인정받을 폭은 더욱 축소될 것이다.

둘째 근로기준법의 특별법에 해당하는 산재법의 입법취지 또한 무색하게 하는 판결이다. 현실에서 업무상 재해를 당한 노동자는 실제 이 해고의 위협 때문에 치료받는 것이 어려운 경우가 많고 사실상 휴업을 스스로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사업주가 휴업기간을 인정하지 않을 경우 치료를 이유로 휴업을 했다가는 무단결근으로 해고사유를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마지못해 출근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법원이 소송을 통한 객관적 판단을 내리기 전에 사용자가 휴업기간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에 업무상 재해로 인한 요양기간을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은 ‘산재법상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는 것’이다. 그런데 판결에 따르면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요양승인을 받은 경우라도 요양의 필요성 내지 목적에 대한 법원의 별도의 판단이 필요하며, 경우에 따라서 요양의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을 경우 해고가 정당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시에 산재노동자 입장에서는 치료를 받으면서 상시적인 고용불안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것을 의미한다.

법원이 요양에 필요한 휴업기간 여부에 대해 판단의 기준을 세우는 것은 법에 별도의 규정이 없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산전후휴가의 경우와 달리 업무상 요양을 위한 휴업기간은 별도로 어떤 법에 근거하고 있는지 명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법의 연원과 근로기준법과 산재법과의 관계를 생각하면 입법이 미비한 영역은 아니다. 구 근로기준법 제정 당시인 1953년에 산재법이 존재하지 않았고 그 해석의 범위를 근로기준법상 휴업기간을 전제한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근로기준법과 산재법과의 관계에서 산재법이 업무상 재해에 있어서 근로기준법보다 우선 적용되는 특별법 지위에서 역할을 하고 있다고 했을 때 산재법상 인정된 휴업기간은 해고제한 기간에 해당하는 휴업기간으로 충분히 인정될 수 있다.

대법원은 산재법상 근로복지공단의 요양승인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객관적인 다른 사정을 종합해 요양에 필요한 휴업기간인지 여부를 별도로 판단하겠다고 한다. 공단으로부터 요양승인을 받고 이를 신뢰해 출근하지 않고 휴업한 노동자라도 해고될 수 있다면 어떤 노동자가 요양승인 기간을 어떻게 믿고 치료에 전념할 수 있겠는가.


5. 결론

이번 대상판결에서 법원은 ‘객관적 사실의 종합적 판단’을 기준으로 삼아 중립적인 척한다. 현실적 배경이 제거된 상태에서 법리적 해석이나 중립적 판단은 위험한 결과를 낳는다. 종속노동을 하는 노동자는 이미 현실에서 해고의 위협에 놓여있고 특히 노동능력을 상실 또는 감소한 상태에서 해고는 노동자의 처지를 매우 곤궁에 빠뜨릴 수 있다. 자유계약 원칙인 노동관계에서 근로기준법을 둔 취지, 그것도 명시적으로 요양을 위한 휴업기간에 해고를 제한한 것은 해고의 위협으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법적 조치다. 그렇기 때문에 재판부에서 말하는 객관적 조건을 종합적으로 판단한다는 것은 악의적이고 예외적인 경우를 판단하는 데에 쓰여야 한다.

대상판결로 노동자는 결국 해고됐다. 회사는 노동자에게 98년 이후 불어닥친 구조조정 과정에서 구조조정의 심리적 압박으로 불안신경장애라는 질병을 안겨 줬다. 노동자는 치료를 계속하고 있다. 회사는 불안신경장애에 이어 해고의 고통을 줬다. 노동자는 10여년의 세월 동안 외로이 싸워왔다. 대기업에 홀로 맞서 싸우는 노동자에게 재판부는 ‘객관적·종합적으로 판단해보니 해고 당시 시점에서 판단할 때 휴업이 꼭 필요하지 않았다고 한다. 노동자가 요양기간 연장을 요구했을 때 인정하지 않았던 근로복지공단은 재판에서 노동자가 이기고서야 요양기간을 소급해 인정했으나 그가 겪은 아픔의 세월에 대한 단 한마디 사과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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