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변호사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

1. 거센 투쟁의 날이 시작됐다. 날치기 처리가 반대의 불꽃에 기름을 부었다. 지금 이 나라에서 모든 운동은 한미FTA 반대 투쟁으로 하나의 불길로 타오르고 있다. 서울의 광장은 매일 집회가 열리고 서울의 거리는 매일 시위가 열린다. 대한민국의 광장에선 매주 수만명이 집회를 하고 대한민국의 거리에서는 매주 수만명이 시위를 한다. 지금 이 나라의 광장과 거리는 한미FTA 투쟁의 함성이 휩쓸고 있다. 거센 투쟁의 불길이 우리의 머리를 광장과 거리를 떠돌고 있다. 거대한 투쟁의 함성이 우리의 심장을 마구 방망이질하고 있다. 한미FTA 투쟁이 우리를 미치게 하고 있다.


2. 농축산업, 의약 등 피해산업의 종사자만이 아니다. 자동차 등 이른바 수혜산업의 노동자까지도 한미FTA 투쟁에 나서고 있다. 주권의 문제이고 민중의 문제라고 재벌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피해자라고 투쟁하고 있다. 지금 한미FTA에 관해서는 이를 추진하고 찬성하는 자는 매국노고 이에 반대하는 자는 애국자다. 지금 한미FTA에 관해서는 이를 지지하는 자는 1%가 됐고 이에 반대하는 자는 99%인 민중이 됐다. 한미FTA 비준, 발효를 추진하는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에 맞서 모든 애국자와 99%의 인민은 하나로 투쟁하라 하고 있다. 이 나라에서 모든 운동세력은 이렇게 한미FTA 투쟁으로 질주하고 있다. 민족자주에 있어서도 민중생존에 있어서도 한미FTA는 최우선적으로 철폐해야 할 과제가 됐다. 그러니 민족운동단체도 민중운동단체도, 그리고 노동운동단체도 한미FTA 반대 투쟁에 하나로 나섰다. 한미FTA 투쟁은 지금까지 자주, 민주, 통일을 선차적인 과제로 하는 운동세력과 노동, 민중, 계급을 앞세우는 운동세력이 일치해서 하나의 목소리로 투쟁하고 있다. 한미FTA 앞에서 이 나라의 운동은 하나가 됐다. 강령이고 노선이고 뭐고 한미FTA 앞에서는 그 차이는 별 볼일 없었다. 정당이라고 다르지 않다.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 등이 통합해 출범한 통합진보당은 물론 진보신당·혁신과 통합·민주당까지도 한미FTA 투쟁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 나라에서 기존체제를 변화시키려는 진보에서 기존체제로의 통합을 내세우는 보수까지 모두 하나로 연대해서 투쟁하고 있다.


3. 물론 구호는 조금은 다르다. 한미FTA 폐기냐 재협상이냐. 전면 무효화냐 아니면 독소조항의 수정을 통한 보완이냐. 당장 전면적인 투쟁이냐 아니면 내년 총선과 대선이라는 정치일정까지 몰아가는 투쟁이냐. 민주당 등과는 차별되는 진보의 투쟁은 폐기를 위한 전면 투쟁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렇게 지금 이 나라 진보운동은 한미FTA에 있어서 그 반대와 투쟁의 정도에서만 다른 세력과 차이가 있다. 더욱 철저히 즉각적으로 더욱 강력하게 투쟁하자는 것이 다를 뿐이다. 단지 전술과 구호에서 다를 뿐이다. 이렇게 이 나라에서 진보든 보수든 민족이든 민중이든 노동이든 모든 운동세력은 그 반대투쟁에 있어서는 다르지 않다. 굳이 지금 한미FTA 투쟁에서 뭔가 다른 것을 찾아본다면 이것밖에 없다. 보수든 개량이든 진보든 뭐든.


4. 민주노총은 한미FTA 반대 투쟁지침을 내려 보냈다. 노조단체가 아닌 노동운동단체들도 한미FTA 반대 투쟁에 일제히 나섰다. 조합원들에게 노동자들에게 한미FTA 반대 투쟁에 나서라고 말하고 있다. 한미FTA는 주권을 침해하고 국익을 저해하고 공공성의 유지와 확대를 제한하고 결국 노동자 민중의 생존을 양국의 1% 자본에 바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노동자는 투쟁해야 한다고 하고 있다. 그 투쟁의 광장에서 노동자는 한미FTA 반대를 외쳤다. 그랬더니 시민들이 노동자의 구호를 따라 외쳤다. 민족의 문제에, 주권의 문제에, 국익의 문제, 공익의 문제에 노동자가 앞장서 투쟁하니 노동운동은 의미 있는 사회적 노동운동이 됐고 국민과 함께 하는 운동이 됐다. 그 동안 노동자의 구호는 노동자만이 외쳤던 것이었는데 한미FTA 투쟁의 광장에서는 그렇지 않으니 노동운동은 감격한다. 그리고 그 투쟁의 거리에서 노동자는 선두에서 한미FTA 반대를 외치며 물대포를 맞았다. 그랬더니 시민들이 노동자에게 박수를 치며 응원했다. 비로소 노동운동은 시민들의 호응을 받는다고 이 투쟁이야 말로 이 나라 노동운동의 나아갈 길이라고 열광한다. 지금 이 나라 노동운동은 한미FTA 투쟁으로 온통 이렇게 감격하고 열광하고 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가. 그 투쟁에 노동자권리에 관한 요구는 보이지 않는다. 이것은 이 나라 노동자가 노동자자신의 요구로서가 아니라 한미FTA 투쟁에 동원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한미FTA 투쟁은 지금 단순히 주권과 국익의 문제로 전개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이 나라에서 노동운동이 단순히 주권과 국익을 위해 전개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지금 민주당원인 시민과 민주노총 조합원인 노동자는 하나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시민과 노동자는 하나이기 때문에 하나의 구호를 외치고 있는 게 아니다. 한미FTA 투쟁에서는 하나이기 때문에 하나의 구호를 외치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원인 시민은 한미FTA를 추진하는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권을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심판해 민주당이 정권을 되찾아오기 위한 분명한 목적에서 ‘한미FTA반대,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권 심판’이라는 자신의 구호를 외치고 있다. 민주노총 노동자도 한미FTA를 추진하는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권을 심판하기 위해 ‘한미FTA 반대,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권 심판’이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그런데 노동자는 목적이 한미FTA 반대일 뿐 분명히 자신의 요구는 없다. 그렇다면 그 목적이 노동자 자신을 위한 것일까. 노동자는 그것이 국익을 위한 애국자의 구호라는 것을 알뿐이다. 그러니 지금 한미FTA 투쟁은 노동자를 애국자로 만들고 노동자 자신의 이익을 초월해서 투쟁하라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노동운동이 노동자권리가 아닌 국익과 공익이라는 보다 높은 수준의 투쟁으로 노동자를 나서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노동자가 자신을 주장하지 않도록 투쟁에 동원하는 것이고 결국 그 투쟁이 거세질수록 노동자는 사라지고 국민만 보일 것이다. 그러면 한미FTA 투쟁은 국익을 위한 국민운동으로 전개될 것이고 장차 위대한 국민의 투쟁으로 평가될 것이다. 그러나 그 자리에 노동운동으로서 한미FTA 투쟁은 없다.


