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과 금속노조가 최근 내년 사업기조를 확정했다. 실노동시간 단축과 심야노동 철폐에 전력을 쏟겠다고 밝혔다. 총파업 투쟁계획도 제시했다. 고용노동부가 교대제 개편을 촉구하고 나서자 노동계가 포문을 연 셈이다.

앞서 이채필 고용노동부 장관은 한국GM 인천 부평공장을 방문해 자동차업계의 교대제 개편과 일자리 창출을 강조했다. 이에 현대차측은 2013년부터 주간연속 2교대제를 실시하겠다고 답했다. 이쯤 되면 올 상반기 유성기업 파업 당시 쟁점이었던 ‘밤샘노동 철폐, 주간연속 2교대제 시행’ 문제가 뜨거운 감자로 재부상하고 있는 듯 보인다.

현재로선 정부와 노동계가 공세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는 반면 경영계는 수세적인 모습이다. 교대제 개편을 둘러싸고 촉각을 곤두세우고 긴장한 표정이 역력한 노사정과 달리 현장 노동자들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하다. “밤샘 노동이 폐지되면 좋지만 설마 되겠어, 하루 이틀 교대제 개편 얘기를 했어야지”라는 자조적인 목소리만 나온다. 왜 그럴까.

교대제 개편 논의는 길게는 10년, 짧게는 5년 넘게 진행됐다. 98년 외환위기 당시 노조가‘7시간+7시간 체제(주 35시간제)를 기반으로 주간연속 2교대제를 제안한 것이 시초다. 현대차측이 정리해고 카드를 꺼내자 이를 거부한 노조가 대안으로 제시했다. 노사는 2005년 최초로 주간연속 2교대제를 합의했고, 2008년에는 시행방안을 이끌어 냈다. 2009년에 전주공장에서 시범실시한 후 전면실시하기로 했지만 끝내 좌절됐다. 이경훈 집행부가 근무형태변경추진위와 그 산하에 맨아워위원회(M/H)를 구성해 논의를 이어갔지만 마무리짓지 못했다. 시간당생산대수(UPH)를 30UPH로 올리고, 2천629억원의 시설투자를 한다는 합의만 이끌어냈다. 이 논의대로 라면 노조가 내세운 3무 원칙(노동강도, 임금삭감, 고용불안 없는) 중 ‘노동강도’와 관련된 원칙은 사실상 지켜지지 못하게 된 셈이다.

이러는 사이 외환위기 후 현대차측은 정규직 채용은 하지 않고, 사내하청 및 비정규직 비율을 늘렸다. 모듈화와 외주화 그리고 글로벌 생산시스템 확대를 통해 내·외부적 유연성을 확대한 것이다. 노조가 완강히 반대해 온 전환배치와 물량이동도 사실상 사측의 뜻대로 관철되고 있다. 혼류생산체계나 병행생산체계도 먼 미래가 아니라 현실이 됐다. 유연성을 확대해 온 현대차에겐 노동시간 단축과 교대제 개편을 선택할 유인책이 없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이러니 현대차측이 “2013년에 주간연속 2교대제를 시행하겠다”고 해도 현장 노동자들은 “사실상 안 하겠다는 얘기나 다름없다”고 받아들인다.

이대로 가면 정부와 노동계가 한 목소리를 낸다 하더라도 교대제 개편 논의는 교착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 있다. 현대차측은 교대제 개편에 부응은 하더라도 ‘강성노조’ 탓을 하며 구체적 시행방안에 대해선 논의를 지연할 가능성도 있다. 결국 밤샘노동 철폐나 노동시간 단축은 구체적인 논의의 진전보다 내년 국회의원 총선거의 쟁점으로만 부상될 뿐이다. 때문에 교대제 개편의 본격적인 논의는 4월 총선 후에나 진행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노동계는 교대제 개편 논의를 임·단협과 연계한다는 방침이다.

모처럼 조성된 교대제 개편 논의가 또다시 지연되거나 좌초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적어도 노사정 모두 실노동시간 단축과 일자리 창출에는 공감하고 있으니 말이다. 특히 새 집행부가 출범한 금속노조 현대차지부와 기아차지부가 공조를 결의하고, 금속노조와 민주노총도 적극 나서겠다고 하니 향후 행보에 관심이 쏠린다. 앞서 노동계가 제기한 것과 같이 ‘실노동시간 단축과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 방점을 찍고 나아가길 기대한다. 상급단체가 전략적 목표와 단계적 실천방안(로드맵)을 분명히 제시해야 기업 단위 노조가 혼선을 덜 겪는다. 그래야 단위사업장 수준의 물량과 임금 논의에 방점이 찍혀 온 교대제 개편 논의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

더 이상 현대차 노사의 논의만 쳐다봐서도 안 된다. 교대제 개편은 생산과 물류시스템의 대대적 변화를 불러오기에 부품업체 입장에선 구조조정 요인이 될 수 있다. 교대제 개편이 완성차업계의 근무시간과 생산물량 감소를 동반할 경우 중소부품사 노동자의 임금감소와 고용불안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현대차 노사만의 논의를 벗어나 자동차산업 차원에서 노사와 정부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는 얘기다. 금속노조와 민주노총이 이런 논의를 이끌어내는 데 앞장서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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