5. 지금 이 나라 노동운동은 중요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 지금까지 확보된 노동자권리를 살펴보고 확보해야 할 노동자의 권리목록을 작성해서 요구하고 투쟁해야 한다. 이미 시작된 총선, 대선 등 정치일정에 따라 이 나라 정치세력은 이합집산을 시작했다. 앞으로 내년 대선까지는 노동운동도 그 정치일정에서 무관하게 전개될 수 없다. 오히려 노동운동은 이것을 적극적으로 이용해야 한다. 어떤 정치세력을 지지할 것이냐, 어떻게 정권교체를 이룩할 것이냐 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권리를 확보하기 위한 투쟁에서 어떻게 정치일정을 활용할 것이냐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 단순히 이 나라 국민이라면 한미FTA 반대 구호만 외치면 된다. 그러나 노동자는 이 세상에서 한 순간도 자신의 권리 확보를 위해 투쟁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세상의 법질서는 그렇게 노동자의 권리를 확보하라 선언했으니 투쟁을 잊는 순간 노동자권리는 확보될 수 없다. 노동자에게 한미FTA 투쟁조차도 자신의 권리를 위한 것일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니 노동자는 자신을 위해서 한미FTA 반대 구호를 외칠 수 있어야 한다. 지금 한미FTA 투쟁의 광장과 거리에서 노동자의 구호가 보이지 않는다면 이것은 노동운동이 노동자권리 확보를 위한 투쟁으로 한미FTA 투쟁을 바라보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지금 이 나라에서 노동운동이 노동자를 투쟁에 내몰면서 그 투쟁이 노동자권리를 위한 것이 아니라면 그 투쟁이 아무리 수준높은 정치투쟁일지라도 그것은 이 나라에서 노동운동이 실패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굳이 노동운동이 해야 할 것도 아니다. 노동자권리 확보를 위한 요구 없이 전개되는 한미FTA투쟁의 광장은 이미 노동자의 광장이 아니다. 그것은 그저 시민광장일 뿐이다. 노동자들이 그 투쟁의 거리를 떠돈다고 해도 그것은 차 없는 거리 행사에 시민으로 동원된 것과 다를 게 없었다고 노동운동의 역사에 기록될지 모른다. 지금 한미FTA에 관해서는 스스로 보수성향이라는 판사조차도 문제가 있다고 제기하고 있다.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협정도 아니고 대한민국과 미국의 국가이익을 따지는 협정이다. 노동과 자본을 가르는 협정은 더욱더 아니다. 그러니 이런 투쟁으로 확보될 세상이 다르지 않다. 노동운동은 이미 시작된 한미FTA 투쟁에서 노동자권리를 위한 요구를 위해서 투쟁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미FTA 투쟁은 노동자에게는 또 하나의 촛불시위일 뿐이다. 이 나라에선 민족과 국가 앞에 충성을 다할 것을 시도 때도 없이 다짐하도록 했고 다짐해왔다. 그러니 이 나라에선 노동운동이 각성이라면 한미FTA 투쟁은 본능에 가깝다. 노동운동이 스스로 이 투쟁에서 자신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내세워 투쟁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노동운동은 한미FTA 투쟁의 거센 불길에 휩싸여 태워질 수 있다. 물론 노동운동은 노동자를 그 투쟁에 동원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이 노동운동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그 투쟁의 요구와 결과로 평가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한미FTA 투쟁에서는 투쟁의 요구에서 노동자는 없다. 그러니 그 투쟁의 불길이 꺼진 다음에 투쟁의 결과에서도 노동자는 없을 것이다. 또 다시 열심히 투쟁했지만 확보된 것은 없었다고 평가를 받게 될지 모른다. 노동운동은 노동자의 모든 투쟁의 광장이 노동자의 광장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노동운동은 노동자권리 확보를 위한 거리로 노동자들을 달려 나가게 할 수 있다. 그 노동자권리가 무엇이라도.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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